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태진의 미국 톺아보기

스테이블코인, 미국 달러패권의 새로운 분기점

2025-06-19 13:00:10 게재

스테이블코인 규제 법안인 일명 ‘지니어스(GENESIS) 법안’이 17일(현지시간) 찬성 68표, 반대 30표로 미국 상원을 초당적으로 통과해 하원으로 넘어갔다. 해당 법안은 달러가치에 1:1로 연동되는 스테이블코인(USD 스테이블코인)의 발행 및 유통을 정식 금융 시스템 안에서 관리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동안 민간 주도에 머물렀던 스테이블코인이 미국의 통화전략에 있어 핵심적인 지위를 부여받게 됐다.

찬성 68표, 반대 30표로 초당적 통과

이러한 흐름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대선 캠페인 당시부터 “미국을 가상자산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강조한 정책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다만 주목할 점은 이번 법안의 경우 단순히 가상자산 산업을 육성하겠다는 수준을 넘어 미 의회가 스테이블코인을 달러패권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이다. 미 정치권이 이처럼 스테이블코인에 주목하는 데에는 세계 금융질서 속에서 미국 달러의 신뢰 자체가 흔들리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깔려 있다.

지난달 국제 신용평가사 무디스는 미국의 국가신용등급을 최고 수준인 ‘Aaa’에서 ‘Aa1’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무디스는 이 같은 등급 조정의 이유를 “미국의 재정지출 구조가 빠르게 악화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채무 상환 능력에 대한 장기적 우려가 커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미국의 국가부채는 현재 약 36조달러에 이르며, 지난해 회계연도에만 1조8330억달러의 재정적자가 발생했다. 수년간 팬데믹 대응을 위해 쏟아부은 대규모 부양책, 인프라 투자, 연금 및 의료 관련 지출 등이 매년 2조달러 규모의 신규 부채로 누적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국채이자 부담의 급증이다. 미 연준이 인플레이션 대응을 위해 기준금리를 단기간에 급격히 인상한 결과, 미국정부가 지불해야 할 국채이자 비용은 작년 회계연도 기준 1조1330억달러로 사상 처음 1조달러를 돌파했다.

이는 국방예산(8260억달러)보다 크고 의료보험예산(약 1조500억달러)과는 비슷한 수준이다. 이자 부담은 갈수록 늘어날 것이 자명하다. 이번 신용등급 하락으로 추가 국채 발행을 위해서는 더 높은 이율을 적용받게 되어 더 많은 자금을 단지 ‘이자 상환’을 위해 사용해야 하기 때문이다.

설상가상 미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사줄 수요 기반도 과거와 달리 점점 불안정해지고 있다. 한때 안전자산으로 불리며 외국 정부 중앙은행 기관투자자들의 안정적 피난처로 여겨졌던 미국채는 미중갈등 격화, 무역분쟁, 글로벌 공급망 재편,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맞물려 매입 수요 자체가 감소하고 있다. 최근 미국의 디폴트 리스크가 고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물론 기축통화국인 미국이 채무불이행 상태에 빠질 가능성은 극히 낮지만 국채에 대한 수요 기반은 과거에 비해 확실히 불안정해졌고 외교 및 안보 정책에 따라 매입 여력이 영향을 받고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국채의 수요를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실제로 현대 미국의 외교정책 통상전략 방향성까지 결정해 왔을 만큼 미국 생존에 있어서는 중요한 문제다. 1971년 닉슨 대통령이 금본위제를 폐기하며 브레튼우즈 체제를 무너뜨린 이후 미국은 국채 발행을 통한 재정 운영 구조, 한마디로 빚을 내고 국채를 발행해 재정을 유지하는 구조를 확립해 왔다. 당연히 이후 달러의 국제적 신뢰를 유지하기 위한 핵심전략은 안정적인 국채 수요처 확보가 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인 사례가 1974년 미국과 사우디아라비아 간의 협약을 통한 페트로 달러 체제다. 이 시스템은 석유 거래를 달러로만 하도록 유도하고 산유국들이 벌어들인 달러를 다시 미국채에 투자하는 순환구조를 만들었다. 이로 인해 석유 수입국과 산유국 모두가 미국채 수요자가 되었고, 미국은 국제 에너지 시장을 달러 중심으로 구축하는 데 성공했다.

