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강압외교, 미국이 저물어간다

2025-06-27 13:00:06 게재

조지프 나이 교수 사후 기고문

소프트파워는 되돌릴 수 없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 백악관에서 열린 ‘하나의 크고 아름다운 법안’ 행사에서 연설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강성일변도 외교 정책이 미국의 세계 리더십을 심각하게 훼손하고 있다는 지적이 커졌다. 로버트 오. 키오하네(프린스턴대학교 국제관계학 명예교수)와 고 조지프 S. 나이 주니어(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명예교수)는 외교전문매체 포린어페어(Foreign Affairs) 7-8월호 공동 기고문을 통해 이같이 경고했다.

특히 ‘소프트파워(연성 권력)’ 개념을 정립한 나이 교수는 지난달 초 별세해 이번 기고문이 생애 마지막 저술로, 유언과도 같은 경고로 해석된다.

◆경성권력과 연성권력 균형 붕괴 = 두 저자는 지난 80여년 동안 미국이 경성 권력(군사력과 경제력)과 연성 권력(문화, 가치, 제도 등)의 조화로 세계 질서를 이끌어왔다고 분석한다. 하지만 트럼프는 무역에서의 비대칭성을 무기로 삼아 주요 파트너국을 위협하고, 국제기구 탈퇴와 동맹 경시를 반복하면서 협력 기반을 허물고 있다. 이 같은 강압 중심의 외교 방식은 단기적으로는 효과가 있을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미국의 신뢰와 지도력을 손상시키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게 이들의 설명이다.

특히 ‘권력과 상호의존성’에서 강조된 바와 같이 상호의존 관계 속 무역 적자는 오히려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도구가 된다. 그러나 트럼프는 이를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하기보다는 일방적 압박 수단으로 삼았고, 미국국제개발처(USAID) 약화, 미국의소리(VOA) 축소, 인권 관련 부서 폐지 등 연성 권력의 핵심 도구들을 스스로 해체했다. 이러한 조치는 동맹국 및 국제사회에 미국의 리더십이 예측 불가능하고 불안정하다는 인식을 심어주며, 오랜 기간 축적해온 소프트파워의 신뢰를 무너뜨리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우려다.

이는 나이 교수의 마지막 생전 인터뷰와도 맥을 같이 한다. 그는 지난 4월 15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미국의 소프트파워는 트럼프 행정부 이전과 같은 수준으로 돌아가기 어려울 수 있다”고 경고했다. 베트남전 반미 정서 이후 미국의 이미지가 회복된 과거와는 달리 지금은 소셜미디어의 확산과 정보원 다변화로 민주주의 운영 자체가 어려워졌다. 더구나 전 세계가 “미국 유권자들이 다시 트럼프 같은 지도자를 뽑을 수 있다”고 우려하는 한 미국에 대한 신뢰 회복은 불가능하다는 진단이다.

◆ 세계화 수혜국에서 고립국으로 = 미국은 기술혁신, 이민, 자유무역을 통해 세계화의 최대 수혜국이자 주도국이었다. 특히 이민자들의 다양성과 창의성은 미국의 경제와 과학 발전을 이끌었다. 그러나 트럼프는 보호무역주의, 반이민 정책, 국제 협력의 거부 등을 통해 미국을 점차 고립시켜 나가고 있다. 이는 미국의 경제 활력뿐 아니라 과학기술 선도국으로서의 지위를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다. 아울러 미국 대학과 연구기관의 글로벌 인재를 유치하는 데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기후변화와 팬데믹 같은 초국가적 위기는 국제 협력을 통해서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과학자와 정책 결정자 간의 글로벌 네트워크는 신속한 정보 공유와 공동 대응의 핵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과학기술 연구비를 삭감하고, 국제협력 네트워크에서 미국의 참여를 축소했다. 이는 미국의 미래를 위한 투자와 글로벌 리더십 모두를 약화시키는 자해적 조치로 해석된다.

또한 트럼프는 인권과 민주주의라는 미국 외교의 상징적 가치들을 무시하고, 권위주의 정권과의 유대에 주력했다. 과거에는 미국이 독재 정권을 비판하고 민주주의 가치를 전파하는 데 앞장섰지만, 지금은 그런 목소리가 사라졌다. 그 결과 전 세계에서 미국의 연성 권력은 급속도로 쇠퇴하고 있으며, 미국이 주도했던 자유주의 질서는 점차 영향력을 잃고 있다.

저자들은 상호의존성과 세계화가 기술 진보와 인류 이동성의 필연적 산물임을 강조한다. 그 흐름을 역행하기보다 조율하고 이끌어가는 능력이야말로 현대 강대국의 조건이다.

그러나 트럼프는 동맹의 무임승차를 비난하면서도 실은 미국이 세계 질서의 방향을 결정할 ‘운전석’에 앉아 있다는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트럼프는 미국이 이끄는 국제 체제가 자국 이익에 가장 부합한다는 점을 보지 못하고, 단기적 승리에 집착한 결과 장기적 영향력을 포기하고 있다. 이 같은 전략적 오류가 미국의 세기를 조용히 마감시키고 있다는 것이 저자들의 고언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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