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한국에 관세·방위비 ‘패키지 청구’

2025-07-09 13:00:12 게재

정상회담 앞두고 미군 분담금 9배 요구

무역 · 안보에 전략적인 신중 접근 필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상대로 무역과 안보를 결합한 전방위 압박에 나섰다. 8월 1일부터 한국에 상호관세 25%를 부과하겠다고 통보한 데 이어,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연간 100억달러로 대폭 인상하라고 요구했다.

이는 현재 한국이 지불 중인 분담금의 약 9배에 해당한다. 트럼프는 무역과 안보를 한꺼번에 다루는 이른바 ‘원스톱 쇼핑’ 협상을 통해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한국을 최대한 압박하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7일(현지시간) 한국과 일본 등 14개국에 25∼40%의 국가별 상호관세를 적시한 '관세 서한'을 보내 이를 8월 1일부터 부과하겠다고 통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무역 상대국들에 대한 상호관세 부과 유예 시한을 기존의 7월 9일에서 8월 1일까지로 연장하는 행정명령에도 서명했다. 사진은 8일 경기도 평택항에 컨테이너가 쌓여 있는 모습. 연합뉴스

트럼프는 8일(현지시간) 백악관 내각회의에서 “한국은 그 군대(주한미군)를 위해 너무 적게 지불하고 있다”며 “이제는 스스로 방위비를 부담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2019년 단 한 통의 전화로 30억달러를 받아냈다고 주장하며, 현재의 분담금 수준이 지나치게 낮다고 비판했다. 하지만 당시 미국이 한국에 제시한 액수는 100억달러가 아닌 50억달러였고, 이마저도 과도하다는 국내외 비판을 받았다.

트럼프는 사실관계가 틀린 주장도 했다. 그는 이날 주한미군 규모를 4만5000명이라고 언급했지만 실제 규모는 약 2만8000여명 수준이다. 분담금 요구뿐 아니라 기본 수치조차 부풀려 협상력을 키우려는 의도로 보인다. 특히 최근 위성락 국가안보실장이 마코 루비오 미 국무장관과 회동하며 정상회담 조기 개최에 공감한 직후 이같은 요구가 쏟아졌다는 점은 정치적 계산을 엿보게 한다. 트럼프는 하루 전날엔 관세를, 다음 날엔 방위비를 꺼내 들며 협상 카드 두 장을 동시에 올린 것이다.

트럼프는 무역 불균형을 해소한다는 명분으로 한국을 포함한 동맹국들에게 고율 관세와 안보 비용을 동시에 요구하고 있다.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회원국들에 국내총생산(GDP)의 5% 수준 국방비 지출을 요구했던 전례를 한국에도 적용하려는 모양새다. 현재 한국의 국방비는 GDP의 2.32% 수준이다. 트럼프식 기준이 적용된다면 국방예산을 두 배 이상 늘려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또한 그는 반도체, 의약품, 구리 등 주요 품목에 고율 관세 부과를 예고했다. 구리에는 50%, 의약품에는 최대 200%까지 관세를 부과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제와 안보를 하나의 틀에 묶는 트럼프의 전략은 한국 정부에 복합적인 부담을 안긴다. 특히 한미정상회담이 상호관세 발효일인 8월 1일 전에 열릴 경우 협상 시점 자체가 압박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크다. 관세 발효를 ‘데드라인’으로 인식하면 무리한 양보가 이뤄질 우려도 있다.

따라서 무역과 안보를 분리해 대응할지, 패키지로 접근할지를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단기적 해결에 치우치면 장기적 외교 자산이 훼손될 수 있다. 더욱이 트럼프행정부의 국방전략 재검토 보고서가 늦여름에 나올 예정인 만큼 섣부른 방위비 합의는 새로운 변수에 휘말릴 가능성도 있다.

만약 분담금 인상이 불가피하다면 한국정부는 그에 상응하는 반대급부를 요구해야 한다. 주한미군의 역할 변화 등 구체적 안보 협력과 연계된 논의가 필요하다는 의미다. 트럼프가 직접 협상 전면에 나선 만큼 단순한 비용 문제가 아니라 한미동맹의 구조 자체를 재설계할 분수령이 될 수 있다.

한국은 지난 1기부터 트럼프행정부 내내 ‘머니 머신’으로 불리며 반복적인 압박 대상이 돼왔다. 이런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수세적 방어가 아닌 능동적이고 전략적 접근이 필요하다. 트럼프의 ‘안보 미끼’ 전략에 휘둘리지 않게 원칙과 유연성을 동시에 고려한 정교한 대응이 절실하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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