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개혁 앞두고 검찰 고위직 물갈이
심우정 총장 사퇴하자 주요 고위간부 전격 인사 단행
개혁 동력 확보 포석 … 새 정부 개혁 추진 인사 전면 배치
이재명정부의 검찰개혁 프로젝트는 검찰 고위직 간부 인사로 시작됐다. 정성호 법무부장관 지명과 이진수 법무부차관, 봉욱 민정수석 임명에 이어 검찰 고위 간부를 연이어 물갈이 했다. 심우정 검찰총장과 이진동 대검 차장 등 윤석열정부 검찰 고위직 간부들이 사표를 낸 사실이 알려진 날 곧바로 이뤄진 조치다. 인적 쇄신을 통해 검찰 개혁 동력을 확보하려는 조치로 풀이된다.
문재인정부에서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에 나섰을 당시 중책을 맡았던 이들을 중용함으로써 검찰의 주류를 교체하고 이재명 대통령 친정 체제를 구축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법무부는 대검검사급(검사장) 검사 3명에 대한 신규 보임 및 대검검사급 검사 4명, 고검검사급(차장·부장검사) 검사 2명에 대한 전보 인사를 4일자로 시행했다고 1일 밝혔다.
법무부는 “새 정부 출범에 따라 분위기를 일신하고 국정기조에 부합하는 법무행정을 실현하기 위해 실시했다”고 밝혔다.
검찰 ‘2인자’ 대검찰청 차장(고검장급)에는 노만석(사법연수원 29기) 대검찰청 마약·조직범죄부장이, 전국 최대 규모 검찰청으로 각종 중요 수사를 담당하는 서울중앙지검 수장으로는 정진우(29기) 서울북부지검장이 임명됐다. 서울동부지검장에는 임은정(30기) 대전지검 중요경제범죄조사단 부장검사가 깜짝 승진 보임됐으며, 서울남부지검장에는 김태훈(30기) 서울고검 검사가 임명했다.
법무부 장·차관을 보좌해 정책을 총괄하는 기획조정실장에는 최지석(31기) 서울고검 감찰부장이, 검찰 인사·조직·예산을 총괄하는 핵심 자리인 법무부 검찰국장에는 성상헌(30기) 대전지검장이 각각 보임됐다. 송강(29기) 검찰국장은 고검장으로 승진해 광주고검장으로 자리를 옮긴다.
김수홍(35기) 서울남부지검 금융조사1부장은 법무부 검찰국의 핵심이자 선임과장인 검찰과장에 보임됐다. 임세진(34기) 법무부 검찰과장과 서로 자리를 맞바꾸게 됐다.
◆예상 깨고 전격 인사 = 이날 인사는 법조계의 일반적인 예상을 깨고 전격적으로 이뤄졌다.
통상 검찰 고위 간부 인사는 법무부 장관이 검찰 수장인 총장과의 협의를 거쳐 진행한다.
불과 이틀 전인 지난달 29일 이재명 정부 첫 법무부 장관 후보자로 이 대통령 측근인 5선 정성호 의원이 지명됐고, 인사청문회 준비단이 갓 꾸려진 상태라 검찰 고위 인사는 장관이 취임한 뒤가 될 것이란 전망이 많았다.
여기에 심우정 검찰총장이 취임 9개월여 만인 전날 전격 사의를 표명한 사실까지 알려지면서 인사가 더욱 늦춰지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하지만 관례를 깨고 전격적으로 인사가 단행된 것이다. 이는 이재명정부가 검찰 수뇌부 조기 교체를 통해 검찰 개혁의 고삐를 바짝 죄겠다는 의지가 담겼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의도는 일부 인사 내용을 보면 읽혀진다.
과거 문재인정부가 추진한 ‘검수완박 시즌1’ 시기 검찰 내에서 중책을 맡았다가 윤석열정부 들어 ‘친문 검사’로 찍혀 변방으로 물러났던 이들이 주요 보직을 받아 부활했다.
