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홀 사망 사고’ 전담수사팀 투입
고용부·경찰, 계약 관계 등 조사 … 범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 마련 착수
2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인천 맨홀 사고와 관련해 노동당국과 경찰이 전담팀을 꾸려 사고 경위 파악 등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특히 정부는 이재명 대통령 지시에 따라 수사와 별도로 범정부 노동안전 종합대책 마련에도 나섰다.
고용노동부는 중부지방고용노동청 광역중대수사과 소속 감독관 20명으로, 경찰은 인천경찰청 형사기동대소속 12명으로 전담팀을 구성, 8일 맨홀 사고에 대해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가능 검토 = 우선 고용부는 밀폐공간 작업에 요구되는 안전조치 이행 여부를 점검하는 한편 원·하청의 안전·보건 관리 실태 전반은 물론 원·하청 간 계약구조와 내용, 업무지시 과정 등 구조적 원인까지 점검해 개선 조처를 할 계획이다.
특히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발주처인 인천시 산하 인천환경공단과 관련 업체들의 계약 관계 확인에 집중하고 있다.
공단이 단순 발주처가 아니라 관련 업체들과 도급 관계에 있다면 중대재해처벌법 적용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공사가 시공을 주도하고 총괄 관리했는지 여부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고용부는 인천환경공단과 하도급업체에 대해 압수수색 등 강제 수사도 추진할 계획이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적용 검토 = 경찰도 12명으로 구성된 전담팀을 구성하고 수사를 벌이고 있다.
경찰은 우선 사고 현장의 안전관리 주체를 특정한 뒤 업무상과실치사상 혐의 적용 여부를 판단하기로 했다.
경찰에 따르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8일 A씨 시신을 부검하고 “가스 중독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는 1차 구두 소견을 경찰에 전달했다. 국과수는 “구체적으로 어떤 가스에 중독된 것인지는 확인되지 않아 추가 감정이 필요하다”며 “사망 원인과 연결될 만한 외상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이번 사고는 오·폐수 관로 조사업체의 일용직 근로자 A씨와 대표 B씨가 산소마스크와 가스측정기 등 안전 장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은 채 지난 6일 오전 인천시 계양구 병방동 맨홀 안에 들어갔다가 발생했다. A씨는 맨홀 속 오수관로 물살에 휩쓸려 실종됐다가 하루 만에 숨진 채로 발견됐고, 심정지 상태로 구조된 B씨는 아직 의식을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재하청 사실 몰랐다” = 이번 사고에 대해 인천환경공단도 중대재해처벌법 위반 여부를 비롯한 관계기관 조사에 적극 협조하겠다며 사고 경위 등에 대해 공식 입장을 내놨다.
공단에 따르면 이번 사고는 공단이 관리 중인 오·폐수 차집관로 중 지리정보시스템(GIS)이 구축되지 않은 일부 관로 데이터를 데이터베이스(DB)화하는 사업 추진 과정에서 발생했다.
공단과 한국케이지티콘설턴트가 지난 4월 2억7980만원에 용역계약을 맺고 오는 12월까지 ‘차집관로 GIS DB 구축 사업’을 진행 중이었다. 공단은 해당 업체와 계약 당시 과업 수행 지침에 ‘발주처 동의 없는 하도급 금지’를 명기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용역업체가 이를 어기고 자체적으로 하도급을 줬고 하도급업체가 또 다른 업체에 재하도급을 줬다는 것이다.
공단은 또 지하 시설물을 탐사하기 위해 공동구나 맨홀에 출입할 경우 시·군·구 지하시설물 관리부서와 사전 협의해 승인을 받아야 하지만, 이번 작업이 사전 승인 없이 진행된 것으로 파악했다. 아울러 밀폐공간 작업 시행계획서 등 근로자 안전 관련 계획서 제출·승인 의무도 준수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고 밝혔다.
공단은 하도급이 계약 제재와 파기는 물론 수년간 공공기관 계약 자체를 못하게 되는 중대한 사안이라 업체들이 서로 짜고 속인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저비용 하청 구조 문제 = 하지만 노동계는 공단도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입장이다. 발주자가 적격한 업체인지를 확인하고 계약을 했어야 하는데 계약을 위반할 가능성이 있는 업체에 용역을 맡긴 것이라면 안전관리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이란 지적이다.
노동계는 B씨가 재하도급 업무를 맡으면서 상대적으로 적은 비용만 지급받다 보니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 장비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채 작업을 한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로 일부에서는 사고를 당한 작업자들이 지난 5월에도 안전장비 없이 맨홀 밑 작업을 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또 맨홀 공간이 좁아 2명이 작업을 함께하기 어려운 구조라 A씨 혼자 작업을 한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노총 인천본부 중대재해대응사업단은 “위험의 외주화를 막기 위한 도급인의 안전·보건 조치 의무가 법적으로 명시돼 있지만, 관리·점검에 허점이 드러난 사례”라며 “용역업체 선정 과정부터 면밀히 들여다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구조적 원인’도 파악한다 = 이런 가운데 정부는 수사와 별도로 범정부 차원의 노동안전 종합대책 마련에 나섰다.
고용부는 9일 범정부 협의체 1차 회의를 열고, 노동안전 종합대책 수립에 착수했다.
이는 이재명 대통령의 지시에 따른 것이다. 앞서 이 대통령은 인천 맨홀 사고와 관련해 “일터의 죽음을 멈출 특단의 조치를 마련하라”며 “현장 안전관리에 미흡한 점이 있었는지 철저히 밝히고 법령 위반 여부가 있었는지를 철저히 조사해 책임자를 엄중히 조치하라”고 지시했다.
고용부는 중대재해를 일으키는 ‘기술적 원인’ 뿐 아니라 기업의 경영관리, 고용구조, 일하는 방식 등 ‘구조적 원인’도 파악해 해법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장세풍·한남진 기자 spj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