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상병특검, ‘격노설’ 첫 강제 수사

2025-07-10 13:00:23 게재

이종섭 자택·국방부·국가안보실 등 압수수색

11일 김태효 전 안보실 1차장 등 줄소환 전망

‘항명혐의’ 박정훈 대령 항소취하 … 무죄 확정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방해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특검팀이 수사외압 의혹의 단초가 된 ‘VIP 격노설’ 수사를 위해 10일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자택과 국방부, 국가안보실 등에 대한 전방위 압수수색에 나섰다. 특검 출범 이후 이뤄진 첫 강제수사다.

해병특검, 국방부 대변인실 등 압수수색 해병대 채상병 사건 수사방해 의혹을 수사하는 이명현 순직해병특검팀이 수사외압 의혹의 단초가 된 ‘VIP 격노설’ 수사를 위해 10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 도착, 출입 절차를 밟고 있다. 연합뉴스 이정현 기자

법조계에 따르면 특검팀은 이날 오전부터 이 전 장관의 자택을 비롯해 국방부 대변인실을 비롯한 국방부 주요 부서, 국가안보실 등을 대상으로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특검팀은 이번 압수수색을 통해 ‘VIP 격노설’이 제기된 2023년 7월 31일 전후로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조사 결과에 대한 대통령실 지시 내용과 경로, 이후 군 수뇌부의 움직임 등 관련 내용을 망라해 자료를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대통령실 회의를 주관한 국가안보실에서는 참석자와 회의록 확보를 시도하고, 국방부 내 채상병 사건 관련 언론 대응 방안에 대한 자료를 압수할 방침이다.

압수수색 대상엔 이 전 장관을 비롯해 임기훈 전 국방비서관, 전하규 국방부 대변인 등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안보실의 경우 영장을 제시하고 사실상 임의제출 형식으로 회의록 일부 등 관련 자료를 넘겨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VIP 격노설’은 윤석열 전 대통령이 2023년 7월 31일 오전 11시 대통령실 회의에서 고 채수근 상병 순직사건과 관련한 해병대 수사단의 초동조사 결과를 보고받은 뒤 “이런 일로 사단장을 처벌하면 누가 사단장을 할 수 있겠냐”며 ‘격노’했고, 이후 국방부와 대통령실이 사건의 경찰이첩을 보류시키고 해병대 수사단 조사 결과를 바꾸게 했다는 의혹이다.

이종섭 당시 국방부 장관은 당일 오전 11시 54분께 대통령실 명의인 ‘02-800-7070’ 번호로 걸려 온 전화를 받고, 전화를 끊자마자 바로 김계환 당시 해병대사령관에게 경찰 이첩 보류 및 국회·언론 브리핑 취소를 지시했다.

임기훈 전 대통령실 국방비서관은 당시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에게 당시 회의에 있던 VIP 격노설을 전달한 인물로 지목돼 왔다.

앞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는 지난 5월 대통령비서실과 국가안보실을 압수수색해 대통령실 회의 자료와 출입 기록, ‘02-800-7070’ 번호 서버 기록 등 자료 확보를 시도한 바 있다.

특검팀은 지난 4일 “내주부터 VIP 격노설 조사를 본격화한다”고 선언하고 8일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을 불러 12시간 조사했다. 김 전 사령관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에게 윤 전 대통령이 격노했다고 처음 전달한 인물로 지목됐다.

오는 11일에는 문제의 대통령실 회의에 참석한 것으로 알려진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을 소환 조사할 예정이다.

특검팀은 향후 조태용 전 국가안보실장, 임기훈 전 비서관 등 회의의 다른 참석자와 이종섭 전 장관 등 핵심 관련자들을 조사하며 수사망을 좁힌 뒤 윤 전 대통령을 조사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특검팀은 9일 항명죄로 기소돼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박정훈 전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의 항소심 재판에서 항소 취하서를 법원에 제출했다. 지난 2일 이 사건을 군 검찰에서 넘겨받은 특검이 항소를 취하해 박 대령의 무죄는 이날 확정됐다.

이에 대해 이종섭 전 국방부 장관 측은 “특검이 항소를 취하한 건 공정한 수사 포기를 선언한 것”이라고 반발했다.

이명현 특검은 이날 서울 서초동 특검 사무실에서 기자들과 만나 “특검은 원심판결과 객관적 증거, 군 검찰 항소 이유가 법리적으로 타당한지 종합적으로 검토한 끝에 박정훈 대령에 대한 항소를 취하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이 특검은 “1심 법원은 이미 이 사건을 1년 이상 심리해 박정훈 대령에 무죄 선고했고 이런 상황에서 박정훈 대령에 대해 항명죄 등 공소 유지하는 것은 오히려 특별검사로서 책임 있는 태도가 아니다”며 “국방부 검찰단이 박정훈 대령을 집단 항명 수괴라는 혐의로 입건해 항명죄로 공소 제기한 것은 공소권 남용에 해당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전 장관측은 항소 취하 결정에 대해 입장문을 내 “항소 취하 의사를 표명한 이명현 특검의 행동은 사실상 ‘공정한 수사 포기’를 선언한 것”이라며 “결론을 내려놓고 수사하겠다, 편파수사를 하겠다는 의사를 공개적으로 표명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 전 장관측은 “이첩 중단 및 박 대령에 대한 항명 수사 지시는 모두 국방장관의 권한에 따른 정당하고 적법한 지시였다”며 “집권 여당이 특검으로 정권에 불리한 재판을 취소하는 선례를 만들었다”고 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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