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C삼립 사망사고, 기계고장이 원인

2025-06-26 13:00:14 게재

국과수 “윤활유 자동분사장치 고장 … 자동멈춤 안전장치도 없어”

사측 “정상 작동” 주장 … 정부, 안전관리 투자 약속 이행 확인 중

지난달 19일 SPC삼립 시화공장에서 노동자가 기계에 끼여 숨진 사고 당시 해당 기계의 윤활유 자동분사장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사람이 직접 기계 안쪽으로 들어가 윤활유를 뿌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확인됨에 따라 사측이 책임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특히 당국은 SPC그룹이 잇단 사망사고 대책으로 약속했던 안전관리 구축 예산을 제대로 집행했는지 수사 중이다.

26일 고용노동부와 경찰 등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고 기계인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에 대해 “네트 양 끝 부위(컨베이어 벨트의 양 측면)에 오일 도포가 어려운 상태로 보인다”는 취지의 감정 결과를 내놨다.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는 3.5m 높이의 타원형으로 된 기계로 뜨거운 상태인 갓 생산된 빵을 컨베이어 벨트로 실어 나르며 식히는 역할을 한다. 이 기계에는 컨베이어 벨트의 원활한 작동을 위해 윤활유를 뿌려주는 자동분사장치가 설치돼 벨트 양 측면에 윤활유가 뿜어져 나간다. 하지만 사고가 난 시화공장 기계의 자동분사장치는 제구실을 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국과수는 윤활유 자동분사장치의 오일 호스 위치가 윤활유를 도포해야 하는 주요 구동 부위를 향하지 않고 있는 점 등을 근거로 이런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경찰과 고용부, 국과수,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 등은 지난달 27일 현장 합동 감식 당시 이뤄진 사고 기계에 대한 시험 구동에서도 컨베이어 벨트 양 측면에 윤활유가 뿌려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작업자가 직접 기계 안쪽으로 들어가 윤활유를 뿌리다 사고가 발생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사망한 노동자는 윤활유 용기를 들고 기계 밑으로 기어가듯 안쪽으로 들어가 내부의 좁은 공간에서 윤활 작업을 하다가 회전체와 지지대 사이에 몸이 끼어 숨진 채 발견됐다.

특히 국과수는 작동 중인 기계로 사람이 진입할 경우 자동으로 멈추는 등의 기능을 하는 안전장치가 마련돼 있지 않은 것도 확인했다.

이 때문에 국과수 감정결과가 수사를 통해 최종 확정되면 SPC삼립은 ‘회사가 노동자를 사지에 내몰았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SPC는 “사고 당시 자동분사 장치가 작동했다”며 “감식 당시엔 사고로 인해 설비가 일부 파손돼 정상 상태가 아니었을 수도 있어 수사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지난달 19일 윤활 작업 중이던 노동자가 숨지는 사고가 발생한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사고 당시 이 기계의 윤활유 자동분사장치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는 상태였다고 판단했다. 사진 시흥소방서 제공
경찰과 노동부는 SPC삼립 시화공장측이 사망 근로자가 사고 위험이 높은 환경에서 근무 중인 것을 알고도 묵인했는지 등을 집중적으로 수사할 방침이다.

양 기관은 김범수 대표이사와 법인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혐의로, 공장 센터장 등 7명을 업무상과실치사 혐의로 각각 입건한 상태이다.

경찰 관계자는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자료 분석 등을 통해 사고 원인 규명에 주력하고 있다”면서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의 감식 결과까지 나오면 사고 원인을 규명에 속도가 더 날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국회에서도 이번 사건에 대한 정부 대응이 논의됐다.

김민석 노동부 차관은 25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박해철 의원(더불어민주당)이 ‘허영인 SPC 회장이 2022년 사망 사고 후 3년간 1000억원을 투자해 안전관리 강화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는데 이행 여부를 확인했느냐’고 묻자 “보고는 받았으나 장소가 어디인지 가서 확인하는 절차는 거치지 않았다”고 답했다.

김 차관은 “중대재해가 발생하면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을 위해서 예산상 조치를 했는지 보게 돼 있으며 시화공장 사건에 대해서도 (SPC가) 안전보건 관리체계 구축을 위해서 얼마나 예산을 제대로 집행했는지 저희가 지금 수사 상황에서 보고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지난달 19일 오전 3시쯤 SPC삼립 시화공장 크림빵 생산라인에서 50대 여성 근로자가 스파이럴 냉각 컨베이어에 상반신이 끼이는 사고로 숨졌다. 사망자는 기계 안쪽으로 들어가 윤활유를 뿌리는 일을 하다가 참변을 당한 것으로 파악됐다.

현장에서는 사망자가 소지하고 있던 윤활유 용기가 발견됐는데, 이는 시중에 판매 중인 금속 절삭유 용기와 동일한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과 노동부는 해당 공장의 제빵 공정에서 공업용 윤활유가 사용된 것으로 의심하고, 이 용기와 내용물에 대한 감정 역시 국과수에 의뢰했다.

장세풍·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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