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 저평가 해소 위해 ‘집중투표제 의무화’필요

2025-06-24 13:00:15 게재

2641개 상장사 중 13곳만 정관서 허용

정관으로 배제할 수 없도록 의무화해야

한국증시 저평가 현상을 해소하고 코스피 5000 달성 등 국내 자본시장 활성화를 위해 집중투표제 의무화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왔다. 집중투표제는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1998년 기업 거버넌스 개선을 위해 상법에 도입됐지만 현재 2641개 상장사 중 13곳만 회사 정관으로 집중투표제를 허용하는 실정이다. 시장전문가들은 새로 들어선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상법 개정안에 집중투표제 의무화를 포함해 실효성을 갖기 위한 구체적인 법령 등 제도적 기반 조성이 병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상장사 97%가 배제, 실효성 낮아 = 한국기업거버넌스포럼(KCGF)은 23일 서울 여의도에서 “코스피 5000 달성을 위한 필수 정책, 집중투표제를 주제로 세미나를 개최했다.

집중투표제는, 주주가 보유 1주당 선출하는 이사 수만큼의 의결권을 행사하고, 모든 이사 후보를 동시에 표결한 후 최다 득표자 순으로 선임하는 방식이다. 우리 상법은 382조 2항에서 전체 발행주식의 3% 이상을 가진 주주가 요구하면(자산총액 2조원 이상인 경우에는 1%) 집중투표제를 적용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들이 정관으로 배제할 수 있도록 허용해 상장기업의 97%가 배제하고 있는 등 실효성이 낮다는 비판이 잇따랐다.

이번 상법 개정안에는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회사에서는 집중투표제를 정관으로 배제할 수 없도록 법으로 정해 제도의 실효성을 높이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코스피 5000 시대를 열기 위한 핵심적인 제도적 수단으로 평가받는다.

이날 첫 번째로 발표에 나선 이창환 얼라인파트너스 대표는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의 가장 큰 원인은 지배주주 일가가 낮은 경제적 유효 지분율 대비 과도한 지배력을 보유한 것”이라며 “이사 선출에 있어 일반주주들이 보유한 지분율에 비례하는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집중투표제를 활성화해 이사회가 적극적으로 전체 주주들을 위해 일하고, 자기자본이익률(ROE)을 높이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중투표제로 이사 선임이 청구되지 않더라도 ‘언제든 시행될 수 있고, 이사회 의석을 내줄 수 있다’는 긴장감만으로도 이사회가 지배주주뿐만 아니라 전체 주주의 이익까지 균형 잡힌 판단을 할 수 있게 된다.

◆“이사회 책임 경영·소수주주 보호 여전히 심각” = 두 번째 발표자로 나선 스테파니 린 아시아기업거버넌스협회(ACGA) 한국 리서치 헤드는 “한국은 최근 몇 년간 기업거버넌스 측면에서 진전을 보여왔다”면서도 “이사회의 책임 경영 및 소수주주 보호 측면에서는 여전히 구조적 문제가 심각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집중투표제는 소수주주가 지배주주의 과도한 영향력 행사 및 참호 구축 문제에 대응하여 균형을 맞출 수 있는 몇 안 되는 수단 중 하나”라며 “집중투표제 제도를 강화하는 것은 투자자 권익 보호뿐 아니라, 장기적인 거버넌스 개혁을 촉진하고 한국의 기업거버넌스를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시키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라고 주장했다.

◆글로벌 투자자 보호의 핵심 보호장치 = 이어진 패널 토론에서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집중투표제 활성화가 꼭 필요하다는 주장이 이어졌다.

젠 시손 국제기업거버넌스네트워크 (ICGN) 대표는 “기업 거버넌스를 강화하고 소수 주주가 실질적인 주주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은 기업가치를 높이고 하방 리스크를 방어하는 핵심 수단”이라며 “집중투표제는 글로벌 투자자 보호의 핵심 보호장치”라고 평가했다.

현재 나타나는 이사 선임 구조의 불균형 문제에 대한 지적도 나왔다.

최준철 VIP 자산운용 대표는 “49%의 지분을 보유해도 주총에서 단 한 명의 이사조차 선임할 수 없는 현재의 구조는 분명 정상이 아니다. 집중투표제는 최대 주주에 의한 제왕적 이사회를 견제와 균형이 살아있는 의사결정기구로 되돌리는 첫 단계에 해당한다”라고 강조했다.

오승재 서스틴베스트 공동대표 또한 “집중투표제는 기업 투명성 강화에 대한 시대적 요구이자, 독립성과 전문성을 갖춘 합리적 이사회 구성의 핵심 수단”이라며 “변화하는 경영환경 속에서 유능한 이사회 구성이 기업 경쟁력을 확보하는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일반 상장사 이사회 독립성 문제도 커 = 한편 국내 상장기업의 90% 이상이 자산총액 2조원 미만이며, 이들 기업의 평균 지배주주 지분율은 40.3%에 달한다. 이에 대규모 상장회사뿐 아니라 일반 상장회사에도 이사회 독립성 문제가 크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창환 대표는 “집중투표제 의무화 대상에서 제외된 자산총액 2조원 이하 기업들에 대해서는 상법 542조의 7에 관한 대통령령 개정을 통해 기존에 대규모 상장회사에서 적용되던 집중투표제 관련 정관 변경 시 의결권 3% 제한 규정의 적용 확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스테파니 린 리서치 헤드는 집중투표제가 실무적으로 직면한 행정적 문제점을 지적했다. 그는 “다수의 외국인 투자자들이 이용하는 의결권 대리행사 서비스사들은 집중투표의 핵심인 ‘표의 집중 및 분산’ 기능을 시스템적으로 구현하지 못한 경우가 많다”며 “제도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영문 주주총회 자료의 제공 △안건별 찬반 주식의 수 공개 등 글로벌 스탠더드에 부합하는 주주총회 행정 개선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집중투표제가 제대로 발현되기 위해 제도적 보완이 필요하다. 구현주 법무법인 한누리 변호사는 “일부 기업에 집중투표제가 의무화되더라도, 실제 주주총회에서 적용되기 위해서는 지분율 등 요건을 충족해야 하고, 회사 측의 제도 무력화 시도 역시 극복해야 한다”며 “집중투표제가 실효성을 갖기 위해서는 구체적인 절차 규정과 법령 및 가이드라인 등 상법 개정 외에도 구체적인 시행령과 지침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김영숙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