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 사퇴 파동…정치 양극화에 더 어려워진 국힘 쇄신
안 “인적쇄신 반대 부딪혀 사퇴” … 송언석 “새 혁신위원장 모시겠다”
보수층 ‘묻지마 지지’로 국힘 기득권 유지 가능 … 쇄신 절박감 사라져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이 혁신위원장직을 사퇴하면서 당이 혼란에 빠진 모습이다. 안 의원과 당 지도부·친윤이 서로에게 책임을 미루고 있지만 분명한 건 당 쇄신이 사실상 물 건너갔다는 사실이다. 계엄→탄핵→대선 패배를 겪은 위기의 국민의힘이 왜 단호한 쇄신을 결행하지 못하는 걸까.
◆안철수와 쌍권 정면충돌 = 안 의원은 당 지도부가 쇄신을 막았다고 주장하면서 7일 혁신위원장직을 사퇴했다. 자신이 요구한 쌍권(권영세·권성동)에 대한 인적 쇄신을 당 지도부가 거부했다는 것. 혁신위원 인선에서도 자신이 합의하지 않은 친윤 인사를 넣었다는 입장이다.
안 의원은 8일 SBS 라디오 ‘김태현의 정치쇼’에 나와 “인적 쇄신안부터, 최소한의 사람을 거명했음에도 불구하고 (지도부의) 반대에 부딪혔다”고 말했다. 안 의원은 “갑자기 (혁신위원) 인사안을 합의되지 않았는데 올린다고 했다. 인사안을 올리지 말라고 반대의사를 분명히 전달했음에도 불구하고 통과시켰다”고 주장했다.
안철수발 인적 쇄신 대상으로 거명된 권영세 의원은 7일 SNS를 통해 “우리 모두가 진정으로 당을, 보수를 혁신해서 재건하는 노력을 해도 부족할 이 힘든 상황에서 일부 인사들이 자신의 이익 추구를 마치 공익인 양, 개혁인 양 포장하며 당을 내분으로 몰아넣는 비열한 행태를 보이는 점은 정말 개탄스러운 일”이라고 반박했다.
권성동 의원은 8일 SNS를 통해 “정치인이 주요 당직에 도전하는 것은 잘못이 아니다. 하지만 어려운 상황 속 힘겹게 모은 혁신 에너지를 자신의 정치적 연료로 사용하는 것은 잘못”이라며 안 의원이 전대 출마를 위해 ‘철수 작전’을 벌였다는 주장을 내놨다.
결과적으로 안 의원이 혁신위원장을 사퇴하면서 국민의힘 쇄신 동력은 급속히 약화되는 분위기다.
송언석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8일 오전 “당의 변화와 쇄신을 바라고 계신 당원 동지들과 국민 여러분께 혼란을 드려 송구하다”며 “조속한 시일 내에 신임 혁신위원장을 모시고 당의 쇄신을 이끌 혁신위원회를 출범시키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혁신위원장을 새로 선임해 꺼져가는 혁신 불씨를 되살리겠다는 것이다.
당내 반응은 싸늘하다. 비윤 인사는 7일 “안 의원 사퇴로 인해 송언석 비대위가 추진한 혁신 동력은 사실상 사라진 것 아니냐. 8월 전대에서 뽑히는 새 대표가 혁신 주도권을 쥐는 게 맞다”고 말했다.
◆“못해도 40% 득표 믿음” = 계엄→탄핵→대선 패배라는 초유의 위기 상황을 맞은 국민의힘이 쇄신의 첫 발도 떼지 못한 이유는 뭘까.
야권에서는 2004년 ‘박근혜 천막당사’를 쇄신의 대표적 성공사례로 꼽는다.
당시 대선자금 수사로 인해 ‘차떼기 정당’이란 비난을 받고, ‘노무현 탄핵 역풍’에 직면한 한나라당은 4월 총선에서 “50석도 어렵다”는 비관론에 휩싸였다. 이때 등장한 박근혜 대표는 △당사 헌납하고 천막당사로 이사 △기소된 당원은 당원권 정지 △현역의원 40.5% 공천 탈락 등의 대대적 쇄신을 단행했다. 텃밭(영남권)조차 지키기 어렵다는 비관론이 퍼지면서 당내 기득권세력도 저항할 엄두를 내지 못했다.
정치권에서는 2025년 국민의힘 쇄신 시도가 불발된 배경을 정치 양극화에서 찾는다. 윤희웅 오피니언즈 대표는 “강성보수층의 경우 국민의힘이 잘하든 못하든 상관없이 민주당을 반대하는 정당이기 때문에 무조건 지지해주는 현상이 뚜렷해졌다. 탄핵 대선이었던 6.3 대선에서조차 국민의힘 후보가 40%를 넘게 득표한 게 정치 양극화를 보여주는 단면”이라고 말했다.
윤 대표는 “국민의힘 기득권층 입장에서는 내가 잘하든 못하든 선거철만 돌아오면 40%는 지지해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에 굳이 기득권을 내려놓을 필요도, 반성하고 쇄신할 필요도 없는 것”이라며 “2004년 천막당사와 같은 대대적 혁신이 어려워진 이유”라고 설명했다. 심화된 정치 양극화로 인해 국민의힘의 기득권 유지가 일정부분 가능해지면서 당내 쇄신의 절박감이 사라졌다는 해석이다.
엄경용 기자 rabbit@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