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약살롱

양질의 의료는 의사와 환자 모두의 책임

2025-07-07 13:00:03 게재

1998년 개봉한 ‘패치아담스’는 불행하게 목숨을 끊어야했던 로빈 윌리암스가 주연했고 실제 인물을 소재로 한 영화다. 권위적으로 보이지 않으려고 피에로 분장을 해서 소아암 병동에 있는 아이들을 웃기고 웃음을 선사한다. 하지만 근엄한 병원의 의사들은 위엄이 없이 병동을 나다니는 그가 싫었고 사사건건 부딪힌다. 이 영화는 환자들은 의사들과 소통을 원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한 현실을 꼬집는다.

물론 의사가 광대처럼 굴어야만 소통하는 거냐며 이 영화를 싫어하는 의사들도 있고, 모든 의사들이 불친절한 것처럼 매도되어 보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의 손길을 원하는 자신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달라는 환자들의 바람을 담았다.

필자가 이 영화를 본 것은 의사 초년생이었던 전공의 시절이었다. 영화관을 나와서는 카페에 앉아 이런저런 얘기들을 나눴는데, ‘저런 의사가 실제로 있겠느냐’ 하는 쪽과 ‘잘난 의사 한 명이 병원 분위기를 바꾸지는 못한다’라는 내용이 공통된 의견이었다. 부럽지만 한국 현실에서는 패치아담스 같은 길을 따라갈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헤어졌다. 이후 관록이 있는 중년의 의사로 진료실을 지키면서도 그때의 의문은 해결되지 않았다. 왜 우리는 친절한 의사, 환자들을 기분좋게 대하는 의사가 될 수 없을까?

설명 안하는 의사, 듣지 않는 환자

병원과 관련된 오래 전 통계를 보면 특이한 부분이 있다. “당신(의사)은 환자나 보호자에게 친절하고 상세히 질환이나 예후에 대해서 잘 설명하는 편입니까?”와 “당신(환자나 보호자)이 만나는 의사는 친절하고, 질환에 대해서 상세히 설명하는 편입니까?”라는 질문에 환자 쪽에서는 의사와 상반된 대답을 한다는 점이다. 의사들에게 물어본 결과로는 70~80퍼센트가 그렇다고 대답하는 반면, 환자나 보호자는 30퍼센트 정도만 긍정적으로 답했다. 어쩌면 한국의 의사들은 스스로 친절하다고 착각할 뿐이며, 환자나 보호자는 의사가 불친절하고 설명도 제대로 안 해준다고 여기는 것 같다.

외국에 거주하거나 간접 경험을 해본 사람들은 선진 외국의 의사들은 상냥할 뿐더러 충분한 시간을 할애하며 설명을 해줘서 우리나라 의사들이 본받아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그 말은 우리나라 의사들은 빨리빨리 진료를 할뿐, 친절은커녕 설명할 여유도 갖지 않으면서 수입에만 신경 쓰는 속물이라는 뜻일까? 1년 넘게 지속되는 의료대란을 봐도 그런 생각이 들 법하다.

불친절하게 보이고, 설명하는데 인색한 의료진들의 모습은 사실 개인 탓만은 아니라고 보는 게 맞다. 우리나라의 의료체계가 그렇게 만든 것이다. 환자에게 조금이라도 더 신경을 쓰려면 진료하는 데 여유가 필요한데, 동네병원에서는 매일 많은 환자를 보게끔 의료체계가 만들어져 있다.

종합병원 의사라고 다를까? 의사들은 중증 환자나 어려운 질환을 집중해서 치료해야 하는데 경증 환자들까지 진료하느라 시간을 많이 뺏긴다. 거기에 더 해서 많은 전문과들이 개원하는 우리나라의 병폐적 현상은 종합병원에 전문의 부족을 낳고, 지역사회에서는 무한 경쟁을 만들어낸다. 우리나라에서는 패치아담스같은 의사들을 만나기 힘든 이유이다. 그러면 욕심을 줄이고 시간을 들이면서 천천히 진료해도 되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 의료는 박리다매, 즉 적은 수가로 환자를 많이 유치해서 수입을 얻어야 하는 체계이다. 종합병원이나 동네병원이 모두 그렇다. 외국처럼 20~30명 외래 진료를 하다가는 병원 문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감기 환자든, 설명과 교육이 필요한 여러 만성질환 환자든 진료 시간이 3분을 넘을 수 없다. 70~100명 진료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환자와 보호자에게 개인이 가지고 있는 건강 문제에 대해서 교육을 할 시간은 물론이고 질환에 대해서도 상세히 설명할 시간이 부족하다.

건강 교육과 상담, 약보다 중요

의료체계와 의사들의 인식에만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필자의 경험을 얘기해본다면 그나마 시간을 들여 설명을 하려면 빨리 진료 끝내라고 재촉하는 분들도 있고, 진단하고 처방만 해주면 되지 무슨 설명이 필요하냐는 분들도 있다. 항생제가 필요없다는데 굳이 넣어달라고 떼쓰는 환자들도 있다. 혈압을 정확히 재는 법을 알려줘도 귀찮아하시는 분들, 당뇨가 있어서 당화혈색소 검사를 주기적으로 받는 것을 설명해도 약만 잘 처방해달라는 분들...

환자들도 인식의 변화가 필요하다. 내 건강을 위해 교육과 상담이 한 번의 약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리고 안정적인 의료체계, 그 속에서 1차의료의 정립과 의료진과 의료소비자들 모두의 생각들이 조금씩 바뀌는 시간이 와야 할 때다.

고병수 탑동365일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