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세’ 콜비, 미국 동맹을 뒤흔든다

2025-07-11 13:00:04 게재

우크라 호주 일본 등에 직접 관여 … 국방전략 수립 등 한미동맹에도 영향

미국 국방정책 차관 엘브리지 콜비(왼쪽)와 기타 군 지도부가 5월 5일(현지시간) 워싱턴 DC의 펜타곤에서 페루 외교부 장관 엘머 시알레르, 국방부 장관 월터 아스투딜로와의 회의 시작을 기다리고 있다. AFP=연합뉴스
엘브리지 콜비 미국 국방부 정책차관이 미국 외교·안보 정책의 ‘숨은 실세’로 떠올랐다. 대통령이나 국무장관이 아닌 차관급 인사가 나토(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오커스(AUKUS·미국·영국·호주 안보협의체), 일본, 한국 등 주요 동맹국들을 좌우하는 드문 사례다.

최근 우크라이나 무기 선적 중단, 오커스 재검토, 일본 국방비 증액 요구 같은 결정들을 주도하며, 그는 미국 안보 전략의 방향을 사실상 설계하고 있다.

미 정치전문 매체 폴리티코에 따르면 콜비는 우크라이나에 제공될 예정이던 방공미사일과 정밀탄약 선적 중단을 단독으로 결정했다. 이는 유럽 동맹국들 사이에 미국의 신뢰를 흔드는 신호로 받아들여졌고 나토 내부 불안을 증폭시켰다. 더 나아가 오커스 협정의 재검토도 콜비 주도로 이뤄졌다. 국무부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고위 인사들조차 관련 사실을 사전에 몰랐을 만큼 그의 결정은 돌발적이었다. 트럼프 대통령조차 “누가 그 결정을 승인했는지 모른다”고 말할 정도였다.

콜비는 트럼프 1기 행정부에서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을 구상한 핵심 인물이다. 그는 중국의 부상을 가장 중대한 위협으로 간주하며 미국의 자원을 유럽에서 아시아로 전환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 있다. 더군다나 올여름 공개 예정인 새로운 국방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NDS)의 수립을 주도하고 있다. 이 전략은 한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 동맹국들에게 중대한 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일본은 이미 콜비의 압박을 체감하고 있다. 그는 일본 정부에 국내총생산(GDP)의 최소 3%를 국방비로 배정할 것을 요구했고, 이후 이 수치를 5%까지 상향했다. 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는 강한 분노를 표출했다. 일본 정치권도 “기존 협상 기조가 일방적으로 파기됐다”고 반발했다. 이러한 요구는 일본 내 선거를 앞두고 민감한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콜비의 강경한 시각은 한국에도 깊은 함의를 가진다. 그는 주한미군의 전략적 유연성 확대를 주장하며, 유사시 한반도 밖에서의 작전 수행 가능성을 강조하고 있다. 동시에 미국의 핵우산은 유지하되, 북한의 재래식 군사 위협에 대해서는 “한국이 자율적으로 방어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김정은이 핵을 포기할 가능성은 없다”며 “비핵화보다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사거리 제한 같은 군축협상이 현실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나아가 “한국의 핵무장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러한 노선은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외교안보 공백 속에서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현재 NSC는 축소됐고, 국무장관과 국방장관조차 주요 결정에서 소외된 경우가 많다. 실제로 AUKUS 재검토를 두고 국무부는 “재검토 요청을 받은 적이 없다”고 답변했다. 외교관들조차 “이 자가 누구냐”는 반응을 보였다. 미 시사잡지 애틀랜틱은 콜비가 정책 권고를 넘어 사실상의 지시를 내리는 위치에 올랐다고 평가했다.

펜타곤 내부에서도 그의 독단적 방식은 논란이다. 일부 고위 관료들은 “그가 모든 사람을 화나게 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미국이 세계에서 더 적게 개입하도록 정책을 유도한다고 우려한다. 반면 펜타곤 대변인은 “그의 조언은 매우 귀중하며, 장관에게 정확한 정책 권고를 제공하는 것이 그의 임무”라고 강조했다. 부통령 JD 밴스 측도 “콜비는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 우선’ 전략에 전적으로 헌신한 전문가”라고 평가했다.

콜비는 단순한 관료가 아니다. 그는 외교 정책 공백을 전략적으로 채우며, 새로운 미국의 대외 전략 질서를 형성하고 있다.

그의 중심에는 ‘중국 억제’와 ‘동맹의 재정립’이라는 목표가 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은 더 많은 방위 책임을 요구받고 있으며, 자율성과 미국에 대한 안보 의존 사이에서 새로운 선택을 강요받고 있다.

특히 조만간 발표될 미국의 새 국방전략은 이런 구조적 전환의 분기점이 될 가능성이 크다. ‘엘브리지 콜비’라는 이름이 한미동맹의 미래에 미칠 파장을 면밀히 분석하고 어떻게 대응할지를 본격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정재철 기자 jcjung@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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