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 맨홀 사망’ 삼중하청이 부른 ‘인재’
저가 수주 재하청, 안전장비도 없이 휴일작업 … 이 대통령, 근본 대책 마련 지시
인천 계양구에서 발생한 ‘맨홀 사망사고’는 이른바 ‘위험의 외주화’에 따른 인재로 나타났다. 다단계 하청 구조에서 저가로 업무를 떠맡은 업체 관계자들이 예정에 없던 휴일작업을 벌이다 사고를 당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재명 대통령은 이번 사고에 대해 중대재해처벌법 등 관계 법령 위반 여부를 철저히 조사하라고 지시했다.
7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이날 오전 굴포하수종말처리장 말단에서 오·폐수관로 조사·관리업체 소속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A씨는 전날 이곳 맨홀 안에서 오·폐수 관로를 조사하다 실종됐다. 앞서 심정지 상태로 구조돼 병원으로 옮겨진 B씨는 호흡은 있지만, 여전히 의식이 없다.
발견 당시 A씨는 작업복과 가슴장화를 착용하고 있었지만 산소마스크는 없었다.
◆예정에 없던 휴일작업 중 참변 = 인천환경공단이 발주한 해당 사업장은 하청에 재하청으로 작업이 진행됐다. 한국케이지티콘설턴트는 지난 4월 경쟁입찰로 ‘가좌사업소 차집관로 지리정보시스템(GIS) 데이터베이스(DB) 구축 용역’을 따냈다.
이후 원청은 제이테크와 하청을, 제이테크는 재차 LS산업과 재하청 계약을 맺었다. B씨는 LS산업 대표이고 A씨는 일용직 근로자다.
노동계는 이번 사고가 앞서 발생한 위험의 외주화로 인한 사고와 유사점이 많다고 지적한다. 지난달 2일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 기계공작실에서도 재하청 노동자인 고 김충현씨가 쇠막대를 절삭 가공하다 공작기계에 끼여 숨졌다.
2018년 태안화력 하청 노동자 김용균씨 사망 사고로 산업안전보건법이 개정됐다. 하지만 도급 금지 범위에 한계점이 있어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한다고 노동계는 지적한다.
현행법에 따르면 건축공사의 경우 재하도급 행위는 불법이지만 사고가 발생한 이번 작업은 ‘용역’이라 ‘계약 위반’ 사안으로 판단할 수 있다. 인천환경공단은 원청격인 한국케이지티콘설턴트와 계약을 체결하며 ‘하도급을 금한다’란 과업지시서를 전달했다. 세부적으로 공단측은 ‘허가 없는 하도급으로 사업의 부실이 생기면 어떠한 제재도 감수해야 한다’고 명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맨홀 안에 들어가서 하는 위험한 공정에는 인천환경공단에 사전 보고를 해야 하는데 이 과정도 없었다. 외형적으로는 인천환경공단에 책임을 묻기 쉽지 않은 모양새다. 인천환경공단측도 재하청 사실을 몰랐다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당국,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조사 = 노동당국은 산업안전보건법 및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 조사에 착수했다.
다단계 하도급 과정에서의 중대재해처벌법·산업안전보건법 위반 여부를 포함해 사고의 근본적 원인에 대해 엄정하고 신속히 조사할 계획이다. 특히 발주처인 인천환경공단 또한 사고가 난 업체들과 사실상 도급 관계로 볼 수 있다는 판단하에 도급 구조를 다시 살펴보고 중대재해법이 적용될지를 판단할 예정이다.
발주가 아닌 도급일 경우 중대재해법의 적용 대상이 되고, 발주는 산업안전보건법 등에서 건설업에만 적용된다는 것이 고용부의 판단이다.
최명선 민주노총 노동안전보건실장은 “이번 맨홀 사고에 대한 철저한 조사와 엄정 처벌은 당연히 필요하다”며 “하지만 반복적인 사고를 해결하려면 하도급에 대한 원청의 처벌을 강화하고, 사망사고 원인으로 재하도급에서 비롯해서 발생했다면 원청에 대해서는 훨씬 더 강력히 처벌하는 정책이 나와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러지 않으면 이번 사고로 끝나지 않고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두용 교수(한성대 기계전자공학부)는 “이번 사고도 근본 원인은 최저가입찰이든지 하청에 하청을 줄 수밖에 없는 구조에 있다”면서 “안전을 무력화시키는 이러한 경제 구조를 모른 체하면 아무리 최고경영자를 처벌하고, 예방감독을 강화한다고 난리법석을 떨어도 사고를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후진국형 산업재해 반복 막아야 = 또한 노동부는 이달 5일 이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지시한 것과 관련해 근원적인 산재 원인을 발굴해 해소할 수 있도록 관계 부처 협의체 등을 조만간 구성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대통령은 앞서 “산업재해 및 중대재해 예방대책 등과 관련한 전 부처 역할을 취합해 장단기적 대책에 더해 입법대책까지 정리해 보고하라”고 지시한 바 있다.
안전보건공단은 사고가 발생한 6일 초동 조사에 나서 맨홀 내부 유해가스 측정 등 원인 조사를 했다. 또 7일에는 공단 본부 중앙사고조사단과 인천 광역사고조사센터 조사요원이 재해 발생 당시 작업 상황 등을 점검했다.
수사 당국은 재하청이 이뤄진 경위와 안전장비 착용 여부 등을 살펴보고 업무상과실치사 혐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경찰은 인천환경공단, 원청 및 하도급 업체를 상대로 조사를 벌여 책임자가 누구인지 특정할 계획이다.
한편 이 대통령은 이번 사고와 관련해 “현장 안전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지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고 지시했다고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이 7일 전했다. 이 대통령은 또 “후진국형 산업재해가 다시는 발생하지 않도록 현장 안전관리를 정비하고 사전 지도·감독을 강화하는 등 관련 부처도 특단의 조치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장세풍·한남진·박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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