서울남부지검장으로 임명된 김태훈 서울고검 검사는 법무부 검찰과장 시절 박범계 당시 법무부 장관을 직접 보좌하며 검찰의 직접 수사 범위를 축소하는 내용의 직제개편안을 주도했다. 이후 서울중앙지검에서 특수수사를 총괄하는 4차장으로 영전했고, 윤석열정부가 들어서면서 한직으로 분류되는 고검 검사로 밀려났다.
최지석 신임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은 2021년 당시 대검 형사정책담당관으로 김오수 전 검찰총장을 보좌해 민주당의 검수완박 법안의 대응 논리를 짠 것으로 알려져있다.
서울동부지검장으로 깜짝 승진한 임은정 부장검사는 지속해서 검찰의 ‘제 식구 감싸기’ 관행 등을 비판하는 등 내부고발자 역할을 해온 인물이다.
이런 그의 행보 때문에 이재명정부의 국민추천제를 통한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전반적으로 수사·기소 분리를 큰 틀로 하는 검찰 개혁에 대한 이해도가 높고 현 정부의 검찰 개혁 기조를 밀도 있게 추진할 수 있는 인물이 전면에 배치됐다는 평이다.
◆심우정 총장 사퇴 “(검찰개혁) 시한·결론 정해 추진 땐 부작용” = 앞서 심우정 검찰총장을 비롯한 검찰 고위간부들이 잇따라 사의를 표명했다. 이재명정부가 추진하는 검찰개혁에 대해 우회적으로 강한 우려를 나타냈다.
대검찰청은 2일 오전 심우정 검찰총장이 비공개 퇴임식을 가졌다. 지난해 9월 16일 임기를 시작한 지 9개월여 만이다. 심 총장과 함께 사의를 표명한 이진동(28기) 대검 차장, 신응석(28기) 서울남부지검장, 양석조(29기) 서울동부지검장, 변필건(30기) 법무부 기획조정실장은 1일 의원면직됐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달 29일 최측근인 5선 국회의원 정성호 법무부 장관과 검찰의 대표적 기획통 출신 봉욱 민정수석비서관이 검찰개혁을 이끌 ‘투톱’으로 낙점한 가운데 임기 2년을 마치지 못하고 전격 퇴진을 결정한 것이다.
심 총장은 이날 마지막 출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이재명정부가 추진 중인 검찰개혁과 관련해 “범죄를 처벌하고 국민을 범죄로부터 지키는 국가 형사사법시스템은 국민의 기본권과 직결되는 문제”라며 “형사사법시스템은 국가 백년대계로 설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는 “각계각층 의견을 충분히 듣고 깊이 있고 신중한 논의를 거쳐 국민이 필요로 하고, 또 국민을 위하는 일선 검사들이 사명감을 갖고 국민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국가백년대계로서 형사사법시스템이 설계 돼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앞서 심 총장은 전날 200여자 분량의 짧은 입장문을 내고 “저는 오늘 검찰총장의 무거운 책무를 내려놓는다”며 “여러 상황을 고려했을 때 지금 직을 내려 놓는 것이 제 마지막 책임을 다하는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심 총장은 “형사사법제도는 국민 전체의 생명, 신체, 재산 등 기본권과 직결된 문제”라며 “시한과 결론을 정해놓고 추진될 경우 예상하지 못한 많은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계, 실무계 전문가 등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듣고 심도깊은 논의를 거쳐 국민을 위한 형사사법제도가 만들어져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심 총장이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취임 9개월여 만에 사퇴하면서 1988년 12월 검찰총장 임기를 2년으로 보장하는 법률이 시행된 이후 임기를 채우지 못한 16번째 중도 퇴임 총장이 됐다.
앞서 김오수 전 총장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입법 움직임에 대한 반발로, 채동욱 전 총장은 혼외 아들 의혹으로 각각 중도 퇴진했다. 김준규·한상대·김수남 전 총장 등도 임기를 채우지 못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