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시론
이재명식 소통과 초심
이재명 대통령은 취임 다음날인 5일 첫 국무회의를 열었다. 이날 회의는 예상과 달리 김밥을 먹어가며 3시간 40분 계속됐다. 대부분 윤석열정부 장관들이었지만 이 대통령은 꼬치꼬치 현안들에 대해 묻고 토의했다. “소상공인과 서민 가운데 악성 부채가 있는 사람들에겐 어떤 지원이 필요하냐” “인공지능(AI) 분야에 필요한 그래픽처리장치(GPU) 확보는 어떻게 되어가고 있느냐” 등등.
‘이재명식 소통’은 타운홀 미팅으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은 광주서 열린 미팅에서 ‘광주 군 공항 이전’ 문제를 두고 대립하던 광주시장·전남지사·무안군수에 해법을 요구했다. 국가산단 조성 등 기존의 지역 현안요구에 대해 ‘광주와 전남이 앞으로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지 구체적인 대안과 청사진’을 주문했다.
“뜬구름 잡는 이야기가 아니라, 사업 계획서처럼 명확하고 구체적인 대안을 제시해 달라”고 해 광주시장 등을 곤혹스럽게 했다.
현장 토론과 지혜를 모아 해법 모색
이 대통령이 현장 토론에 익숙하고 구체적인 해법을 요구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다. 과거 시민단체 운동 때부터 몸에 배여 있고 그만큼 자신감도 있어서다. 경기도지사 시절 ‘계곡 불법영업 시설 철거’문제로 반대하는 상인들과 난상토론을 벌이기도 했다. 대선 기간에도 ‘경청 투어’ 방식으로 전국 현장에서 즉문즉답했다.
사극만 보면 허구한 날 권력투쟁만 했을 것 같은 조선왕조가 500년을 지탱한 것도 왕과 신하들간의 활발한 소통 때문이었다는 얘기도 있다. ‘어찌하오리까’(김진섭 저)에 따르면 조선왕조실록에 나와 있는 어전회의를 통해 조선의 최고 의사결정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개국 초기에 국정에 부담을 주는 천도를 강행하려던 태조와 이를 말리던 정도전, 왕의 인사권을 제한하는 서경(署經) 문제로 끝까지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은여림과 태종, 양반인 황효원이 노비의 딸을 적처로 삼은 문제를 두고 성종과 대신들이 대립한 사건, 금주령을 위반하면 사형에 처했던 영조 마음을 돌린 구상 등. 왕과 대신들이 해를 넘기면서까지 논의를 거듭하는 소통의 모습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대통령이 G7 회의 때 만난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 사례도 관심을 끌었다. 대통령실에 따르면 당시 이 대통령은 셰인바움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하면서 높은 지지율 비결을 물었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일주일에 3, 4일은 직접 시민을 찾아가 대화하고 야당과의 토론도 이어간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마냐레나(Mananera)’라고 불리는 멕시코 대통령의 아침 대화는 셰인바움 대통령이 2024년 취임 이후 평일 아침 7시마다 진행하는 생중계 기자회견이다. 전임 대통령인 로페스 오브라도르가 2018년 시작했는데, 집권당인 국가재건운동(MORENA·모레나) 정부의 관례가 됐다.주로 대통령궁에서 열리지만 때로는 주제와 연관된 현장에서도 진행한다.
미국 대통령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대공황 시절 국민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고, 자신감을 갖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봤다. 루스벨트는 대국민 직접 커뮤니케이션의 방법으로 당시 뉴미디어인 라디오를 통한 ‘노변정담’(fireside chats)을 해 큰 호응을 얻었다.
진정한 민심 소통으로 위기 극복해야
대다수 정치인들은 소통을 강조한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평검사와의 대화’를 통해 문제 해결을 시도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참여마당’을 신설하는 등 ‘디지털 소통’을 열었다. ‘불통’의 상징처럼 된 윤석열 전 대통령도 정권 초기 출근길 ‘도어스테핑’을 했다. 문제는 ‘초심’을 얼마나 유지하느냐다. 지지율이 높고 유리할 때는 소통한다고 하다가도 어느 날 ‘쓴 소리’에 귀를 닫은 게 역대 지도자들의 모습이다.
이번 내란사태도 지도자의 불통과 독선, 이를 부추기고 따르거나 방치한 사람들이 초래한 비극이다. 윤희숙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은 윤 전 대통령이 재구속된 10일 “대통령 부부의 전횡을 바로잡지 못해 비상계엄에 이르게 된 것에 책임을 통감한다”고 했다.
여인형 전 방첩사령관은 최근 법정에서 “당시로 돌아갈 수 있다면 단호하게 군복을 벗겠다는 결단을 함으로써 그 지휘체계에서 벗어났어야 했다”고 했지만 만시지탄일 뿐이다.
국내외 환경이 매우 어렵다. 이 대통령과 집권여당은 초심을 잊지 말고 지속적인 민심 소통에서 답을 찾길 바란다. 상생과 통합을 통해 국민의 힘을 한 데 모은다면 못해 낼 일이 있겠는가.
차염진 정치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