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DP 5% 국방비에 써라”
트럼프정부 압박…기존의 2배
국방비·무기구매 전방위 압박
미국 트럼프행정부가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동맹국들에게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으로 국방비를 지출하라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했다. ‘GDP 5%’는 기존보다 두 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로 예산 증액을 넘어 방위비 분담과 무기구매, 주한미군 운영 등 한미동맹 전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사안으로 해석된다.
미 국방부 션 파넬 대변인은 19일(현지시간) “피트 헤그세스 국방장관이 상원 청문회와 샹그릴라 대화에서 밝힌 바와 같이 유럽 동맹국들이 아시아 동맹을 위한 글로벌 기준을 설정하고 있으며, 그 기준은 GDP의 5%를 국방비로 지출하는 것”이라며 “한국도 새로운 기준의 적용 대상”이라고 밝혔다. 미국이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나토) 회원국들에 요구 중인 새로운 국방비 지출 가이드라인을 아시아에 동일하게 적용하려는 조치다.
현재 한국의 국방비는 약 66조원으로 GDP의 2.8% 수준인데 미국이 요구하는 5%에 도달하려면 국방예산을 100조원 이상으로 증액해야 한다. 전문가들은 한국이 단기간에 이러한 재정 조정을 감당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미국측이 국방비와 관련 투자까지 포함해 폭넓게 해석한다 해도 현실적 제약은 여전하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한덕수 당시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와 통화 후 방위비와 무역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루는 ‘원스톱 쇼핑’ 방식을 선호한다고 밝힌 바 있다. 방위비 분담금 증액뿐 아니라 미국산 무기 구매, 무역적자 해소 등 다양한 대미협상 이슈를 한꺼번에 다루려는 의도다. 국방비 증액 요구와 함께 미국산 첨단무기 도입 확대를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중론이다. 또 방위비 분담금 협상과도 연계될 수 있으며, 한국군의 대미 무기의존도를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한국정부가 국방예산 증액이 불가피한 경우 단순 구매가 아닌 기술 이전 등 실질적 이득을 얻는 방향으로 협상전략을 수립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오는 24일부터 25일까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나토 정상회의는 중요한 분기점이 될 전망이다. 정상회의에 이재명 대통령이 참석할 가능성이 있으며, 한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경우 국방비 증액 문제가 본격 제기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의 GDP 5% 요구는 국제사회에서도 논란이 되고 있다. 나토 내부에서는 일률적인 5% 지출 기준에 반발하는 기류가 엿보인다.
페드로 산체스 스페인 총리는 나토 사무총장에게 보낸 서한에서 해당 기준이 “비현실적이며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반대입장을 밝혔다. 마르크 뤼터 나토 사무총장 또한 직접 군사비 3.5%에 안보 분야 1.5%를 더해서 총 5%를 달성하자는 점진적 접근을 제시했다.
따라서 한국정부도 미국의 요구를무조건 수용하기보다 나토처럼 국방비와 관련 지출의 포괄적 범위 조정, 점진적 목표 설정 등 현실적 대안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