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반도체, 기술자립화의 현주소

2025-07-14 13:00:07 게재

독자적 산업 생태계로 탈바꿈 중 … 글로벌 선두와 기술 격차는 여전

2025년 하반기 반도체 산업은 다시 한 번 역사의 갈림길에 서 있다. 미중 기술전쟁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고, 미국은 반도체 장비·소재·설계 영역에서 중국의 기술 성장을 억제하려는 다층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나 그 반대편에서 중국은 오히려 이 위기를 기회로 전환시키며 반도체 밸류체인 전 영역에서 기술자립화를 빠르게 추구하고 있다. 이 같은 변화는 단순한 ‘국산화’에 그치지 않는다.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술굴기는 거대한 산업적 전환의 파도로 다가오고 있다. 1940년대 미국에서 시작된 반도체 산업은 수십년간 일본 한국 대만을 거치며 글로벌 분업 구조를 바탕으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해왔다. 그러나 이제 세계 반도체 지형도는 근본적인 구조 전환기를 맞고 있다. 바로 중국이 중심에 서 있는 변화다.

2000년대 초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이후 중국은 조립·패키징·테스트 분야의 강점을 발판으로 자본을 축적했고, 2020년대 들어 미중 기술 패권 갈등이 격화되자 ‘쌍순환 전략’을 통해 반도체 자립화를 본격화하고 있다. 지정학적 긴장이 심화되는 가운데 중국의 반도체 산업은 단순한 제조 하청을 넘어 독자적 산업 생태계로 탈바꿈하는 변곡점에 있다.

중국은 현재 반도체의 전 공정, 즉 칩 설계·웨이퍼 제조·패키징 및 테스트 등 전방위적인 산업사슬을 구축 중이다. 2025년 기준 중국 반도체 시장은 1.5조위안(약 290조원) 규모에 달할 전망이며, 특히 패키징·테스트 부문은 연평균 24% 이상 성장할 것으로 예측된다. 미국의 기술 제재는 중국 산업에 ‘병목’ 현상을 초래했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중국의 국산화와 기술자립화를 가속화시키는 동인이 되고 있다. 중국 정부의 보조금 확대, 반도체 인재 육성, 연구개발 강화 등 정책적 백업은 투자자에게 중요한 안정성을 제공하는 기반이 되고 있으며, 일부 기업은 실제로 7나노(nm)공정까지 내재화에 성공하며 기술격차를 빠르게 좁히고 있다.

‘국산화 25~30%’의 의미

중국 정부는 ‘중국제조 2025’, ‘중국표준 2035’ 등의 국가 전략을 통해 반도체 산업을 핵심 전략 산업으로 격상시켰다. 그 결과 2024년 기준 중국 반도체 시장은 1798억달러(약 250조원) 규모로 성장해 세계 최대 시장으로 부상했으며, 전체 국산화율은 25~30%에 도달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설계(팹리스) 분야에서 화웨이, 칭화유니그룹(UNISOC) 등은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통신 칩 등에서 글로벌 상위권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 제조(파운드리)에서는 중신궈지(SMIC)와 화홍반도체(Hua Hong Semiconductor)가 14nm 양산과 7nm 시범 생산을 통해 첨단공정 확대를 시도 중이다. 메모리에서는 양쯔메모리(YMTC)와 창신메모리(CXMT)가 각각 낸드플래시와 D램에서 생산능력 확대에 속도를 내고 있으며, 고대역폭메모리(HBM) 등 고성능 제품에도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 장비·소재에서는 베이팡화창(NAURA), 중웨이반도체장비(AMEC) 등의 장비기업이 급부상하며 심자외선노광장비(DUV.190~365nm 범위의 파장을 가진 빛을 사용해 반도체 웨이퍼에 미세한 회로패턴을 그릴 수 있다) 영역에서 실질적인 국산화 성과를 내고 있다.

정책과 시장이 동시에 밀어주는 산업

중국정부는 ‘차이나 칩(China Chip)’ 전략을 통해 3000억위안 규모의 펀드를 추가로 조성하고 있다. 세제 지원, 연구개발 보조금, 기술유치 인센티브 등 다층적인 지원이 이뤄지며 반도체 공급망 전반에서 ‘국산화 대체’가 가속화되고 있다.

예컨대 2024년 기준 SMIC는 일부 파운드리 수요를 타이완반도체매뉴팩처링(TSMC)에서 자국으로 흡수했고, 화홍반도체는 인피니언과 경쟁하면서 전력 반도체 부문에서 중국 내 점유율을 확대했다. 이는 단순히 생산량의 문제가 아니라 ‘국내 수요를 누가 선점하느냐’는 전략적 주도권 싸움의 성격을 띤다. 또한 AI와 자율주행차 시장의 확대는 캠브리콘(Cambricon), 호라이즌 로보틱스(Horizon Robotics) 등 AI 반도체 기업들의 성장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 기존 엔비디아(NVIDIA)와 어드밴스드마이크로디바이시스(AMD)에 집중되었던 시장이 구조적으로 재편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기술력은 여전히 글로벌 1위 기업들과는 상당한 격차가 존재한다.

