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김현중 안전보건공단 이사장
‘K-산업안전보건’ 구축, 세계제일 선도국가 기반 마련
“안전할수록 더 빠르고 생산성 향상” … 현장노동자 눈높이 맞춘 수요자 중심으로 실효성 높여야
“한국은 굉장히 빨리 산업화를 이뤘다. 지금은 정보기술(IT) 강국이고 K-팝, K-드라마, K-조선 등 다양한 영역에서 한류가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산업안전만 제대로 못한다. 빨리빨리 성과를 내려는 과정에서 안전을 빨리의 장애물로 인식한다. 안전은 천천히 가자는 게 아니다. 안전에 신경을 쓸수록 사고가 덜 나고 공사나 생산이 중단되지 않기 때문에 안전할수록 더 빨라지고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인식이 현장에 확산돼야 한다.”
지난달 20일 서울 중구 한국산업안전보건공단(공단) 서울광역본부에서 만난 김현중 공단 이사장의 일성이다. 2월 24일 취임한 김 이사장은 임기 중 ‘K-산업안전보건체계’ 구축을 제시했다.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되는 시대다. 산업안전보건도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단기성과도 중요하지만 다변화하는 산업환경을 반영하고 공단의 체질개선으로 새로운 산업안전보건체계를 구축해 우리나라가 세계제일의 산업안전보건국가로 도약할 수 있는 기반을 만들어야 한다”고 밝혔다. 공단은 이를 위해 5월부터 전사적 태스크포스(TF)가 운영되고 있다. 공단의 기존 사업과 조직 인사 등 전분야에 걸쳐 세부 실행과제와 개선방안 등을 마련해 올 연말까지 완료할 계획이다.
7월은 ‘산업안전보건의 달’이다. 7일 경기 고양시 킨텍스에서 ‘산업안전보건의 날 기념식’을 시작으로 10일까지 4일간 ‘2025 스마트 안전보건박람회’가 열린다. 1만여점의 다양한 안전보건 제품이 전시·시연되고 스마트 안전존(Zone)에서는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기술 등을 활용한 추락 시 인체보호용 에어백, 안전로봇 등이 선보인다.
●지난 2월 취임한지 4개월이 지났다.
그동안 중대재해가 발생한 현장을 주로 방문했다. 취임 바로 다음날(25일) 발생한 세종-안성 간 고속도로 교량 붕괴사고 현장을 비롯해, 6월 발생한 태안화력발전소 끼임사고 현장을 찾아 사고원인 조사와 지원 상황 등을 살폈다. 사고현장에서 기본적인 안전조치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거나 예측 가능한 사고임에도 안전설비를 제대로 설치하지 않은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늘 일하는 고정된 작업공간 같은 곳은 충분히 위험이 예상됨에도 필요한 안전설비를 갖추지 않고 일하다 사고가 발생해 많은 아쉬움이 남았다. 더 이상 노동자의 생명과 건강이 위협받지 않는 안전한 일터를 만들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감을 느꼈다. 공단의 전국 일선기관을 방문해 지역별 산재현황을 점검하고 직원들과 소통하며 경영철학인 ‘K-산업안전보건체계’ 구축의 필요성을 공유했다.
●5월 SPC삼립 경기 시화공장에서 50대 노동자가 끼임사고로 사망했다. 이 회사는 2022년 평택시 제빵공장에서 끼임사고로 20대 노동자가 사망해 800억원이 넘는 비용을 안전에 투자했다. 왜 이런 사고가 재발한다고 보는가?
법·제도가 강화되면서 기업의 안전보건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확대됐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보면 산업현장의 안전관리 수준이나 인식은 아직도 미흡한 것 같다. 산업현장에서는 아직도 안전을 형식적인 것으로 인식하고 서류작성 등에 불필요한 시간과 노력을 투입하는 경향이 있다. 끼임사고와 같은 후진적인 재해가 반복해서 발생하는 이유는 이러한 관행과 인식이 계속되기 때문이다.
안전을 생산성과 별개로 생각한다. 안전에 신경을 쓸수록 사고가 덜 나고 생산이 중단되지 않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안전할수록 생산성이 향상된다는 인식이 현장에 확산돼야 한다. 눈에 보이는 위험에 대한 조치 없이 작업을 하는 것은 사고예방에 기본이 갖춰지지 않은 것이다. 인간은 실수한다는 전제하에 예견되는 위험요인, 예측 가능한 재해부터 막는 것이 안전보건의 기본이자 출발점이다.
