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의 눈
자사주의 마법에서 완전히 벗어나자
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 발의가 잇따르고 있다. 주주가치를 높이고 증시 상승세를 이끌기 위해서는 원칙적 소각이 불가피하다는 이유다. 자사주 매입은 회사의 자산으로 주식을 사들이는 것으로 배당과 더불어 대표적인 주주환원 수단으로 꼽힌다. 미국에서는 발행주식 수를 집계할 때 의결권, 배당권이 없는 자사주를 차감한다. 시가총액을 산출할 때 자사주는 아예 없는 셈 치는 것이다. 이에 미국에서는 배당보다는 자사주 매입을 선호하는 편이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지배주주의 경영권 방어 수단 또는 지배력을 높이는 수단으로 악용 되어왔다. 의결권이 없는 자사주를 지배주주에 우호적인 기업과 맞교환해 서로의 지배력을 강화하거나 우호적인 백기사, 제3자에게 매각하는 등의 방법으로 지배주주의 우호 지분 역할을 해왔다. 또 인적 분할 시 자사주 활용으로 추가 비용 없이 최대 주주의 지분율을 뻥튀기하며 지배력을 강화해 ‘자사주의 마법’으로 불리기까지 했다.
이런 가운데 범여권에서는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처리를 목표로 ‘자사주 소각 의무화’ 관련 법안을 잇달아 내놨다. 코스피5000특별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 등은 지난 9일 상장회사가 자사주를 취득할 경우 1년 이내에 의무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내용이 담긴 상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14일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상법 개정안은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일로부터 6개월 내 소각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김남근 민주당 의원의 발의안(1년)보다 기간이 더 짧다.
재계 측은 이번 개정안이 기업의 경영권을 지나치게 위협할 수 있다며 경영권 방어 수단이 필요하다고 항의하고 있다.이에 금융투자업계 전문가들은 기업들이 자사주 취득 시 그 목적을 주주가치 제고라고 하고서는 이제 와서 왜 경영권 방어 수단이라고 하냐고 지적한다. 자기주식은 매입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자사주 소각 행위는 기업의 재무적 실질에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자사주 매입을 정확하게 표현하면 출자받은 주식을 투자자한테 돌려주는 것과 같다.
미국 S&P500지수는 자사주 매입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주식 수에 큰 변화가 없다. 2010년 1월 대비 현재 S&P500 지수의 시가총액은 460%나 상승했지만, 주식 수는 오히려 4% 줄었다. 자사주는 없는 주식이기 때문에 시총 산정 시 주식 수에서 제외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이 글로벌 스탠다드다.
자사주 소각의 효과는 주당 가치 상승 장기 수익률 개선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된다. 자사주 소각은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해소, 상법 개정안의 핵심 쟁점이 됐다. 이제 한국증시도 자사주의 마법에서 완전히 벗어나 상승세를 이어가길 기대해 본다.
김영숙 재정금융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