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위, 코리안리에 과징금 78억원 정당”
협의요율·특약 ‘불공정 거래 행위’ 여부 쟁점
고법 “불공정 거래 아냐” … 대법, 파기 환송
손해보험사들과 배타적 거래를 유도한 재보험사의 계약 방식에 공정거래법 위반 소지가 있다고 대법원이 판단했다. 계약이 자율적으로 이뤄졌더라도 결과적으로 경쟁을 제한하는 효과가 있었다면 공정위 제재(과징금 부과)는 정당하다는 취지다.
8일 법조계에 따르면 대법원 2부(주심 오경미 대법관)는 지난달 5일 코리안리재보험이 공정거래위원회를 상대로 낸 시정명령 및 과징금 부과 취소청구 소송에서 원고 일부 승소로 판결한 원심 판결을 깨고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으로 돌려보냈다.
공정위는 2018년 12월 코리안리에게 ‘시장지배적지위 남용행위 및 불공정거래행위’ 위반 혐의로 시정명령과 78억6500만원의 과징금을 부과했다.
코리안리는 1999년부터 국내 손보사들과 ‘일반항공보험 재보험 특약’을 체결했다. 일반항공보험은 산불진화·구조활동, 레저 등 목적으로 쓰이는 헬기나 소형항공기에 대한 보험이다.
항공보험은 리스크가 높아 재보험 가입이 필수적이다. 손보사들이 ‘보험사의 보험사’인 재보험사와 다시 계약을 맺고 보상책임의 일부를 ‘출재(出再)’해 넘기는 것이다. 당시 항공재보험에서 코리안리의 시장점유율은 약 88%에 달했다.
또 항공보험은 재보험 뿐만 아니라 재재보험 가입까지 이뤄지는데, 코리안리는 자신이 수재한 재보험료의 약 70% 가량을 대부분 해외 재재보험으로 출재하고 있었다. 때문에 해외재보험사는 코리안리와의 재재보험 거래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게 공정위의 판단이었다.
1993년부터 국내 재보험 시장이 해외에 전면 개방됐는데도 코리안리는 독점적 지위를 유지하기 위해 보험사들과 특약을 맺었으며, 해외재보험사의 요율을 가져다 쓰려고 한 손보사들에겐 특약 위반으로 향후 입찰 참가 등 불이익을 주기도 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 특약은 손보사들에게 재보험 물량을 모두 코리안리에게만 출재하도록 강제하기도 했다. 2017년 관용헬기보험에서 A해외재보험사가 국내 손보사와 거래하려 하자 코리안리는 A사에게 철회를 요구하고 불응시 기존 거래를 중단하겠다고 통보한 것으로 조사됐다.
공정위는 항공보험 재보험시장의 독과점 사업자인 코리안리가 협의요율 등을 통해 시장지배적 지위를 남용했다고 보고 시정명령과 과징금 처분을 내렸고, 코리안리는 이에 불복해 취소 소송을 냈다.
쟁점은 코리안리가 해외 재보험사와 직접 거래를 하려는 국내 손해보험사들에 특약을 이유로 중단을 요구한 것이 공정거래법 위반에 해당하는지였다. 서울고법은 2020년 10월 특약 자체는 배타조건부 거래(거래 상대방이 자기 또는 경쟁사업자와 거래하지 않는 조건으로 거래하는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다고 보고 원고인 코리안리 일부 승소로 판결했다. 공정위가 부과한 과징금 또한 다시 산정돼야 한다고 봤다.
그러나 대법원은 특약의 경쟁 제한 조건에 대해 양측이 자발적으로 합의했더라도 시장지배적 사업자의 남용행위로 볼 수 있다며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와 시정명령이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단에는 시장지배적 지위 남용 행위 또는 불공정거래 행위로서 배타조건부 거래행위의 성립요건에 관한 법리를 오해해 판결 결과에 영향을 미친 잘못이 있다”며 파기환송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