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고래’ 빠지고 ETF가 채운다

2025-07-10 13:00:03 게재

사상 첫 11만2천달러 돌파

제도권 유입, 변동성 줄어

비트코인 가격이 9일(현지시간) 사상 최초로 11만2000달러를 돌파한 가운데, 2조1000억달러 규모의 비트코인 시장에서 조용한 세력 교체가 진행되고 있다고 블룸버그통신이 분석했다. 과거 시장을 지배했던 장기 대량 보유자들, 이른바 ‘고래(whales)’들이 보유 물량을 내놓는 가운데, ETF와 기업 재무부서, 자산운용사 등 제도권 자금이 이를 흡수하고 있다는 것이다.

시장조사업체 10x리서치에 따르면, 채굴업체, 역외펀드, 익명 지갑 등으로 추정되는 고래들이 최근 1년간 쏟아낸 비트코인은 약 50만개로, 시가로 500억달러에 달한다. 이는 ETF 승인 이후 유입된 순자금 규모와 비슷한 수준이다. 일부는 단순 매도에 그치지 않고, 보유 중인 비트코인을 주식시장과 연계된 거래에 현물출자 방식으로 넘기는 사례도 있다.

이날 코인포스트에 따르면, 온체인 분석업체 아캄은 한 비트코인 고래가 보유 중이던 6000BTC를 ‘1J3B2’ 시작 주소에서 ‘bc1qu’ 새 주소로 옮긴 사실을 포착했다. 이 투자자는 2019년부터 비트코인을 보유해온 장기 투자자로, 약 23억달러의 평가이익을 기록한 억만장자급 인물로 추정된다.

프랑스 남서부 탈랑스의 한 수제맥주 전문 바에 비트코인 스티커가 붙어 있는 모습. AFP=연합뉴스
반면 ETF, 마이클 세일러의 스트래티지를 포함해 수십 개 기업들이 참여한 기관 투자자들이 현재 유통 중인 비트코인의 약 4분의 1을 보유하고 있다. 2020년만 해도 가상자산 블록체인상에서 추적 가능한 익명 지갑 중 상위 2%가 전체 비트코인의 95%를 통제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지만, 지금은 권력 구조가 급속히 변화하고 있다.

가상자산 전문 거래기업인 컴벌랜드의 로브 스트레벨 고객관리부문 대표는 “가상자산은 제도권 자산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며 “이와 함께 시장 변동성은 점차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이러한 구조 변화는 비트코인의 성격을 단기 투기 대상에서 장기 배분형 자산으로 바꾸고 있다고 블룸버그는 분석한다. 실제로 가격 변동성은 최근 2년 내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고, 시장 일각에선 비트코인이 연 10~20% 수익률을 노리는 ‘지루한 배당주’처럼 변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하지만 일각에선 제도권 자금이 시장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동시에, 고래들의 매도 출구 역할을 하면서 결국 개인투자자가 손실을 떠안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아메리칸 대학교 로스쿨의 힐러리 앨런 교수는 “비트코인을 제도권 투자자에게 매력적인 자산으로 포장해 고래들이 빠져나갈 수 있도록 하는 게 오랜 목표였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친가상자산 정책에도 불구하고, 비트코인 가격은 올 들어 정체된 상태다. 전문가들은 “시장 구조는 바뀌었지만, 고래들이 다시 대규모 매도에 나설 경우 급락 가능성은 여전하다”고 경고한다. 10x리서치에 따르면 과거 2018년과 2022년에는 각각 2%, 9% 수준의 자금 유출만으로도 비트코인 가격이 70% 이상 하락한 바 있다.

10x리서치 마르쿠스 틸렌 CEO는 “지금은 시장이 연 10~20%씩 우직하게 움직이는 단계에 들어섰다”며 “제도권 중심의 이런 재편이 수년간 지속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고래 중심의 고변동성 시장에서 제도권 중심의 느린 흐름으로 옮겨가는 구조 전환이 현실화되고 있는 셈이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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