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 디지털 화폐 시범 운영 착수
블록체인 생태계 기반 다지기
암호자산 규제 본격화
파키스탄이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CBDC)의 시범 운영에 돌입하며 디지털 금융시대 진입을 공식화했다. 자밀 아흐마드 파키스탄 중앙은행 총재는 9일(현지시간) 싱가포르에서 열린 ‘로이터 넥스트 아시아’ 정상회의에서 “CBDC 기술 역량을 강화하고 있으며, 일부 기술 파트너들과 협업을 통해 곧 시범 운영을 시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발표는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 자산에 대한 국제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파키스탄 정부가 디지털 경제 전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파키스탄은 이미 2025년 상반기에 암호자산 규제를 위한 제도 정비를 본격화했으며, 최근 ‘파키스탄 암호자산 규제청(PVARA)’을 설립했다. 이 기관은 암호화폐 서비스 업체에 대한 라이선스 발급과 감독, 자금세탁방지(AML)와 사이버 보안 대응을 맡고 있으며, 국제자금세탁방지기구(FATF) 가이드라인에 부합하는 규제를 마련 중이다.
이는 전 세계적으로 중앙은행 디지털 화폐 도입이 확산되는 흐름과 궤를 같이 한다. 중국, 인도, 나이지리아, 사우디아라비아 등 여러 국가들이 이미 디지털 화폐 발행 또는 시범 운영에 나섰고, 파키스탄 역시 이에 발맞춰 제도와 기술을 동시에 정비하고 있다.
특히 파키스탄은 지난 3월 ‘파키스탄 암호화폐 위원회(PCC)’를 발족하며 블록체인 기반 생태계 조성을 위한 실행 전략도 병행하고 있다. 위원장에는 무하마드 아우랑제브 재무장관이 임명됐고, 자문단에는 바이낸스 창립자이자 전 CEO인 창펑 자오가 합류했다. 위원회는 잉여 전력을 활용한 비트코인 채굴 프로젝트, 국영 비트코인 보유 전략, 전략적 외국 기업과의 협력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히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일가가 운영하는 웹3 프로젝트 ‘월드 리버티 파이낸셜’과의 협업은 글로벌 투자자들의 주목을 끌고 있다.
또 파키스탄 국립은행은 지난 5월 가상 자산이 불법은 아니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하며 기존의 보수적 입장을 일부 완화했다. 동시에 금융기관들에게는 허가 없는 가상 자산 거래 관여를 자제하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아흐마드 총재는 “디지털 자산은 아직 초기 단계이며, 시장의 투기성과 기술적 위험성을 감안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번 조치는 파키스탄이 디지털 전환을 통해 경제 체질을 개선하고, 글로벌 금융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종합적 전략의 일환이다. 파키스탄 정부는 앞으로도 규제 강화와 기술 진보를 병행하며, 남아시아의 디지털 금융 허브로 자리매김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고 있다.
한편 파키스탄은 통화정책 면에서도 인플레이션 억제와 금융 안정성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22%에서 11%까지 대폭 인하하며 긴축 기조를 유지했고, 인플레이션율은 2023년 5월 38%에서 2025년 6월 3.2%로 급격히 하락했다. 2025 회계연도 평균 인플레이션은 4.5%로, 지난 9년간 가장 낮은 수치를 기록했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