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관 진보·중도 우위로 바뀐다
이재명 대통령 재판관에 김상환·오영준 지명
9인 체제 복귀 … 진보·중도·보수 4·3·2 재편
이재명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후보자로 김상환(사법연수원 20기) 전 대법관과 오영준(연수원 23기) 서울고등법원 부장판사를 지명하면서 헌법재판소가 조만간 ‘9인 완성체’로 거듭날 전망이다. 두 후보자가 국회 인사청문회를 거쳐 임명되면 헌법재판관 9명의 성향은 진보 4명, 중도 3명, 보수 2명으로 진보·중도 성향 재판관이 다수를 차지하게 된다. 진보성향의 김상환 후보자는 헌법재판소장 후보도 겸하고 있어 임명되면 헌재의 판결 흐름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이재명 대통령은 26일 헌법재판관 겸 헌법재판소장 후보자로 김상환 전 대법관을 지명했다. 또 대통령 몫 헌법재판관 두 명 중 나머지 한자리의 후보자로는 오영준 서울고법 부장판사를 지명했다.
이들은 지난 4월 퇴임한 문형배·이미선 전 헌법재판관의 후임이다.
강훈식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대통령실에서 브리핑을 갖고 김 후보자에 대해 “헌법재판연구관과 대법관을 역임한 법관 출신으로, 헌법과 법률 이론에 해박한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며 “우리 사회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바탕으로 헌법 해석의 통찰력을 더해줄 적임자”라고 밝혔다.
오 후보자에 대해서는 “대법원 재판연구관 등을 역임한 판사로 법원 내에서도 손꼽히는 탁월한 법관”이라며 “헌재의 판단에 깊이를 더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두 후보자가 임명되면 헌재는 진보·중도 우세 구도가 만들어진다. 현재 헌법재판관 7명은 진보 2명(정계선·마은혁), 중도 3명(김형두·정정미·김복형), 보수 2명(정형식·조한창)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진보 성향인 김·오 후보자가 임명되면 진보 4명, 중도 3명, 보수 2명이 된다.
앞으로 이 대통령 임기 중에 헌법재판관 2명이 더 바뀐다. 김형두·정정미 재판관 임기가 각각 2029년 3월과 4월에 끝난다. 후임 지명권은 대법원장이 갖고 있는데 그때는 조희대 현 대법원장이 아니라 이 대통령이 임명한 대법원장이 지명권을 행사한다. 조희대 대법원장이 2027년 6월 정년(70세)으로 퇴임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관 성향이 진보·중도 우위가 한층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김상환, 권력·여론에 흔들리지 않는 소신 판결 = 김상환 후보자는 대법관을 지낸 법관 출신으로 헌법 이론에 정통하고 해석에 밝은 것으로 평가된다. 헌재에 파견돼 연구관으로 두 번 근무한 경력이 있다.
대전 출신으로 보문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1988년 30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을 20기로 수료했다.
1994년 부산지법 판사로 임관해 서울지법 의정부지원 판사, 서울지법 서부지원 판사, 대법원 재판연구관,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서울중앙지법 민사1수석부장 등을 지냈다.
판사 시절 세간의 관심이 집중된 주요 재판을 맡아 권력이나 여론에 흔들리지 않고 소신 판결을 내렸다는 평가를 받는다.
김 후보자는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이던 2011년 이명박정부 때 ‘실세’ 중 한명으로 꼽히던 신재민 전 문화체육관광부 차관에 대해 이국철 SLS그룹 회장에게서 억대 금품을 받은 혐의(특정범죄 가중처벌법상 뇌물수수 등)로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2015년 서울고법 부장판사 시절엔 공직선거법과 국정원법 위반 혐의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에서 1심과 달리 선거법 위반까지 유죄로 판단하면서 대선개입 혐의를 인정해 징역 3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문재인정부에서 김명수 대법원장 시기인 2018년 12월 대법관으로 임명됐다. 중견 법관으로 올라가면서 점차 진보적 판결을 많이 내렸다는 평가 속에 대체로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2021년 5월부터 2024년 1월까지 사법행정을 이끄는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2024년 12월 대법관 임기를 마치고 이듬해 제주대 법학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위촉됐다.
김 후보자는 법원 내 진보 성향 판사 모임인 국제인권법연구회 출신이다. 지난 2021년 법원행정처장으로 지명된 뒤 국제인권법연구회에서 탈퇴했다고 한다. 김 후보자의 형은 문재인정부 때 국가정보원 2차장과 3차장을 지낸 김준환씨다.
김 후보자가 임명되면 이강국 전 헌재소장(2007년 1월~2013년 1월) 이후 12년 만에 대법관을 역임한 헌재소장이 된다. 그동안 대법관 출신 헌재소장은 2대 김용준(1994년 9월~2000년 9월), 3대 윤영철(2000년 9월~2006년 9월) 전 소장과 이 전 소장 등 세 명이다.
김 후보자는 이날 헌법재판소를 통해 “국민의 기본권을 보장하고 헌법적 가치를 지켜온 헌법재판소의 길에 동참할 기회가 주어져 부족한 저에겐 큰 영예”라며 “무거운 책임감으로 청문 과정에 성실히 임하겠다”는 입장을 전했다.
◆오영준, 민사판례연구회 참여한 실력파 법관 = 오영준 후보자는 법관 경력만 30년이 넘는 정통 엘리트 법관이다.
대전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91년 33회 사법시험에 합격해 사법연수원 23기로 수료했다. 예전 서울지법(현 서울중앙지법)이 한때 민사부와 형사부로 나뉘어 운영되던 시절 서울민사지법에서 첫 판사 생활을 시작했다.
대법관들의 대법원 판결을 뒷받침하는 대법원 재판연구관에 이어 선임재판연구관을 거쳐 대법관을 보좌하는 최고 자리인 수석재판연구관까지 모두 지낸 대표적 실력파 법관으로 인정받는다. 서울지법 판사,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특허법원 부장판사, 서울고법 부장판사 등 재판 실무에서도 주요 자리를 거쳤다.
법리에 해박하고,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는 판결을 한다는 평가를 받는다. 판사들 사이에서는 평소 말투가 다소 느릿하지만 논의나 토의 때 논리가 선명해 법리적으로 자기 목소리를 확실히 내는 판사로 통한다.
재판연구관 시절에는 민사뿐만 아니라 지식재산권, 상사, 형사 분야 등을 모두 거쳐 법리 해석에 능하다는 평을 들었다. 특히 다양한 분야에서 깊이 있는 논문을 많이 써낸 것으로도 법원 내에서 유명하다.
법원 ‘엘리트 판사’ 모임인 민사판례연구회에 참여했고 진보 성향 판사 모임으로 통했던 옛 우리법연구회에도 과거 속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좌우 등 특정한 성향이나 관념에 따라 접근하는 스타일은 아니라는 평이 많다. 다양한 분야에 해박한 법리 실력을 토대로 헌법재판소에서 법리의 무게중심을 잡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2022년 9월 윤석열정부 당시 첫 대법관 인선에서 최종 후보로 추천됐고, 지난해 6월에도 다시 최종 후보군에 이름을 올렸다.
배우자는 우리법연구회 소속이었던 김민기 수원고법 판사다.
서울고법 부장판사 재직 당시 남성 아동·청소년들의 알몸 사진과 영상을 인터넷을 통해 유포한 피고인에게 징역 10년을 선고하는 판결을 했다.
전국민주청년학생총연맹(민청학련) 사건에 연루돼 실형이 확정됐던 전 한국기독학생총연맹(KSCF) 총무 이직형씨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하기도 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