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헌·헌법불합치에도 법률 개정 ‘미적’
올 상반기 출입국관리법·의료급여법 등 6건 개정
집시법·형법상 낙태죄 등 ‘입법 공백’ 31건 미개정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또는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법률 가운데 6건이 올해 상반기 국회에서 개정됐으나, 형법상 낙태죄를 비롯한 31건의 법률은 개정이 지연되면서 입법 공백 상태에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0일 헌법재판소에 따르면 국회는 올해 상반기 헌재가 위헌이나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법률 가운데 출입국관리법, 의료급여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금융실명법, 군인사법, 외부감사법 등 6개 법률(11개 조항)을 개정했다.
이 중 2023년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출입국관리법 제63조 제1항은 지난 3월 개정돼 6월 1일부터 시행되고 있다. 이 조항은 헌재의 결정 취지를 반영해 강제퇴거명령을 받은 외국인에 대한 보호기간의 상한을 정하고, 외국인의 보호에 대한 심사·보호기간 연장 등의 업무를 독립적으로 수행할 외국인보호위원회를 설치하도록 개정됐다.
지난해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은 의료급여법 제11조의5 제1항은 지난 4월 개정돼 이달부터 시행 중이다. 요양병원 등이 사무장 병원으로 적발돼 의료급여비용 지급이 보류됐다가 추후 법원에서 무죄 판결이 선고된 경우, 요양병원 등이 청구하는 급여비용을 지급할 수 있도록 하고 지급 보류 처분을 취소하도록 개정됐다.
이 외에 특정범죄 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법률, 군인사법, 주식회사 등의 외부감사에 관한 법률도 헌법재판소 결정 취지에 맞춰 개정을 완료했다.
헌재는 1988년 출범 이래 올 상반기까지 총 615개 법령에 대한 위헌·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으며, 이 가운데 올 상반기까지 584개(95.0%) 법령이 개정을 마쳤다.
미개정된 법률 31건 중 위헌 결정을 받은 것은 16건(21개 조항)이며 15건(27개 조항)은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았다.
위헌 결정이 내려진 법 조항은 바로 무효가 되지만, 헌법불합치 결정을 받으면 법이 개정될 때까지는 효력이 유지된다. 헌재는 이런 경우 국회에 일정 시한을 정해 개정을 권고하지만, 국회의 법 개정에 대해 강제성이 없다 보니 헌재로부터 헌법 위배 판단을 받고도 개정되지 않은 사례가 31건(48개 조항)이다. 국회의 임무 방기 속에 곳곳에서 입법 사각지대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 사례가 낙태를 한 여성과 의사를 처벌하는 형법(269조 1항과 270조1항)이다. 헌재는 이 조항들에 대해 2019년 헌법 불합치 결정을 내리면서 이듬해 연말까지 법 개정을 권고했지만, 국회는 아직도 개정안을 내지 않고 있다. 그러는 사이 한 여성이 임신 36주 차에 낙태 수술을 받은 사실을 공개해 사회적인 파문이 일기도 했다. 해당 여성에 대한 낙태죄 처벌 규정이 없다 보니 경찰도 일단 여성을 영아 살인 혐의로 입건할 수밖에 없었다.
이 외에도 야간 옥외집회를 금지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과 재외선거인 선거권 및 국민투표권을 제한하는 ‘국민투표법’ 등 30건의 법률이 아직 개정되지 않고 입법 공백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이와 관련 헌재는 국회 및 소관 부처 등에 위헌·헌법불합치 결정 법령의 개정 현황을 조사·통지해 개정대상 법령의 조속한 정비를 촉구하고 있다. 기존에는 반기별로 실시했던 조사를 올해부터는 분기별로 주기를 단축해 실효성을 제고하고 있다. 아울러 헌재는 위헌·헌법불합치 결정된 법령 중 미개정 법령목록을 홈페이지에 상시 공개하고 있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