지금까지 산재예방사업이 점검과 기술지원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평가와 환류체계를 강화해 ‘집행-평가-환류’로 이어지는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지난해 산재 사고사망자가 827명이다. 최근 5년간 800명대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안전에 특별한 비법이나 묘약은 없다. 기본과 원칙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사고는 비용을 아끼거나 불편하다는 이유로 안전설비를 설치하지 않거나 제거할 때 발생한다. 또 안전수칙이나 안전매뉴얼을 무시할 때 발생한다.
정체상태의 산재 사망사고를 감소세로 전환하기 위해서는 기존과 다른 산재예방사업이 운영돼야 한다. 지금까지 사업이 점검과 기술지원 중심으로 이뤄졌다면 이제는 평가와 환류체계를 강화해 ‘집행-평가-환류’로 이어지는 촘촘한 안전망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통해 산재예방사업이 현장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제대로 작동하는지 확인하고 현장에서 작동하지 않는 사업이 있다면 제로베이스에서 다시 검토해야 한다. 이러한 운영방식은 현장 노동자 눈높이에 맞춘 수요자 중심의 실효성 있는 사업수행으로 산재 사고사망자 감소에도 기여할 것이다.
●산재가 소규모사업장이나 하청업체 등에서 많이 발생한다. 특히 특수형태근로종사자나 플랫폼 노동자, 외국인노동자 등이 산재에 취약하다.
50인 미만 사업장에서 산재 사망사고로 목숨을 잃은 노동자는 지난해 670명으로 전체 사고사망자 827명의 81%를 차지했다. 하청노동자 산재사망 역시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공단은 산재에 취약한 50인 미만 사업장 중심으로 작업환경 개선을 위한 재정지원을 한다. 올해 약 9000억원 예산으로 2만여개 사업장을 지원하고 중소사업장 안전보건관리체계 구축을 위해 3만여개 사업장에 컨설팅을 하고 있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안전보건 격차 해소를 위해 ‘중소기업 안전보건 상생협력 사업’을 하고 있다. 산재 취약계층인 플랫폼 종사자의 충돌사고 예방을 위해 앱을 활용한 실시간 안전정보 제공, 장시간 노동에 따른 뇌심혈관질환 예방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재해예방을 위해서도 올해 ‘외국인전담팀’을 신설하고 국내 입국 전부터 취업 후까지 17개 송출국 언어로 안전교육을 지원하고 있다.
●새정부 출범에 따라 ‘중대재해 처벌 등에 관한 법’(중대재해법)이 개선되거나 보다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중대재해법은 우리 사회가 더 이상 산재로 소중한 생명을 잃지 않도록 하기 위해 만든 법이다. 법의 실효성에 대한 이견도 있지만 과거와 달리 기업의 안전보건에 대한 관심과 투자가 확대된 것이 사실이다. 법 시행 4년차를 맞아 그동안의 운영결과를 토대로 사회적 대화를 통해 발전 방안을 찾아야 한다. 노사 대표와 사회단체, 그리고 정부가 함께 논의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해 효과적인 법·제도로 발전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예를 들면, 안전보건확보 의무를 충실히 이행한 경영책임자는 면책 사유나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의무를 무시하거나 중대재해가 반복된 사업장의 책임자에게는 책임을 명확히 물어 법의 실효성을 높여야 한다. 중대재해 예방과 노동자의 생명을 보호하기 위한 법의 제정 목적을 충실히 반영하고 사회적 대화를 통한 이해관계자들의 의견을 반영한다면 법의 효과성을 높일 수 있다.
●산업현장에선 AI IoT 빅데이터 등 디지털 신기술이 활용되고 있다.
공단은 AI를 활용해 ‘고위험 사업장 예측 AI 모델’을 개발해서 산재발생 위험이 높은 사업장을 집중관리 하고 있다. 또 ‘산업재해 위험경보 시스템’으로 3개월 이후의 지역·업종별 재해발생 추이를 선행적으로 예측해 재해예방 활동에 활용하고 있다. 온라인 ‘산업안전포털’을 올해 연말까지 구축할 계획이다. 산업안전포털은 분산된 모든 산재예방 정보와 플랫폼을 통합함으로써 국민 누구나 ‘한곳에서 한번에’ 산재예방서비스를 쉽게 이용할 수 있도록 하겠다. 최근에는 ‘AI·스마트 산업안전기술 우수사례 경진대회’를 통해 민간부문의 우수한 신기술과 아이디어를 발굴해 공단 사업과 연계하고 전시회 개최 등을 지원하고 있다.
