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지배구조개선 “재계 반발로 반쪽짜리”…“상법 개정 배경”
증권법학회 세미나, 상법 개정 의미 분석
그동안 소수주주 위한 제도는 실효성 낮고
기업 자율성 확대 규제 완화는 즉각적 효과
“지배구조개선 관점에서 ‘되로 주고 말로 받아’”
최근 열린 한국증권법학회 정기세미나에서는 지난 60년간 기업지배구조개선과 관련한 상법 개정의 효과가 미미했고 회사의 권리 남용 견제 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한 것이 이재명정부에서 추진하는 상법 개정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 나왔다.
여당이 상법 개정을 첫 번째 입법 과제로 추진하겠다고 밝힌 가운데 상법 개정이 기업 경영과 자본시장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도 긍정적인 전망을 내놨다.
지난 21일 서울 여의도 한국거래소에서 열린 한국증권법학회 정기세미나에 주제발표자로 나온 김주영 변호사(법무법인 한누리 대표)는 “이사의 회사 및 주주에 대한 충실의무가 도입될 경우 ‘경영판단의 원칙’이 아니라 훨씬 엄격한 ‘공정성의 원칙’이 적용돼 회사기회유용(이사가 회사의 사업 기회를 사적으로 이용하는 행위)이나 부당내부거래에 대한 감시가 강화되고 부당한 사례가 크게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이사가 경영판단을 함에 있어서 회사 및 전체주주들의 이익을 고려하는 경향이 강화될 것”이라고 밝혔다.
‘새 정부에서의 상법 개정이 갖는 의미와 상사판례에 미칠 영향’을 주제로 발표한 김 변호사는 이밖에도 △합병·분할 등 각종 자본거래에 대한 사법심사 강화 △소수주주 축출에 대한 사법심사 강화 △반대주주의 주식매수청구권 실질화 △경영권 분쟁상황에서의 이사의 중립의무 확대·강화 등을 상법 개정에 따른 효과로 분석했다.
◆추상적인 ‘이사 충실의무’ 명확히 =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상법 개정안은 이사의 충실의무와 관련해 ‘회사 및 주주’를 위해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하고, 이사는 그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 총주주의 이익을 보호해야하고 전체 주주의 이익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한다고 명시했다.
현행 법조항은 ‘이사는 회사를 위해 그 직무를 충실하게 수행해야 한다’고만 돼 있다.
김 변호사는 “1998년 상법개정은 IMF 외환위기로 드러난 우리나라 기업거버넌스의 문제점을 시정하기 위한 차원에서 이사의 책임을 보다 강화하고 소수주주의 이익을 더욱 강하게 보호하는 것이었다”며 “‘이사의 충실의무’라는 제목도 이를 명시적으로 나타내고 있지만, 법문의 추상성으로 인해 학설이 갈리고 법원도 이에 관해 명확한 해석을 내놓지 않음에 따라 애써 도입된 충실의무 조항은 사실상 기존의 선관주의의무를 부연 설명하는 정도로 해석돼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상태”라고 지적했다.
그는 “영미법계에서는 이사가 주주에 대해 충실의무를 부담한다는 식으로 접근하고(주주도 이사의 충실의무의 대상), 대륙법계에서는 이사가 회사에 대해 부담하는 직무상의 의무에 주주 전체의 이익을 도모하고 주주들을 공평하게 대우해야 할 의무가 포함된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며 “독일도 그렇고 일본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어떤 해석을 기준으로 하든 이번 상법 개정안이 주주의 권익보호차원에서 이사의 충실의무가 회사뿐 아니라 주주까지 확정되는 개념임을 명확히 한 것이라는 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회사법 12차례 개정, 기업지배구조개선 효과 미미 = 이사의 충실의무 조항은 상법 중 회사편(회사법)에 속하는 내용이다. 회사법이 상법 제정(1962년) 후 12차례에 걸쳐 개정된 과정을 보면 크게 ‘규제완화’와 ‘기업지배구조개선’으로 나뉜다.
김 변호사는 “지금까지의 회사법 변천사를 기업지배구조개선 관점에서 보면 한 마디로 ‘되로 주고 말로 받은 경우’라고 볼 수 있다”며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제도들은 어렵사리 도입됐음에도 현실적 제약으로 인해 그 효과가 미미한 반면, 기업의 자율성을 확대하는 규제완화는 대부분 즉각 효과를 발휘해 활발하게 활용되고 더 나아가 지배주주의 지배권 확대 수단 등으로 악용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기업지배구조개선을 위한 제도개선은 재계의 반발에 의해 반쪽짜리로 이뤄지는 것이 일반적”이며 “무분별한 소송과 외국 투기자본 침입으로 한국 경제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는 식의 실증적 근거가 부족한 주장들이 제기됐고 도입되더라도 법원의 소극적인 태도로 그 효과가 미미한 것이 현실”이라고 설명했다.
대표적인 사례로는 주주대표소송과 증권집단소송을 꼽았다. 소수주주 주주대표소송은 한해 평균 1.4건에 불과하고 지난 2020년 12월 도입된 다중대표소송은 아직 한건도 제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증권집단소송도 2004년 도입돼 20년간 제기된 소송은 불과 13건에 그친다.
김 변호사는 “법인의 독자성을 극단적으로 강조할 경우 유한책임과 영생의 특권을 가진 영리법인이 그 구성원 또는 이해관계인인 개인의 권리나 자유를 제한하거나 종속시킬 수 있는 문제가 야기되고 이는 결국 법인의 실질적 의사결정자인 개인들(대표이사, 대주주 등)의 책임을 오히려 은폐하고 그들에 의한 권력 집중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기능한다”며 “우리나라에서는 2000년대 이후 회사의 자유와 권리가 비약적으로 확대된데 반해 그 남용을 견제하기 위한 장치들은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것이 이번 상법 개정의 배경”이라고 강조했다.
이경기 기자 celli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