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한국이 산재 후진국 못 벗어나는 이유

2025-07-14 13:00:03 게재

7월은 산업안전보건 강조의 달이다. 국가의 존립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지키고 행복하게 만드는 것이다. 교통사고든, 자살이든, 자연재해든, 사회재난이든, 산업재해든 이를 최소화하고 사전예방하는 것이 국가의 최우선 책무이다. 역대 정부가 산업안전보건 선진국을 목표로 내세우는 까닭이기도 하다.

이런 목표 달성을 위해 재계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중대재해처벌법까지 만들어 2022년부터 시행에 들어갔다. 이어 2024년에는 처벌 대상을 50인 이상 기업에서 50인 미만 5인 이상 중소기업까지 확대했다. 하지만 일터 사망사고는 크게 줄어들지 않고 있다. 해마다 800명 넘게 사고사망자가 나오고 있다.

1만명의 노동자 가운데 사고사망자 비율을 뜻하는 사고사망만인율은 10년 가까이 0.4대를 기록하다가 2023년 간신히 0.3대 턱걸이를 했다. 직업병 등 업무상질병 사망자는 외려 계속 늘고 있다. 연간 1200명이 넘는다.

문재인정부 때는 중대재해처벌법을 제정·시행한 데 이어 임기 중 일터 사고사망 절반으로 줄이기를 목표로 정했다. 이를 위해 현장점검을 강화하고 산업안전보건감독관을 대폭 늘리는 등의 노력을 했다.

윤석열정부는 이런 목표 달성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보았다. 일터 감독·처벌 위주 정책을 탈피해 위험성 평가를 중심으로 한 일터 안전보건체계 구축과 안전문화 확산을 두 축으로 해 중대재해 감축 전략 로드맵을 임기 첫해 공표했다. 하지만 문재인정부 5년과 윤석열정부 3년 등 지난 8년간의 산재 감축 전략과 제도 개선은 한계가 있음이 분명 드러났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에도 사망사고 줄지않아

며칠 전 인천환경공단의 하도급을 받은 어느 영세업체의 노동자가 안전보호구를 착용하지 않은 채 맨홀 작업을 하다 가스 중독으로 한 명이 숨지고 다른 한 명이 가까스로 목숨을 건진 중대재해가 있었다. 이재명 대통령은 사고를 보고받은 뒤 ‘특단의 대책’을 주문했다. 중대재해를 줄이거나 예방하는데 묘책이 있을 수는 없다. 우리가 알고는 있지만 말하기를, 개혁하기를 꺼려하는 일에 답이 있다. 이 사고의 직접적 원인뿐만 아니라 간접적 원인까지 낱낱이 파헤치면 진짜 답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로 사업주를 처벌할 수 있는 직접적 원인에만 관심을 쏟는다. 재해 예방에는 효용이 있더라도 재판에서 별 효용이 없는 내용에는 관심이 없다. 재해예방에는 때론 간접 원인이 더 중요하다.

산재예방의 가장 밑바닥에는 안전문화가 자리 잡고 있다. 하지만 정작 이 부문에 투입하는 예산은 너무나 적다. 중소기업 안전설비 투자나 안전장치 지원 등에 쓰는 예산은 연간 1조 원가량이다. 그중 10%만 써도 사업주와 노동자의 안전보건 의식이 크게 바뀔 것이다.

하지만 정부 관료, 특히 기획재정부 관료들은 이에 별 관심을 두지 않는다. 그들은 예년 예산 대비 몇 퍼센트 증액이란 잣대를 가지고 전가의 보도로 휘두를 뿐이다. 눈에 보이는 비용 지원, 즉 하드웨어 중심 지원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여긴다. 손에 잡히지 않는 소프트웨어 지원은 낭비라 생각한다.

이런 인식을 버리지 않는 한 안전보건 선진국으로 가는 우리 발걸음은 무겁기만 할 것이다. 교육과 홍보·광고에 앞으로 5년간 매년 1000억원씩 증액해 대한민국 사업주와 노동자, 그리고 국민의 안전 의식과 행동, 습관을 뿌리부터 바꿔라. 모여서 구호 외치고, 사진 찍고, 대중이 거의 주목하지 않는 매체에 한 줄 보도되는 것에 만족하는 것은 가장 하책이다.

끝으로 고용노동부는 예방 정책 수립, 감독과 처벌 활동에만 전념해야 한다. 기술 지침 제정과 운영, 안전보건 교육, 현장 예방 활동, 홍보 등은 전적으로 안전보건공단에 맡겨 자율적이고 효율적으로 예방 정책이 집행되도록 해야 한다. 일은 공단이 하고 그 과실은 노동부가 따먹는 지금과 같은 갑과 을 형태로는 비효율과 갈등만 키운다. 예산과 인력, 전문성도 낭비된다.

현 정부 중대재해 줄이는 성과 기대

이 대통령은 역대 대통령 가운데 유일하게 일터 현장에서 산재를 겪고 일터 안전의 중요성을 뼛속까지 아는 지도자다. 국민은 그 어느 정부 때보다 중대재해를 줄이는 성과를 내기를 기대한다. 산업안전보건의 달을 맞아 대통령이 직접 참석하는, 산재 감축을 위한 국민대토론회를 열기를 제안한다.

안종주 언론인 전 안전보건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