●올여름은 폭염으로 무더위가 더 길어질 전망이다.
기후변화는 산재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대표적인 재해유형이 폭염으로 인한 온열질환이다. 최근 3년간(2021~2023년) 폭염에 의한 산재자가 77명이 발생했고 이 가운데 8명이 사망했다. 기상청은 올 여름 기온이 평년보다 더울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옥외 작업장이나 환기가 잘 안되는 산업현장에서는 반드시 온열질환 예방조치를 실시해야 한다. 폭염시에는 5대 안전수칙 준수가 중요하다. 5대 안전수칙은 △물 △그늘·바람 △휴식 △보냉장구 △응급조치로 체감온도 31℃ 이상일 경우 노동자에게 수시로 충분한 물을 제공하고 적절한 휴식을 제공해야 한다.
9월까지 ‘폭염 안전 특별대책반’을 운영해 사업장에서 자체적으로 점검을 할 수 있도록 자율점검표와 예방수칙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건설현장에는 폭염 예방키트 및 쿨키트를, 제조·운수창고·시설관리 업종에는 온·습도계를 제공하고 있다. 이와 함께 중소규모 폭염취약 사업장에는 3000만원 한도 내에서 이동식에어컨을 지원한다. 50인 미만 사업장에는 소요비용의 70%를, 50인에서 100인 미만 사업장은 50%를 지원한다.
●오랜 기간 노동조합 활동을 했다. 일하는 사람들을 대변해 노동현장에서 산업안전보건에 대한 문제의식이 무엇이었나. 노조의 근본적인 목적은 조합원들의 근로조건 향상에 있고 산업안전보건은 어떠한 근로조건보다도 우선돼야 한다. 사업주에게 안전을 위한 조치, 작업환경 개선과 투자를 요구했고 조합원들에게도 안전이 가장 중요함을 역설하며 중요한 문제들은 함께 해결하기도 했다. 그 때의 문제의식이라면 첫째, 성장과 목표달성에 밀려 안전은 늘 후순위였다. 둘째, 크고 작은 사고가 난 후에나 대책을 세우는 관행이었다. 셋째, 충돌과 끼임 등 후진적 재해가 많이 발생했다. 넷째, ‘지금까지 사고가 없었는데 괜찮겠지’라며 안전수칙을 무시하는 안전불감증 등이다.
지금은 그 때에 비해 많이 달라졌지만 아직 개선해야 할 점이 많고 갈 길은 멀다. 그래도 대형사고와 중대재해를 겪으며 안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높아지고 관련 법과 제도가 마련된 것은 다행이다. 이제는 이러한 사회적 공감대와 제도를 바탕으로 사업주나 노동자나 안전을 무시하는 관행을 과감히 탈피하고 안전을 최우선으로 하는 투자와 안전실천이 필요하다
●산업안전도 중요하지만 직업병 등 산업보건에 대한 관심이 중요해 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산재통계만 보더라도 전체 산재 사망자 중 질병으로 생명을 잃는 노동자는 1271명 이었다. 이는 사고사망자 827명보다 444명이나 많다. 질병사망자는 주로 진폐나 뇌심혈관질환, 유해화학물질에 의한 급성중독 등으로 발생한다. 급식실 조리사의 폐암 발생을 비롯한 직업성 암 문제 등이 사회적 이슈로 제기되고 있다. 질병사망은 유해인자에 수년 내지 수십년 간 노출 후 건강상 이상이 나타나야 문제화되는 특성으로 사고사망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심이 적었다. 향후 산재예방의 실질적 효과를 높일 수 있도록 사고사망자 감소와 함께 직업병 예방 등 산업보건 분야에 대해서도 균형감 있는 정책과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
●마지막으로 한마디 한다면.
‘역지사지’(易地思之)를 강조하고 싶다. 과거 노조활동할 때부터 지금까지 가장 중요한 가치 중 하나다. 노조간부로 조합원의 요구를 사업주와 협상해야 할 때 조합원의 입장을 우선해서 주장해야 하지만 상대방인 사업주의 입장을 고려해 접점을 찾고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풀어나갔다. 산재예방도 마찬가지다. 산재예방 정책이나 사업은 사업주 노동자 입장에서 필요한 것이어야 하고 현장에서 작동 가능해야 한다. 산재 당사자는 노동자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정책과 사업이 만들어지고 추진될 때 산업현장에 쉽게 적용되고 실질적인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는 산재예방서비스를 제공하는 공단이 가져야 하는 마음가짐이기도 하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