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서학개미와 코스피5000

2025-07-08 13:00:04 게재

해외 주식과 자산에 투자하는 ‘서학개미’의 비중이 사상 최대 수준으로 치솟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말 기준 우리나라 거주자의 대미 금융투자 잔액은 9626억 달러로 전년 대비 1581억달러가 늘었다. 전체 대외 금융자산에서 미국 비중은 45.9%에 달해 2002년 통계 작성 이래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 같은 해외 투자 열풍은 단순한 유행이 아니다. 미국 시장은 엔비디아, 마이크로소프트, 애플 같은 기술 기반의 혁신기업이 상장돼 있고 변동성과 리스크를 감수하면서도 고수익을 기대할 수 있는 무대다. 달러 자산이라는 안전자산 성격까지 갖추면서 서학개미들의 자산 포트폴리오에 ‘기본값’이 된 지 오래다.

자산 축적의 패러다임 바꾸는 서학개미

특히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암호화폐와 스테이블코인에 대한 접근과 활용은 투자 행태에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한국은행이 국회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5대 가상자산 거래소(업비트, 빗썸, 코인, 코인원, 고팍스)에서 올해 1분기에만 56조원이 넘는 스테이블코인 거래가 발생했다. 기획재정부는 현재 우리나라 무역의 약 3.4%가 스테이블코인으로 결제되고 있다고 추산했다. 가상화폐는 어느덧 우리 곁에 와버렸고 우리 일부 기업들도 국경을 넘는 거래에 사용하고 있다. 단순한 수익 추구를 넘어 암호화폐는 서학개미 세대에겐 자산 축적 수단이자 대안 통화로 자리 잡고 있다.

미국 뉴욕증시에 상장된 스테이블코인 발행사 서클(Circle)은 최근 국내 개인 투자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이 순매수된 종목으로 기록됐다. 서학개미는 지난달 5일 이후 이달 3일까지 서클을 6억7256만8353달러(약 9178억원)어치 사들였다. 서클은 글로벌 스테이블코인 시가총액 2위인 달러 스테이블코인 ‘USDC’를 발행하는 기업이다.

놀라운 건 이 흐름에 중학생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한 금융교육 플랫폼의 모의투자 대회에서 중학생이 일주일 만에 13% 넘는 수익을 냈고, 미국 디지털 자산 거래소인 코인베이스 투자로는 27% 수익률을 거두기도 했다. 역대 최고 수익률은 18.27%에 달하는데 양자컴퓨터 관련 경제 뉴스를 읽고 아이온큐(티커 IONQ) 리게티 컴퓨팅(RGTI) 엔비디아(NVDA) 등에 투자해 이 같은 성과를 거뒀다.

물론 모의 투자와 실전 투자는 다를 수 있지만 양자 컴퓨팅, 코인 거래소 등을 투자 대상으로 삼은 것은 소위 ‘아재 세대’와는 다른 투자 감각이다. 이제 해외 주식과 코인은 ‘새로운 금융 문해력’으로 읽힌다. 서학개미는 단지 투자만이 아니라 자산 축적의 패러다임을 바꾸고 있다

이재명정부는 ‘부동산으로 돈 버는 시대는 끝났다’는 정책적 신호를 시장에 던졌다. 서울 아파트 중심의 자산 불평등 구조를 주식시장으로 분산시키기 위한 시도가 본격화되고 있다. 지난 7월 3일 국회를 통과한 상법 제382조3항 개정은 그 상징적 조치다. 기존의 ‘이사는 회사에 충실해야 한다’는 문구에 ‘이사는 회사와 주주를 위해 충실해야 한다’로 ‘주주’를 추가함으로써 기업 지배구조를 선진화하는 길을 열었다. ‘아재 세대’의 정치가 우리나라 주식시장의 지배구조 개선에 그나마 역할을 한 셈이다.

이는 단기적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해소하고, 코스피3000~4000 시대로 나아가는 발판이 될 수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정부가 목표로 내세운 ‘코스피5000’은 이 정도로는 부족하다. 역사를 보더라도 코스피1000 돌파는 1987년 노동자 대투쟁을 배경으로 한 내수 성장의 힘이었고, 코스피2000은 삼성전자와 현대차 등의 글로벌 기업 약진과 중국특수, OECD 가입이라는 ‘선진국 진입’ 상징성이 작용했다. 코스피5000은 단순한 지수 상승이 아닌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된다.

‘부동산 불패’ 넘어 ‘혁신 성장’으로

미국 나스닥 상위 종목을 보라. 현재의 ‘매그니피센트7’ 기업들 중 다수는 20년 전만 해도 존재감조차 없던 벤처기업 출신들이다. 정부 주도 육성이라기보다는 시장이 키운 혁신이 이들을 세계 최고 시가총액 기업으로 만들었다. 정부가 “AI 반도체 바이오 등 성장 산업을 육성하겠다”고 선언했지만 정책적 지원보다 중요한 것은 스타트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 조성이다. 혁신 기업들이 국내에서 상장하고, 글로벌 자금이 몰리게 하는 구조 없이는 ‘코스피5000’은 구호에 그칠 뿐이다. 서학개미는 우리에게 중요한 신호를 보내고 있다. 그들이 주목하는 것은 과거의 안정자산이 아니라 미래의 혁신이다. 이 흐름을 국내 주식시장으로 연결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 불패’를 넘어 이제는 ‘혁신 불패’가 대한민국 경제의 새로운 기둥이 될 시간이다.

안찬수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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