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터이야기
주4.5일 근로시간제, 고려해야 할 것들
새정부의 노동정책 중 주4.5일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근로시간보다 긴 우리나라의 근로시간을 OECD 평균 근로시간 정도로 줄여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제도다. 이에 정부는 주4.5일제 노동정책을 하반기부터 시범적으로 시행한다고 발표했다.
주4.5일제의 근무형태는 격주 토요일 휴무 또는 금요일 4시간 근무 즉, 현 주52시간제에서 48시간제로 변동 그리고 법정근로시간 주40시간에서 36시간으로 법령 변경 등 여러 가지 안이 예상되는 가운데 정부가 정책을 어떤 식으로 구체화 할지 아직 확정된 바 없다.
경기도 하반기 시범실시, 일부 ICT업계 시행
정부는 올 하반기부터 시범사업 확대 및 제도 구체화 작업에 착수할 예정이다. 중소기업 대상 컨설팅, 근태관리 시스템 지원, 근로시간 단축 장려금 등을 지원해 기업이 주4.5일제를 많이 도입하게 유도하려는 계획이다.
지난달 27일 정보통신기술(ICT)업계에 따르면 전자상거래플랫폼 카페24는 7월부터 주4일제를 시행한다고 하는 등 일부 기업에서는 벌써부터 긍정적으로 제도를 받아들이고 있다.
경기도는 하반기부터 주4.5일제를 시범적으로 시행한다고 밝혔다. ICT업계 등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하는 업종의 경우 주4.5일제로 업무능률을 향상돼 생산성을 높이고 일에 대한 만족도 증가로 우수한 인재를 유치하는 등 긍정적인 효과가 예상된다.
또한 여가시간의 상대적 증가로 내수시장의 활성화도 기대해 볼 수 있고 궁극적으로 육아에 대한 시간 확보로 저출산 극복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도 해 볼 수 있다.
그러나 경영계에서는 새정부 주4.5일제가 향후 경제를 가장 어렵게 할 노동정책으로 뽑았다. 노동집약적인 일부 업종의 현재 주52시간제로도 근로시간이 부족한데 주48시간제 도입은 기업의 부담만을 가중할 뿐이라는 것이다.
주4.5일제 도입의 가장 큰 어려움은 업종의 다양성이다. 특히 소상공인, 자영업자, 고객응대 중심 서비스 업종은 정부의 주4.5일제 공약이 실행되면 시름이 더 깊어질 것이다. 주48시간제가 제도화되면 연장근로 시간의 증가로 임금부담이 늘어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요식업 도소매업 미용업처럼 사람 손이 직접 닿아야 하는 업종은 근무시간이 곧 ‘영업시간’이고 ‘생계’다. 정부가 주4.5일제를 시행하더라도 일부 업종은 주 7일 영업을 해야 한다. 적어도 1명은 더 고용해야 하는데 사람 구하기도 힘들고 인건비 상승도 만만치 않은 부담이다.
또한 소상공인의 어려움은 단순히 ‘업무 공백’이나 ‘인건비 부담’만이 아니다. 주4.5일제가 전 산업에 적용되면 소비패턴도 바뀔 것으로 예상된다. 금요일 오후부터 본격적인 소비활동이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일부 업종에서는 오히려 이 시간에 더 많은 인력이 필요해지고 인건비 부담은 더욱 가중될 것이다.
그럼에도 제도는 ‘노동자 입장’에서만 설계되고 자영업자나 소규모 고용주에 대한 고려는 미비하다. 결국 가장 많은 고용을 책임지고 있어 제도의 혜택을 받아야하는 소상공인들은 사각지대에 놓이게 되는 셈이다.
소상공인은 전체 고용의 30% 이상을 책임지고 있다. 그런데 이들이 감당해야 할 제도 변화에 대한 안전망이 없다. 일률적인 주4.5일제 도입은 소상공인의 인건비 부담과 노동강도를 가중시키고 결국 고용을 줄이는 역효과를 낳을 수 있다. 일부 기업에 대한 시범사업을 통해 긍정적인 지표가 나왔다고 해도 그 성공을 모든 업종과 규모에 일괄 적용하는 것은 위험하다.
일과 삶의 균형 이끄는 정책 실효성 높여야
주4.5일제 시행으로 대기업, ICT 일부 기업의 삶과 일의 균형을 가져다 줄 수도 있지만 자영업자, 소상공인, 단시간 근로종사자 등에게는 전혀 도움이 되지 못해 정작 보호해야 할 노동 취약계층을 더 배재하는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주4.5일제가 모두에게 이로운 제도가 되기 위해서는 ‘어떤 업종에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대한 면밀한 설계가 필요하다. 소상공인에게도 참여 여력이 생기도록 대체인력 지원, 시간제 유연근무 컨설팅, 인건비 보전 등의 정책 병행이 선행돼야 한다.
정책은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상을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삶은 오늘의 가게 문을 여는 현실에서 시작된다. 주4.5일제가 진정한 삶의 균형을 위한 제도라면 그 균형추는 모든 사람의 삶을 고려한 무게여야 한다. 기업의 업종 특성과 노동자의 근무여건을 고려한 신중한 정책 설계가 필요한 시점이다.
이윤정
노무법인 런 인사컨설팅
노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