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정부 산업안전보건

산재예방정책 ‘위험의 차별화, 대상의 무차별화’로 가야

2025-06-20 13:00:00 게재

처벌을 신체형에서 경제형으로 전환, 작업·영업정지가 핵심 … 교통사고예방처럼 경영체제보다 10대 중과실 재해에 집중

21대 대통령선거를 전후해 대형사업장에서 후진적 산재 사고사망자가가 반복적으로 발생했다. 지난달 19일 경기 시흥시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작업 중 끼임사고로 사망했다. 2022년 10월 평택시 SPL 제빵공장에서 20대 노동자가 소스 교반기에 끼어 숨졌다. 2023년 8월 성남시 샤니 제빵공장에서도 50대 노동자가 반죽기계에 끼어 사망했다. 이달 2일 태안화력발전소 내 한전 KPS 태안화력사업소 기계공작실에서 한국서부발전의 2차 하청업체 노동자인 김충현(59)씨가 혼자서 작업을 하다 끼임사고로 숨졌다. 2018년 12월 하청업체 비정규직 노동자 김용균씨가 석탄 운송용 컨베이어에 끼어 목숨을 잃었다.

2022년 1월 27일부터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이 시행됐지만 허사였다. 12.3 계엄사태와 윤석열 전 대통령 탄핵으로 이어진 대선에서 이재명정부가 출범했다. 다시금 산업현장의 안전보건이 커다란 숙제로 다가왔다.

문재인정부때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으로 3년 재임기간 산재예방정책을 ‘형식적 서류중심’에서 ‘실질적 현장조치’로 전환하고 산재 사고사망자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를 실천한 박두용 한성대 기계전자공학부 교수에게 국민주권정부의 산재예방정책의 나가갈 방향에 대해 들었다. 박 교수는 윤 정부의 산재예방정책은 총체적 실패했다고 단언했다. 그는 이재명정부에서 안전을 획기적으로 바꾸고자 한다면 단지 제2차관 또는 노동안전차관을 신설에 그칠 것이 아니라 제1차관을 노동안전차관으로, 제2차관을 고용차관으로 개편하는 정도의 정부혁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산재예방정책 방향으로는 ‘위험의 차별화, 대상의 무차별화’를 제시했다.

박두용 한성대 기계전자공학부 교수 서울대 보건대학원 환경보건 보건학 석사(1988년)/ 미국 미시간대 환경산업보건 보건학 박사(1996년)/ 한성대 기계전자공학부 교수(1997년 3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산업안전보건연구원장(2006년 2월 ~2008년 12월)/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이사장(2017년 12월 ~ 2021년 12월)

●문재인정부는 산재 사고사망자 수를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했는데 일터에서 사망사고는 그다지 줄지 않고 있다.

문재인정부 5년 동안 약 170명 정도가 줄었다. 이 숫자는 산재 보상통계가 아니고 산재보상데이터를 일일이 확인해 실제 사망사고가 발생한 시점을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다. 즉 실제로 감소한 숫자다.

●문 정부에서 산재 사고사망자가 170명 줄어든 것은 큰 실적이다. 하지만 절반으로 줄이겠다는 목표는 너무 크게 잡은 것 아닌가.

그런 비판을 많이 받았다. 그 목표를 설정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있다. 당시 우리나라는 산재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산재 사고사망자가 너무 심각했다. 유럽연합(EU)와 일본 평균의 약 3배, 대만보다도 2배 가까이 높았다. 대만 정도로는 줄여야 했다.

두번째로 노무현정부 때 제도·인력·재원의 큰 변화 없이 정책적 노력만으로 150명 정도 줄었다. 세월호 참사 직후에도 마찬가지로 큰 변화가 없었지만 사고 바로 다음달부터 감소하기 시작해 1년 동안 207명이나 줄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로부터 교훈을 얻지 못하고 정쟁으로 치달으면서 1년 뒤 다시 크게 증가했다.