1980년대에는 폴 볼커 당시 연준 의장이 초고금리 정책을 시행하며 일본과 유럽의 자본이 대거 미국으로 유입됐다. 일본과 독일은 무역흑자로 벌어들인 달러를 미국채에 투자했으며 1990년대에는 냉전 종식 및 신흥국 자본시장 개방 흐름에 힘입어 달러와 미국채는 여전히 흔들림 없는 ‘글로벌 안전자산’으로 자리매김했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한 중국은 대미 수출 급증으로 벌어들인 막대한 규모의 달러를 미국채 매입에 썼고 일본과 함께 최대 미국채 보유국 지위를 유지했다.

미국채 글로벌 안전 자산 지위 흔들

그러나 최근 미중 전략경쟁 심화, 첨단 기술과 반도체 공급망 갈등, 환율전쟁 등의 요인이 겹치면서 중국은 미국채 보유 규모를 점진적으로 축소하고 있다. 일본의 경우 여전히 미국채 최대 외국 보유국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엔캐리 트레이드 청산 우려로 미국채 시장에는 쇼크가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이는 일본이 앞으로도 미국채 시장의 큰손으로 남을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는 점을 시사한다.

이 와중에 등장한 USD 스테이블코인은 달러의 가치를 지키고 미국채 수요를 창출해 달러패권을 지킬 새로운 구원투수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2025년 1분기 현재 USD 스테이블코인은 시가총액이 2200억달러를 넘어섰으며 모든 법정화폐 표시 스테이블코인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일단 미정부가 시장 전면에 나서게 되면 그 자체로 ‘게임체인저’가 될 가능성이 높다. 더구나 달러와 USD 스테이블코인을 등가 교환하는 대신 발행사가 그에 부합하는 미국채를 매입하도록 한다면 미정부는 더 이상 미국채 매입 수요처 발굴을 고민하지 않아도 된다.

스콧 베센트 미 재무장관이 최근 “스테이블코인 입법은 전세계적으로 달러 사용을 확대할 강력한 수단이 될 것”이며 “법제화가 이뤄질 경우 최소 2조달러 규모의 추가 국채 수요가 창출될 수 있다”고 자신한 이유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된다.

그러나 스테이블코인의 확산은 또 다른 차원의 리스크를 동반한다. 중남미 국가들처럼 자국 통화의 신뢰도가 낮은 국가에서는 USD 스테이블코인이 사실상 미국 달러의 대체 수단으로 사용될 수 있는데, 이는 해당 국가의 통화주권을 위협할 수 있다.

특히 유럽연합(EU)이나 한국 일본 등 주요 선진국 경제권도 스테이블코인을 통해 자국 통화 대신 미국 달러 기반의 자산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아 이 경우 세계 금융 시스템은 미국 달러에 더 깊게 종속되며, 이는 금융위기 시 세계경제 전체가 미국경제의 변수에 과도하게 영향을 받을 수 있다.

또한 미국이 각고의 노력 끝에 체계를 갖춘 자금세탁방지(AML) 및 테러자금조달방지(CFT) 등의 달러 유통 시스템을 민간 스테이블코인 발행사에 넘길 경우 스테이블코인은 범죄 자금이나 독재 정권의 비자금 이동 수단으로 악용될 우려도 존재한다.

현재 미국 달러에 대한 신뢰는 단지 경제력 때문이 아니라 미국정부가 ‘세계경찰’로서 달러의 부정한 사용까지 통제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러나 미국이 스테이블코인을 제도화하면서 이러한 관리 책임을 민간 기업에 위임하거나 소홀히 한다면 미국 달러의 글로벌 통화로서의 위상도 새로운 시험대에 오를 수 있다.

달러패권 강화 vs 불안정성 씨앗 갈림길

스테이블코인은 미국이 직면한 재정위기, 국채 수요 둔화, 글로벌 통화 주도권 약화에 대한 대응카드로 기능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사용은 단순한 기술문제나 산업 육성 정책이 아닌, 국제통화 질서 전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문제인 만큼 미정부는 스테이블코인 도입에 신중하고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다.

USD 스테이블코인의 등장이 미국 달러패권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이어질지, 새로운 불안정성의 씨앗이 될지에 대한 새로운 갈림길에 섰다.

조태진

법무법인 서로변호사·MB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