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메가 법안’ 미 의회 통과
'MAGA' 국정 드라이브 본격화 … 감세·불법이민 단속·복지 축소 법제화
이번 법안은 재임 2기 출범 5개월 만에 트럼프 대통령이 대선 공약을 법제화한 상징적 조치다. ‘MAGA’(Make America Great Again,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프로젝트의 실질적 입법화로 평가된다.
법안의 핵심은 감세다. 개인 소득세와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팁 및 초과근무 수당 면세, 상속세 면제 확대, 자녀 세액공제 상향 조정 등이 포함돼 총 4조5000억달러(약 6116조원) 규모의 감세가 이뤄진다.
연방 의회예산국(CBO)은 이번 법안 시행으로 미국의 세입이 향후 10년간 동일 규모만큼 감소하고, 국가부채는 최소 3조3000억달러(약 4485조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안보 및 국경통제 강화도 큰 축이다. 국경 장벽 건설, 불법이민자 단속 인원 확충, 구금시설 확대에 175억달러가 배정됐다. ‘골든돔’ 구축 등 미 본토 방어를 위한 국방예산은 1500억달러 늘어난다.
우주 탐사와 위성 통신망 구축, 5G·6G 통신망 지원에도 대규모 예산이 책정됐다. 전미제조업협회(National Association of Manufacturers)와 방위산업체, 우주산업계 등이 이 법안에 강하게 지지 의사를 밝힌 바 있다.
반면 복지 예산은 대폭 삭감됐다. 메디케이드(취약계층 대상 공공 의료보조)와 푸드 스탬프(저소득층 식료품 지원)의 수급 조건이 강화됐고, 일부 수혜자는 근로 요건을 충족하지 못할 경우 지원이 중단된다.
오바마케어(Affordable Care Act)로 자격을 얻은 수혜자는 일정 비용을 부담해야 한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CBO는 약 780만명이 의료 혜택을 잃을 것으로 전망했고, 예일대 예산 연구소는 하위 20% 납세자의 평균 부담이 연간 560달러 증가할 것이라 분석했다.
기후 관련 정책도 크게 후퇴했다. 조 바이든 전 대통령의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을 통해 추진되던 전기차 및 청정에너지 세액공제가 단계적으로 폐지된다. 전기차 구매시 제공되던 최대 7500달러(약 1016만원)의 보조금은 2032년에서 올해 9월로 종료 시점이 앞당겨졌으며, 태양광 및 풍력 설비에 대한 세제 혜택도 연내 종료된다.
이에 따라 테슬라, GM, 재생에너지 기업 등은 타격을 입게 됐다.
하원에서는 찬성 218표, 반대 214표로 법안이 통과됐다. 민주당 의원 전원과 공화당 일부 의원이 반대표를 던졌으나, 트럼프 대통령과 공화당 지도부는 강경 보수파를 설득하며 표 단속에 성공했다. 상원에선 표 대결이 동수로 갈렸고, JD 밴스 부통령이 캐스팅보트를 행사해 법안이 가까스로 가결됐다. 민주당 하킴 제프리스 원내대표는 법안 저지를 위해 8시간 45분 동안 반대 연설을 이어가며 역대 최장 기록을 세웠다.
이번 법안은 한국 기업에도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미국 내 반도체 설비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는 기존 25%에서 35%로 확대됐다. 지난 5월 미 하원을 통과했던 30%보다도 높은 수준이다.
다만 전기차 세액공제 폐지로 인해 한국 전기차 제조업체들은 미국 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을 잃을 수 있다.
법안의 전방위 조정력은 트럼프 대통령의 공화당 내 지배력에서 비롯됐다는 평가가 많다. 당내 반대 의견에도 불구하고 표 단속에 성공한 점, 의회 지도부와의 긴밀한 협력, 국정 전반을 아우르는 포괄적 입법 추진 모두 트럼프 중심의 공화당을 재확인했다는 분석이다.
다만 복지축소와 재정적자 증가가 내년 11월 중간선거에서 부메랑이 될 수 있다는 경고도 나온다. 민주당은 이번 법안을 ‘트럼프의 실정’으로 규정하고, 중산층과 저소득층의 피해를 선거 이슈화할 방침이다.
이번 ‘OBBBA’는 트럼프 대통령의 정치적 승리이자 정책 실행의 제도적 발판이다. 하지만 사회적 갈등과 재정 부담이라는 이면을 안고 있어 향후 미국 정국의 핵심 변수로 남을 전망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