격차 극복의 긍정적 신호들

기술적으로 선도기업과 격차가 있는 현실은 중국 반도체 산업의 ‘제한된 상한선’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정적인 비교일 뿐 실제 현장에서는 격차를 극복하려는 동태적 진화가 급속히 이뤄지고 있다.

2025년 현재 중국 반도체 산업은 단지 ‘따라가기’가 아닌 ‘전환’의 국면에 진입했다. 대표적인 신호는 다음과 같다. 첫째, 창신메모리, 양쯔메모리 등은 낸드·D램 기준으로 글로벌 Top 4에 진입했다. 둘째, 미국·일본·네덜란드 출신 핵심 엔지니어들이 화웨이, SMIC 등으로 유입되며 기술 확산을 견인하고 있다. 셋째, 국가집적회로산업투자기금(대기금)을 포함한 천문학적 투자가 집행되고 있으며, 인프라 구축과 세제 혜택도 병행되고 있다. 넷째, 소재 장비 후공정까지 내수 중심의 대체 공급이 가능해지며 미국 의존도 감소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목할 점은 SMIC가 삼성전자와의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차이를 불과 1.7%p까지 좁혔다는 점이다. 이는 양적 팽창 이상의 ‘질적 추격’이 이미 현실화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러한 진전에도 불구하고, 향후 극복해야 할 구조적 과제들은 명확하다. 첫째, EUV 장비 국산화다. 3nm 이하 공정의 핵심과 기술 장벽 및 특허 포위망을 돌파해야 한다. 다음, 반도체 설계 및 검증 소프트웨어(EDA) 툴 자립이다. 고성능 칩 개발을 위해 설계 툴 독립은 가장 시급한 과제이다. 셋째, HBM·DDR5 등 고성능 메모리 수율 개선이다. 또한 기술 표준과의 격차 축소가 필요하다. 넷째, 공급망 리스크 완화다. 미국의 제재 장기화 가능성에 대비한 중소기업 생태계 강화가 시급한 실정이다.

마지막으로 인재양성과 생태계 안정화다. 해외 인재 유입과 동시에 내수 기반 인력 공급 체계 강화가 성공의 핵심이다.

2025년 하반기 중국 반도체 산업은 ‘가능성’이 아니라 ‘현실’의 레벨로 올라서고 있다. 격차는 분명 존재하지만 그것은 오히려 방향성을 확인하는 좌표에 가깝다. 정책, 기술, 내수 수요가 동시에 작동하는 이 구조적 변화의 한가운데에 있으며 기술 자립화가 핵심 키워드다.

여전히 남은 과제

이들 기업은 모두 기술 내재화와 정책 수혜, 글로벌 수요 증가라는 세 가지 축에서 성장 동력을 확보하고 있다. 특히 SMIC는 14nm·7nm 공정 수율 개선을 통해 미국 제재 속에서도 매출 18% 증가라는 성과를 보였으며, 화홍반도체는 특화공정을 바탕으로 산업용 수요를 적극 흡수하며 주목받고 있다. 2025년 현재 중국 반도체 산업은 단순히 수입 대체 수준을 넘어서 ‘공급망 재편’을 주도하는 국가로 급부상하고 있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에 따르면 2024년 기준 중국은 세계 반도체 장비 투자액의 약 30%를 차지하며 세계 1위에 올라섰다. 미중 기술전쟁이라는 제약 속에서도 중국정부는 반도체 자립화라는 전략적 목표를 정면으로 추진하고 있으며, 이는 홍콩에 상장된 반도체 기업들의 펀더멘털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제 반도체 산업은 더 이상 기술 수입을 통한 ‘조립형 산업’이 아니라는 점이다. 자체 IP 확보, 신경망처리장치(NPU)·마이크로컨트롤러유닛(MCU) 등 특수 칩의 내재화, 그리고 AI·전기차·로봇 등 신산업의 확장을 통해 중국 반도체는 수직계열화에 가까운 진화 경로를 걷고 있다.

중국 반도체 산업은 여전히 미국의 기술 제재라는 외생 변수에 노출되어 있지만, 기술 자립화와 내수 확대라는 구조적 흐름 속에서 실질적인 성과를 만들어내고 있다. 특히 홍콩 증시를 통해 상장한 대표 기업들은 중국 내 수요를 선점하고 정책 수혜를 받아 중장기 성장성을 확보하고 있다.

안유화

중국증권행정연구원 원장

미국 어바인대(UI)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