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관세 앞두고 미국으로 ‘구리 대이동’
톤당 1만달러 최고치 경신
재고 급감에 가격왜곡 심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구리 수입에 대해 새로운 관세를 부과할 가능성이 제기되면서, 글로벌 시장에서 구리 확보 경쟁이 격화되고 있다. 이 여파로 3일(현지시간) 런던금속거래소(LME)에서 거래되는 구리 가격은 최근 톤당 1만달러를 돌파하며 3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에 의하면 지난 수개월간 미국 수입업체들은 관세 위험을 피하기 위해 유럽과 아시아 등지에서 대량의 구리를 미국으로 선적해 왔다. 이로 인해 LME의 글로벌 창고망에 보관된 구리 재고는 2023년 이후 최저 수준으로 감소했다. 판뮤어 리버럼의 애널리스트 톰 프라이스는 “미국 이외의 모든 지역에서 미국으로 금속이 광란처럼 이동하고 있다”며 “현재 구리는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금속 시장”이라고 표현했다.
이러한 수급 불균형은 시장 구조에도 영향을 미쳤다. 일반적으로 선물 가격이 현물보다 높은 ‘콘탱고’가 유지되는 구리 시장에서 최근에는 반대 현상인 ‘백워데이션’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주에는 현물 가격이 3개월 선물 가격보다 톤당 400달러 가까이 높아지며 2021년 이후 최대 격차를 기록했다.
백워데이션은 선물 계약을 보유한 투자자들에게 위험 요소로 작용한다. 보통 계약 만기 시 현물을 인도하지 않고 차익거래를 위해 계약을 갱신(롤오버)하지만, 현물 가격이 더 높으면 손실이 발생한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는 일종의 ‘숏 스퀴즈’(계약 이행을 위해 실제 금속을 확보하려는 매수 경쟁)가 일어나고 있으며, 이는 추가적인 가격 상승 압력으로 작용하고 있다.
LME는 시장의 급격한 변동성을 완화하기 위해 지난달 특정 대규모 포지션 보유자에게 대출 요건을 부과하는 규정을 도입했다. 이는 일부 거래자들이 단기간에 대량의 구리를 확보하려 하면서 시장 안정성이 위협받고 있다는 판단에 따른 조치다.
시장 긴장을 더욱 키우는 요인은 공급 측 불안이다. 캐나다 광산회사인 이반호 마인즈가 공동 소유한 콩고민주공화국의 대형 카쿨라(Kakula) 광산은 지난 5월 홍수로 피해를 입어 생산에 차질이 생겼고, 유럽과 아시아 주요 지역에서는 구리 확보 경쟁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실제로 LME 자료에 따르면, 한 익명의 매수자가 전체 재고의 50~80%에 해당하는 구리에 대한 구매 권리를 확보한 것으로 나타났다.
글로벌 원자재 브로커인 마렉스(Marex)의 알래스터 먼로는 “이 매수자는 자금력이 매우 풍부하며, 이는 구리 시장에 큰 변화를 가져오고 있다”며 “2년 내에 실질적인 공급 부족 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한 “이들의 포지션이 실제로 물리적 인도를 요구하지 않더라도 시장에 긴장을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이번 사태는 단순한 가격 급등을 넘어, 글로벌 금속 시장의 구조적 취약성과 정치적 리스크가 맞물릴 때 얼마나 빠르게 시장이 반응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