건설업에서 더 극적이다. 세월호 참사 당시 509명이던 사고사망자는 1년 만에 394명으로 114명이나 감소했다가 그로부터 1년 후 다시 증가해 510명을 넘어섰다. 이것은 추락, 낙하물 맞음 등 대부분 예방가능한 단순 사고사망자가 많은 건설업은 마음만 먹으면 100여명은 충분하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즉 그동안 많은 산재 사고사망은 못 막은 것이 아니고 안 막은 것이다.

●지금도 그 정책목표는 유효한가.

당연하다. 우리나라 정도면 지금 당장 산재 사고사망자를 절반 정도로는 줄여야 한다. 문제는 줄일 수 있느냐는 것인데, 문 정부 경험을 토대로 볼 때 충분히 줄일 수 있다. 문 정부의 초기 산재예방정책은 한마디로 ‘형식적 서류중심’에서 ‘실질적 현장조치’로 전환이었다. 이것은 ‘백화점식 종합적 접근’을 그만두고 당장 현장의 핵심적인 위험요인을 개선하는 실사구시의 접근이었다. 효과는 곧바로 나타났다. 2016년 1010명까지 올라가던 산재 사고사망자가 2017년부터 꺾이기 시작해 2019년에는 890명으로 떨어졌다. 조금만 더 가속이 붙으면 절반까지는 아니더라도 600명대까지는 충분히 내려갈 것으로 봤다. 그러나 2020년 코로나19라는 전대미문의 팬데믹이 찾아오면서 현장중심의 산재예방정책은 사실상 거의 전면 중단됐고 사고사망자 감소추세도 확연히 둔화됐다. 결국 2022년 사고사망자는 828명에서 그쳤다. 돌이켜 보면 여러 가지로 안타깝고 아쉬운 점이 많다.

●무엇이 가장 안타깝고 아쉬운가.

일단 산재 사고사망자를 획기적으로 줄이지 못한 점이 아쉽다. 그보다 더 아쉬운 것은 우리나라 산재예방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완전히 바꿀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는 것이다. 그때 산재 사고사망자를 절반 가까이 줄였다면 우리나라 산재예방정책의 근본적인 틀을 완전히 바꿀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2020년 사고사망자 감소세가 둔화된 것은 코로나19 때문만은 아니다. 현장방문이 막히면서 다시 서류중심의 탁상행정으로 회귀했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을 개정해야 하나?

그동안 여러 가지 비판들이 있었지만 그보다도 지금의 중대재해법은 물리적으로 집행하기 어려운 법이다.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중대재해 기소까지 최대 666일, 1심 선고까지 617일 걸리고 매일노동뉴스도 기소까지 평균 16개월이라고 보도했다. 매년 중대산업재해가 500여건 발생한다. 수사해서 기소할 대상이 약 300건이다. 하지만 현재 법체계에선 한해 20~30건 기소도 벅찬 상황이다. 수사인력을 늘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더구나 이재명정부에서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분리하는 검찰개혁도 추진하고 있다. 검찰개혁을 하면 중대재해법 처리는 더욱 늦어질 것이다.

●중대재해법이 물리적으로 작동하기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개정해야 하나.

중대재해 처벌대상은 개인이 아닌 법인을 타겟으로 해야 한다. 따라서 신체형(징역형)에서 경제벌(과징금 및 벌금)로 전환해야 한다. 지금까지 대기업 중기업 소기업으로 대상을 차별화하던 방식에서 모든 사업장에 예외없이 적용하는 대상의 무차별화 방식으로 바꿔야 한다. 대신 위험을 차별화해야 한다. 실제 산재 사고사망의 80~90%가 10대 사고에서 발생한다. 떨어짐, 끼임, 부딪힘, 물체에 맞음, 깔림 뒤집힘 등과 후진적 사고가 사고사망의 절반을 넘게 차지한다.

