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거리 물가 ‘불안불안’…이재명 경제팀 시험대 올랐다
상반기에만 무 54%·배추 27%·김 25% 올랐다
역대 최장 폭염 예보에 농작물 작황 또 불확실
가공식품 가격도 껑충, 초콜릿 17%·커피 9%↑
관세대응·내수 대응에 물가관리까지 숙제 쌓여
먹거리 물가가 불안하다. 상반기에만 주요 작물들이 20%~60%까지 올랐다. 올 여름 역대 최장 폭염이 예고되면서 하반기에도 주요 농산물·과일의 작황전망도 불안하다. 지난해 ‘사과값 폭등’의 수준과 규모를 뛰어넘는 물가난이 우려된다.
또 다른 장바구니물가 지표인 가공식품 가격은 이미 많이 올랐다. 지난해 12.3 내란정국이 길어지면서 정부 규제가 느슨해진 틈을 타 식품회사들이 줄줄이 가격인상에 나선 영향이다. 여름철 이상기후와 중동분쟁에 국제원자재 가격이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 이를 명분으로 가공식품과 외식 가격이 더 오를 수 있다. 이미 관세전쟁과 내수부진 대응이란 큰 숙제를 받은 이재명정부 경제팀에 ‘물가 관리’란 난감한 과제가 추가된 모양새다.
◆전체 물가지표는 비교적 안정 = 올해 상반기 소비자물가는 작년 보다 2% 가량 올랐다. 전체 물가 지표는 비교적 안정됐지만, 먹거리 가격은 급등해 물가 불안 요소로 지목됐다.
3일 통계청 소비자물가동향을 보면 올해 상반기 소비자 물가는 작년 동기보다 2.1% 상승했다. 상반기 기준으로 2021년(2.0%) 이후 4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상반기 물가상승률은 2022년 4.6%에서 2023년 3.9%, 지난해 2.8%로 점차 낮아지는 추세다.
문제는 일부 먹거리 물가 상승률이 전체 소비자물가를 크게 웃돌고 있다는 점이다. 먹거리 가격은 서민생활과 직결된다. 저소득층일수록 전체 소비지출에서 먹거리지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특히 수산·축산물 물가지수는 올해 상반기 각 5.1%, 4.3%나 올랐다. 올해 초부터 가격이 줄줄이 인상된 가공식품과 외식 물가도 3.7%, 3.1%씩 상승했다.
◆이상기후에 일부 농작물값 급등세 = 품목별로는 무가 올해 상반기 54.0% 뛰어 전체 품목 가운데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어 보리쌀(42.0%), 오징어채(39.9%), 컴퓨터 수리비(27.9%), 배추(27.0%), 김(25.1%), 찹쌀(23.8%) 순으로 상승률이 높았다.
통계청 관계자는 “배추와 무는 폭우와 기온 등 영향으로 올해 출하량이 줄어들면서 올 초부터 계속해서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고 말했다.
보리의 경우 지난해 재배면적이 감소했고, 오징어채의 경우 바다 수온이 높아져 오징어 어획량이 줄었기 때문이라는 게 통계청의 분석이다.
연초부터 출고가 인상이 이어진 가공식품도 가격 상승세가 심상찮다. 초콜릿(17.0%)과 시리얼(9.9%), 커피(8.8%) 등의 상승률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먹거리 가격, 서민에 직격탄 = 이같은 장바구니 물가, 특히 먹거리 가격 급등은 저소득층일수록 더 괴롭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올해 1분기 전국 1인 이상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 가운데 식료품·비주류음료 지출과 식사비(외식비) 지출이 차지하는 비율은 29.2% 수준이다. 관련 통계를 집계하기 시작한 2019년도 1분기(26.5%) 이후 1분기 기준으로 가장 높다.
그만큼 식비 부담이 커졌다는 뜻이다. 과거엔 외식비를 제외한 엥겔지수를 활용했지만, 점차 집밥 대신 외식하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외식비까지 고려해야 현실을 정확히 반영할 수 있다. 식비 부담이 늘면 주거·교육·의료 등 다른 주요 지출을 줄일 압박이 커진다. 전반적인 소비 감소로 내수 경기 부진을 더 악화시킬 수도 있다.
특히 서민들에겐 직격탄이다. 소득 1분위(하위 20%) 가구의 먹거리 지출 비중은 32.5%로 평균치보다 3.3%p 높다.
저소득층일수록 전체 지출이 적기 때문에, 고정지출을 해야 하는 식비 비율이 높을 수밖에 없다.
◆식품물가, OECD서 2번째 높아 = 식품물가지수 상승률은 최근 5년간 전체 물가인상지표를 웃돌고 있다. 연간 식품물가지수 상승률은 2020년 2.9%→2021년 4.7%→2022년 6.9%, 2023년 5.6%→지난해 3.6%다. 같은 기간 전체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률보다 상승 폭이 크다. 올해도 지난 1분기 전체 소비자물가지수가 2.1% 상승하는 데 그쳤지만, 식품물가지수는 2.7%로 더 뛰었다.
여기에는 △2020년 확산한 코로나19 사태 △이상기후에 따른 농산물 작황 부진 △러·우 전쟁에 따른 공급망 차질 등이 복합적으로 영향을 미쳤다. 여기에 고율의 배달앱 수수료 등도 외식비를 올린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이스라엘과 이란의 군사 분쟁으로 국제유가가 급등하면서 식품물가에 미칠 후폭풍이 우려된다.
국제적으로 비교해봐도 우리나라 식품가격이 높다. 국제협력개발기구(OECD) 집계를 보면 우리나라 식료품 및 음료 가격 수준(2023년 기준)은 147로 평균치(100)보다 높다. OECD 38개 회원국 가운데 스위스(163)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이다. 미국(94)·일본(126)·영국(89)·독일(107) 등은 한국보다 낮았다.
◆이 대통령도 ‘효과적 대책’ 주문 = 정부는 올해 초 경제정책방향에서 올해 소비자물가상승률을 1.8%로 전망했다. 다만 조만간 내놓을 새 정부 경제정책방향에서 이를 다시 점검할 예정이다. 한국은행은 지난 5월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을 1.9%로 예상했다.
정부도 먹거리 물가 안정대책 마련에 고심이 커지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이 기획재정부 업무보고를 받으면서 우선 순위로 지목한 것도 ‘물가’였다는 후문이다.
이 대통령은 지난달 9일 비상경제점검 태스크포스(TF) 2차 회의에서 “최근 물가가 엄청나게 많이 올랐다고 하더라”며 “라면 한 개에 2000원 한다는데 진짜냐”고 물었다. 이 대통령은 “물가는 국민들에게 큰 고통을 준다”며 “가능한 대책이 뭐가 있을지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구윤철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도 지난달 29일 기자간담회에서 “매일 사는 계란, 라면, 콩나물 가격 같은 생활물가에 중점을 두겠다”고 말했다. 6월 라면값은 6.9% 올라 21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우선 여름배추 수급 안정을 위해 추석 전까지 정부 가용물량 전량인 3만6000톤을 시장에 내보내기로 했다. 또 사과와 배의 정부 가용물량도 각각 1만2000톤과 4000톤으로 확대한다. 가격이 상승세인 감자에 대해서는 계약재배(1000톤 분량)를 추진한다.
수입 닭고기 공백 최소화를 위한 조치도 점검했다. 태국산 닭고기는 7월 말, 브라질산 닭고기는 8월 중순부터 국내로 유입될 예정이다.
성홍식 기자 ki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