중국시평

경제로 풀어보는 중일 관계의 현재와 미래

2025-06-19 13:00:03 게재

1972년 중국과 일본이 국교를 정상화한 지 반세기가 지났다. 그동안 양국 관계는 정치적으로 여러 갈등과 마찰을 겪었지만 경제적 유대는 꾸준히 심화되어 왔다. 오랫동안 중일 관계는 정냉경열(政冷經熱, 정치적으로는 차갑고 경제적으로는 뜨겁다)로 요약될 만큼 정치적 긴장과 경제적 협력이 공존하는 복합적인 양상을 보여왔다.

특히 중국이 1980년대 개혁개방 정책을 본격화한 이후 일본의 공적개발원조(ODA)와 민간 투자는 중국의 인프라 정비와 산업기반 구축에 크게 기여했다. 당시 세계 2위 경제대국이었던 일본의 자본과 기술은 개발도상국이던 중국에게 매우 중요한 자산이었다. 이러한 지원을 통해 중일 간 경제관계의 토대가 마련되었다.

2001년 중국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일 무역은 급속히 확대되었다. 일본 재무성 무역통계에 따르면 2000년 일본의 대중 수출액은 3조2744억엔, 수입액은 5조9414억엔이었으나 2010년에는 각각 13조856억엔, 13조4130억엔으로 증가했다. 2024년에는 수출 18조8625억엔, 수입 25조3055억엔에 이르렀다. 현재 중국은 일본의 최대 수입국이며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수출 대상국이다. 또한 많은 일본 기업들이 중국에 진출해 전자 자동차 화학 기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생산 거점을 두고 있다. 중국 시장은 생산과 판매 양면에서 일본 기업에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한다.

그러나 경제적 유대가 깊어지는 한편 중국이 ‘세계의 공장’으로 급부상하면서 일본 내에서는 ‘중국 위협론’이나 ‘중국 붕괴론’과 같은 회의적인 시각도 확산되었다. 이는 중국의 급속한 경제 성장과 국제적 위상 상승에 따른 구조적 힘의 균형 변화뿐만 아니라 영토문제와 역사인식문제 등 정치·외교적 우려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다. 이처럼 상호인식의 간극은 중일 간 대립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이처럼 상호인식의 간극은 중일 간 대립 감정을 더욱 고조시키고 있다.

상호의존성 심화로 단절되기 어려운 구조

2010년 중국의 명목 국내총생산(GDP)은 일본을 추월해 세계 2위에 올랐다. 이후에도 중국 경제는 지속적인 성장을 이어갔고 국제통화기금(IMF)의 세계경제전망 데이터에 따르면 2024년 현재 중국의 명목 GDP는 18조7480억달러, 일본은 4조262억달러로 중일 간 경제 규모의 격차는 4배 이상 벌어졌다.

하지만 중일 경제관계를 단순한 상하관계로만 볼 수는 없다. 고정밀 공작기계, 반도체 제조장비, 첨단 전자부품, 의료기기 등 여러 분야에서 중국은 여전히 일본 기술에 높은 의존도를 보인다. 일본의 기술적 우위는 여전히 견고하며 중일 경제는 상호보완적인 특성을 지닌다.

한편 중국 경제는 구조적 문제도 안고 있다. 최근 부동산시장 침체가 가시화되고 있으며 지방정부 부채 증가와 청년 실업률 상승도 심각하다. 여기에 인구 감소와 급속한 고령화라는 중장기 리스크가 더해지면서 경제성장의 둔화가 현실화되고 있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중국 역시 안정적인 대외 경제 관계 유지, 특히 일본과의 협력 지속을 중요한 전략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이처럼 상호의존성이 심화되면서 중일 관계는 정치적 긴장이 있더라도 쉽게 단절되기 어려운 구조로 자리잡고 있다. 관광 분야만 보더라도 일본정부관광국(JNTO) 통계에 따르면 2024년 일본을 방문한 중국인 관광객 수는 약 698만명에 달한다.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중국인의 일본 방문이 점차 회복세를 보이면서 경제 및 인적 교류의 재활성화도 기대된다.

하지만 최근 지정학적 변화는 중일 경제관계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특히 트럼프정부 이후 본격화된 미중 무역전쟁은 세계 경제에 큰 긴장을 초래했다. 관세인상과 첨단기술 분야 수출 규제가 이어지며 미중 관계는 이른바 ‘경제적 디커플링’ 국면에 접어들었다. 일본은 이러한 상황 속에서 미중 어느 한쪽에 과도하게 의존하지 않으면서도 실리를 추구하는 ‘전략적 중립’의 길을 모색하고 있다.

실제로 일본의 안보 정책은 미일동맹 강화를 중심에 두고 있으며 경제적으로도 미국과의 연대를 중시한다. 동시에 중국과의 경제 관계 역시 매우 중요하며 2024년 중일 간 무역 총액은 44조엔에 달한다. 특히 경제안보의 관점에서 반도체와 희토류 등 주요 자원의 공급망 확보가 중요한 과제로 부상하고 있으며 일본은 ‘과도한 대중 의존’에서 벗어나는 것을 시급한 과제로 인식하고 있다.

중국도 자국 경제 둔화와 대외 관계의 불안정 속에서 일본과의 경제 협력을 중시하고 있지만 정치적 신뢰의 부족은 여전히 중일 관계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다. 정치적 마찰을 넘어서 경제 실리를 중심으로 협력을 어떻게 유지하고 심화할 것인지는 향후 중일 관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전략적 중립과 경제안보의 딜레마

한국도 마찬가지다. 한국 역시 미중 갈등의 틈바구니 속에서 전략적 균형을 모색하며 한중 관계의 흐름에 높은 관심을 두고 있다. 일본처럼 대중 경제 의존도가 높은 한국에게 일본이 추구하는 ‘전략적 중립’과 ‘경제안보’ 병행 전략은 중요한 참고 사례가 될 수 있다.

현재 아시아 전체가 미중 전략경쟁의 주요 무대로 떠오르는 가운데 경제를 기반으로 한 협력 관계를 어떻게 재구축할 것인가는 한국 중국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가들의 공통된 과제다. 특히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 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같은 다자간 경제 협력체를 활용해 자유무역 체제를 유지·강화하는 것은 역내 안정과 번영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정치적으로는 냉각되고 경제적으로는 긴밀한 정냉경열이라는 딜레마를 안고 있는 중일 관계는 결국 서로의 현실적 이익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경제적 상호의존 속에서 리스크를 분산하고 공존의 길을 모색하는 문제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의 미래와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주영호 일본국립후쿠시마대 교수 상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