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문학도서관

윤동주 시, 시민의 도서관을 탄생시키다

2025-07-10 13:00:00 게재

지역 주민 기록 영상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 시 좋아하는 젊은 세대 참여 활발

정서가 메마른 시대, 시는 여전히 마음의 안식처가 된다.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은 윤동주를 기리며 시문학을 감상할 수 있는 공간으로 시민들의 호평을 받고 있다. 도서관은 윤동주 관련 자료를 수집·정리하고, 다양한 문화 행사를 통해 올해 서거 80주년을 기념하고 있다. 또한 시문학을 매개로 해외 각국과의 민간 교류도 활발히 이어가고 있다.

“현대인들은 정서적으로 메말라 있습니다. 시문학은 그런 사람들에게 아픔과 슬픔 같은 감정을 되돌아보게 합니다. 그런 점에서 시민들이 시문학을 자연스럽게 접할 수 있도록 돕는 시문학도서관은 매우 의미 있는 공간입니다.”

배경임 내를건너숲으로도서관 관장. 사진 이의종

9일 배경임 은평구립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 관장의 말이다. ‘내를건너서숲으로도서관’은 2018년 시인 윤동주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조성된 서울시 공공도서관이다. 이름은 윤동주의 시 ‘새로운 길’에 나오는 구절 ‘내를 건너서 숲으로’를 인용해 시민 공모를 통해 결정됐다. 도서관 입구에는 이 시가 새겨져 있어 방문객의 발길을 붙잡는다.

도서관 설립에는 지역 주민의 열망이 담겼다. 시민들은 서울시에 공원 부지를 도서관 용도로 제공해달라며 1만2000명의 서명을 모아 제출했고 이후 건립 과정 전반에 참여했다. 배 관장은 “도서관은 공공의 것이고 시민의 것”이라면서 “주민들이 직접 조성과 준비 과정에 참여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이용자들이 내를건너숲으로도서관을 편안하게 이용하는 모습. 사진 이의종

◆윤동주 자료를 수집, 정리하다 = 도서관 2층에 자리한 시문학자료실은 이곳의 상징적 공간이다. 윤동주 관련 자료를 비롯해 다양한 시집과 문학 자료가 비치돼 있다. 시민과 연구자들을 위한 윤동주 주제 석박사 논문 목록도 구축됐다. 인쇄본은 자료실에서, 디지털 버전은 도서관 누리집을 통해 열람할 수 있다.

시문학자료실엔 윤동주의 삶과 흔적을 따라갈 수 있는 지도, 희귀본, 행사 영상 등도 마련됐다. 지도에는 큐알코드가 삽입돼 있어 이용자들은 보다 풍부한 정보를 디지털로 확인할 수 있다.

또한 도서관은 전세계 대사관에 해마다 윤동주를 소개하는 편지를 보내고 각국의 시집 교류를 요청해 왔다. 이에 응답한 34개국에서 보내온 시집들이 시문학자료실에 전시돼 있다.

배 관장은 “시는 국가와 언어를 넘어 공감할 수 있는 매개”라면서 “이 공간은 시문학을 통해 세계와 교류하는 공공도서관의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도서관은 또 하나의 독창적 기록 활동을 진행 중이다. ‘21세기 시민들은 윤동주를 어떻게 기억하는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해 시민 인터뷰 영상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를 제작하고 있다. 세탁소 아저씨, 분식집 할머니 등 지역 주민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영상은 향후 중요한 기록 자산이 될 것으로 보인다. 총 221명이 참여했고 계속해서 이어질 예정이다.

◆윤동주, 세계 시문학과 교류하다 = 2025년은 윤동주 시인의 서거 80주기다. 이를 기념해 도서관은 시와 외교를 연결한 대규모 행사를 개최했다.

6월 28일 열린 2번째 기념행사 ‘햇빛과 바람, 그리고 윤동주’에는 온두라스 세르비아 칠레 아제르바이잔 라트비아 등 5개국 대사 및 대표자들이 참석했다. 이들은 자국의 대표 시를 자국어로 낭송했고 도서관은 해당 시를 한국어와 해당 언어로 함께 전시했다. 관람객들은 큐알코드를 통해 시를 다양한 언어로 감상할 수 있었다.

라트비아 리가 타르비데 문화공보관은 동시 ‘완두콩이 데굴데굴’을 직접 한국어로 낭송해 눈길을 끌었다. 칠레의 노벨문학상 수상 시인 가브리엘라 미스트랄의 시도 낭독됐다. 배 관장은 “단순한 외교를 넘어 시를 매개로 진심이 오가는 공감의 자리였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2월 15일 열린 첫 번째 행사 ‘윤동주의 별과 노래: 80년의 울림’에는 시민 2만8000명이 참여했다. 강연, 시 낭독, 음악회, 전시, 체험 등 다양한 프로그램이 진행됐다.

유성호 한양대 교수, 최현식 인하대 교수는 윤동주의 시 세계를 해석하는 강연과 대담을 펼쳤고, 테너 정제윤과 현악 4중주 콰트로이화는 윤동주의 시에 곡을 붙인 추모 공연을 선보였다. 도서관 전체 층에서는 윤동주의 삶을 다룬 전시가 열렸고 어린이들이 직접 색칠하고 쓰는 체험 활동 등이 운영됐다. 전시와 체험은 1달여 넘게 진행됐다.

배 관장은 “윤동주의 시는 자아성찰과 자기반성의 윤리를 담고 있다”면서 “현대 사회에서도 여전히 유효한 울림을 시민들에게 전해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자유롭고 사색적인, 모두의 문화공간 = 도서관은 연령과 관계없이 모두가 편안하게 이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어린이실은 공원 놀이터와 바로 연결돼 부모와 아이가 함께 안전하게 이용할 수 있다. 부모는 통창을 통해 아이를 지켜보며 휴식할 수 있고 윤동주에 대한 쉬운 설명이 마련돼 있어 자녀들에게 자연스럽게 윤동주를 소개할 수 있다.

시문학자료실은 창을 통해 숲을 바라보며 사색할 수 있는 구조로 조성됐고 감각적으로 꾸며진 개인 공간도 마련돼 있다. 계단식 공간에서는 시민들이 편안히 앉아 책을 읽고 자유롭게 작업하는 모습이 눈에 띈다.

또한 도서관은 시문학을 통해 젊은 세대와의 연결을 적극적으로 시도하고 있다. 20~30대 젊은 시인들이 참여하는 강연과 시 창작 활동 등은 젊은 이용자들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특히 ‘일기 쓰기’를 주제로 한 강의는 참여가 활발했다.

배 관장은 “젊은 시인의 언어와 생각을 공유하며 함께 글을 써나갈 수 있었던 경험이 이용자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면서 “도서관은 시를 통해 세대와 문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말했다.

송현경 기자 funnyso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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