처벌대상을 경영체제와 같은 막연한 것보다 교통안전과 같이 2대 고의과실, 10대 중과실처럼 다발하는 중대재해를 구체적으로 정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누구나 예외없이 다 지켜야 한다. 음주운전(위험의 차별화)은 자가용이든, 택시든, 버스든, 트럭이든, 경력운전자든, 모범운전자든, 초보운전자든 예외없이(대상의 무차별화) 다 지켜야 하는 것과 같다. 벌칙의 핵심은 작업중지 나아가 영업정지다. 이는 기업이나 경제에 치명적이며 제3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으므로 급박한 위험이 해결되면 작업중지나 영업정지에 상응하는 기간의 영업이익을 몰수하도록 매출액의 몇 %에 해당하는 과징금 부과하는 방식으로 개정할 필요가 있다.

●왜 경영체계에서 10대 중과실 방식으로 바꿔야 하는가.

2023년 말 ISO 45001(안전보건경영시스템) 인증건수는 우리나라가 전세계 3위다. 인구대비로 볼 때 엄청난 건수다. 하지만 중대산업재해는 대만보다도 높다. 경영체제나 경영시스템은 그럴싸해 보이지만 한편으로는 대표적인 서류작업에 불과하다. 이제 경영체계는 구축할 만큼 구축했다. 2023년 우리나라 산재 사고사망자는 후진국형 5대 사고가 77.1%를 차지한다. 떨어짐 끼임 2대 사고가 절반(49.9%)를 차지한다. 10대까지 합하면 94.2%다. 교통사고도 처음에는 7대, 10대였다가 지금은 12대 중과실까지 확대됐다. 중대재해도 이렇게 가야 한다.

●경영계 반발이 예상된다.

경영자들도 이제 안전은 더 이상 피할 수 없는 문제라는 것을 안다. 기업의 어려움은 법령에 일일이 열거하는 명령·통제형의 직접 규제방식과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같은 중대재해법 처벌 대상이라는 것이다. 기업은 안전을 반대하고 노동계는 찬성할 것이라는 이분법적 사고는 버려야 한다. 이제 안전을 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전근대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예를 들어 기업의 불확실성 해소 및 부담경감, 현장 안전성을 높이 위해 ‘산업안전보건 규제준수 인정제’와 같은 제도를 도입해야 한다. 기업이 산업안전보건 규제를 목적과 취지에 맞게 법적 기준에 준하거나 그 이상의 조치를 취한 경우에 이를 인정하자는 것이다. 기업의 자발적 참여 및 안전성 향상을 위한 다양한 방법과 신기술 제안으로 자발적 안전보건 참여문화 조성과 현장안전이 향상될 것이다.

●새정부에서 산업안전보건청 또는 제2차관제를 두는 방안에 대해 논의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우리나라 정부조직의 부·처·청의 계층구조에서 입법권이 없는 청은 허수아비 조직이 된다. 산업안전보건에서 노동시간과 고용형태가 점점 중요해지고 있는 시대에 청으로 분리는 시대적 상황에 역행하는 것이다.

한편 ‘경제부처적 성격의 논리’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과 패러다임 구축 측면에서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1980년 이전까지는 보건사회부 외청으로서 사회부처의 성격이 강했다. 보사부 산하 노동청 시절에는 비록 산업안전보건이 미미했지만 당시 정책을 보면 약자인 탄광노동자, 무허가 영세사업장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엿보인다. 1980년 전두환 정권은 노동부를 경제부처로 만들었다. 이때부터 노동보호라는 본연의 기능보다는 노동을 탄압한다는 비판을 받을 정도로 경제성장과 기업 지원에 더 많은 방점을 찍었다. 산업안전보건 정책은 대기업 위주로 바뀌었고 5인 미만과 같은 영세 사업장이나 일용직 비정규직 노동자에 대한 안전보건정책은 사실상 거의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사각지대가 됐다.

이런 바탕에서 산업안전보건본부로 하든, 제2차관제를 신설하든 고용부 내에 둔다면 근본적인 변화가 있겠느냐는 회의론도 있다. 그래서 고용부로부터 독립된 산업안전보건청을 만들어야 한다는 주장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외청의 한계가 더 크다는 점에서 산업안전보건청보다는 고용부가 노동안전에 본연의 역할을 하도록 제대로 된 직제와 조직구조를 만드는 것이 더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글·사진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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