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EU 가입 협정 국민투표 부치기로

2025-07-03 13:00:05 게재

주권-단일시장 중 선택해야

국민투표서 부결로거부땐

과학협력·무역 제재 가능성

스위스가 유럽연합(EU) 단일시장 접근권을 유지하기 위해 EU 규제를 자동 수용하는 새로운 협정을 체결하고, 이를 국민투표에 부치기로 했다고 파이낸셜타임스(FT)가 1일(현지시간) 전했다. 직접민주주의 전통이 강한 스위스가 외국 법과 사법권을 받아들이는 내용을 자국민에게 최종 판단받겠다는 것이다.

해당 협정은 스위스와 EU가 10여 년간 협상 끝에 지난해 12월 서명한 것으로, 약 1000쪽에 이른다. 주요 내용은 스위스가 EU 단일시장에 안정적으로 접근하는 대신, 연간 3억7500만유로를 EU 예산에 분담하고, 이민자 수용과 함께 전기, 운송, 식품안전, 노동 등 6개 분야에서 EU 법률 개정을 자동 반영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스위스는 자국 내 기존 120여개의 분야별 EU 협정 위에 새로운 6개 시장접근 협정을 추가로 체결하게 되며, 협정 불이행 시 EU는 보복 조치를 취할 수 있다. 이로써 스위스는 단일시장 접근의 대가로 입법·사법 자율성을 일정 부분 포기하게 된다.

해당 협정이 발효되면 스위스는 EU 과학기술 프로그램 ‘호라이즌 유럽’, 원자력 공동체 ‘유라톰’, 유학생 교류사업 ‘에라스무스’ 등에 재참여할 수 있게 된다. EU는 과거 2021년 스위스가 협상을 중단했을 때 ‘호라이즌 유럽’ 참여 자격을 박탈한 전례가 있어, 이번 협정이 무산될 경우 유사한 제재가 가해질 수 있다.

다만 사법권 양도에 대한 우려를 고려해, 협정은 독립 중재기구를 통해 분쟁을 해결토록 명시했다.

그러나 EU 법 관련 사안은 중재 패널이 유럽사법재판소(CJEU)에 법적 해석을 요청해야 하며, 그 판결에 구속된다. 전문가들은 “중재는 명목일 뿐 실질적으로는 CJEU가 결정권을 쥔다”고 지적한다.

스위스 내부에서는 주권 침해 논란이 확산 중이다. 반EU 단체인 ‘콤파스 유로파’는 협정 반대를 위한 국민투표 서명운동에 착수했으며, 극우 성향의 스위스국민당(SVP)은 협정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좌파 진영 일부도 같은 입장이며, 중도 정당들은 아직 공식 입장을 정하지 않았다.

반대 측은 “EU 법 수용은 스위스의 직접민주주의 원칙을 훼손하며, 경제 경쟁력도 떨어뜨린다”고 주장한다.

현재 협정안은 가을까지 대국민 여론 수렴 절차를 거친 뒤, 의회에 제출돼 본격적인 심의에 들어간다. 정부는 2027년 6월까지 국민투표를 실시할 방침이나, 같은 해 총선과 겹칠 경우 2028년으로 연기될 수 있다.

이번 협상은 안보와 방위 측면에서도 주목받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NATO 등 유럽 안보 보장을 철회하겠다고 위협한 이후, 영국과 스위스 모두 EU와의 안보 협력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EU는 공식적으로는 스위스와 영국 협상을 별개로 다룬다고 하지만, 협상 실무진이 상당 부분 겹치며 핵심 조항의 내용도 거의 동일하다는 분석이 나온다.

스위스는 다시 한번 국민의 선택을 앞두고 있다. 주권을 일부 양보하더라도 단일시장 접근이라는 실리를 취할 것인지, 아니면 독립을 고수할 것인지가 향후 유럽과의 관계를 좌우할 전망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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