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산책
노인을 위한 나라는 있다
우리나라는 2025년 초고령사회(노인 인구 20% 이상)에 진입했다. 고령화 사회에서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데 프랑스 115년, 미국 93년(예상), 일본 36년에 비해 매우 빠른 속도다. 2050년에는 노인인구 비율이 40%에 육박할 전망이다. 출산율 감소로 젊은층 인구는 지속적으로 감소하며, 생산가능인구 감소와 부양비 증가가 2020년 노인 부양비 21.7명에서 2030년 38.2명, 2050년 77.6명으로 급증할 전망이다.
노년기는 신체기능 저하와 함께 영양소 요구량과 소화능력이 변화된다. 기초대사량 감소로 에너지 요구량은 줄어들기 때문에 질적으로 우수한 영양소 섭취가 더욱 중요하다.
65~74세 전기노인과 75세 이상 후기노인으로 구분할 때 후기노인은 근감소증 예방을 위해 성인보다 1.2~1.5배 높은 단백질이 필요하다. 칼슘(1,200mg/일), 비타민 D(800-1,000IU/일), 비타민 B12 섭취가 강조되며, 수분 섭취(최소 1.5L/일)도 중요하다.
노인의 씹기와 삼키기 기능 저하로 연하곤란(嚥下困難, dysphagia, 삼킴장애)이 발생할 수 있어 물성 조절이 필요하며 미각 및 후각 감각 저하로 인한 식욕감소를 보완하기 위해 적절한 조리법과 향미 강화가 필요하다.
세계는 지금 고령인에 대한 식품개발 붐
선진국들은 초고령사회에 대비한 식품개발에 적극적이다. 일본은 ‘개호식품(介護食品)’이란 이름으로 연하곤란 정도를 1~7단계로 구분해 보통 식품과 외관은 유사하되 물성을 조절한 제품을 이미 규격화했다. 유럽에서는 네슬레 다논 등 세계적 기업들이 영양강화 식품의 노인 특화 브랜드를 활발하게 출시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맞춤형 영양 배달 서비스가 성장하고 있다. ‘실버 큐진(Silver Cuisine)’ ‘맘스 밀스(Mom's Meals) 등은 노인의 건강상태와 선호도에 맞춰 영양사가 설계한 매우 다양한 식단을 정기 배달하는 시스템이다. JA 푸드서비스(Foodservice)는 노년층의 하루 영양 섭취 권장량에 맞게 설계한 식단 제공 서비스가 주력이다. 사보리즈(Savorease)는 노년층도 쉽게 먹을 수 있는 부드러운 질감의 스낵을 판매 중이다.
국내 고령친화식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2021년부터 고령 친화 우수식품 지정제도를 운용해 2023년 말까지 34개 기업 176개 제품을 지정했다. 고령친화식품군을 물성에 따라 1단계(50,000~500,000N/㎡, 치아섭취), 2단계(20,000~50,000N/㎡, 잇몸섭취), 3단계(20,000 N/㎡ 이하, 혀로 섭취)로 구분하고 있다.
N은 뉴턴이라는 단위이며 이는 1kg의 물체에 1m/s의 가속도를 주는 힘이다. 500,000N은 지구 중력 (9.8m/s)에서 약 51톤의 질량이 누르는 힘과 같다. 즉 1㎡ 에 51톤의 중력이 눌러도 변형되지 않을 만큼의 경도를 가진 식품이다. 갑자기 혼란스러울 것이다.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단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를 1㎠로 변환하면 약 5kg의 중력이다. 보통 어금니는 약 30~90kg의 힘을 견딜 수 있다. 이를 경도(N/㎡)로 환산하면 8,820,000N/㎡이다. 1단계인 500,000보다 매우 큰 수치이므로 1단계 식품은 어금니가 견디는 경도의 한계보다 매우 낮은 수치다.
케어식품 시장은 2025년 3조원 규모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한다. 주요 기업이 적극적으로 진입하고 있다. 한국식품연구원은 2019년 KS H 4897 표준을 개정해 자율표시제에서 인증제로 전환했다. 최근 연구나 특허 중에는 저하된 소화 및 흡수기능을 높이기 위해 지방 및 지용성 성분을 미셀화하거나 초미세화하는 연구가 다수 보고되었다.
또 후각감퇴를 보완하기 위한 향기 디스플레이, 미세분무, 복수 향기 카트리지 기반의 개인맞춤형 향기 디바이스 기술, 시간-온도 정보를 표시한 스마트 패키징, 인공지능(AI) 기반 식단 추천, 건강데이터 기반 맞춤형 영양 알고리즘 서비스 개발 등 노인식 개발은 다양한 첨단 기술이 집약되는 분야이기도 하다. 때문에 연구자들 입장으로는 매우 매혹적인 분야이기도 하다.
우리 문화에 기반한 K-노인식을 기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는 예로부터 노인공경의 철학을 바탕으로 어르신들을 위한 식이요법이 체계적으로 발달해왔다. 노인을 단순히 보호해야 할 대상이 아닌 존경받아야 할 어른으로 여기며 그들의 건강과 영양을 세심하게 배려하는 고유의 문화적 가치를 가지고 있다.
외국에 비해 아직도 우리나라의 노인식 개발은 시작에 불과하다. 하지만 서구의 기능적 접근과 달리 깊은 효심과 배려의 마음이 담긴 우리만의 독특한 문화적 토양을 기반한 접근법으로 획기적인 K-노인식이 개발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