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바이오 신약 ‘무서운 질주’

2025-07-15 13:00:02 게재

혁신 신약 점유율 미국 턱밑까지 … 항암제 이보네시맙 ‘신약계 딥시크’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위원이자 국무원 부총리인 류궈중이 지난 10일 베이징시 베이징대학 약학대학을 방문하고 있다. 신화사=연합뉴스
‘복제약의 천국’으로 불리던 중국이 혁신 신약 개발의 강자로 급부상하며 글로벌 제약 시장의 판도를 뒤바꾸고 있다. 전통적인 서방 제약 강국들을 바짝 추격하면서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새로운 전선을 열고 있다.

14일(현지시간) 블룸버그통신이 의약정보업체 노스텔라(Norstella)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해 중국에서 개발에 착수한 혁신 신약 후보물질(항암제·체중감량제 등)은 1250개를 넘어섰다. 이는 유럽연합(EU)을 크게 웃도는 수준이며, 미국(약 1440개)에 근접한 수치다. 블룸버그의 분석은 복합제, 복제약, 바이오시밀러 등을 제외한 혁신 신약만을 기준으로 집계했다.

과거 값싼 복제약과 품질 논란으로 점철되던 중국산 의약품은 이제 까다로운 글로벌 규제를 통과하며 글로벌 빅파마(Big Pharma)의 협업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제약 산업에 대한 추가 관세 가능성을 시사한 가운데, 중국 바이오의 약진은 AI와 전기차(EV)에 이은 미중 기술패권 경쟁의 새로운 각축장이 될 전망이다.

LEK컨설팅 상하이 지사장 헬렌 천은 “이 정도 규모의 변화는 전례가 없다”며 “중국의 신약은 이미 시장에 나와 있고, 매력적인 데다 개발 속도도 빠르다”고 평가했다.

중국은 불과 10년 전인 2015년까지만 해도 글로벌 신약 파이프라인에 기여한 신약 후보가 160개에 불과했다. 전체의 6%도 되지 않는 수준으로 일본과 영국보다도 적었다.

하지만 이후 중국은 의약품 규제 체계를 대대적으로 개편하며 신약 심사 속도를 높이고, 임상 데이터의 질과 투명성을 대폭 개선했다. 여기에 ‘중국제조 2025’ 전략으로 바이오 분야가 국가 전략산업으로 지정되며 투자가 물밀듯 쏟아졌다. 해외에서 교육받은 과학자와 창업자들이 대거 창업에 나선 것도 성장의 핵심 동력이 됐다.

노스텔라의 다니엘 챈슬러 부사장은 “중국은 이미 미국과 거의 대등한 수준에 도달했고, 이 추세라면 수년 내에 미국을 추월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중국발 혁신의 대표 사례로는 레전드 바이오텍(Legend Biotech)이 개발한 세포치료제가 꼽힌다. 혈액암 치료용으로 개발된 이 치료제는 미국 존슨앤드존슨(J&J)이 상업화에 나섰으며, 미국산 유사 치료제보다 더 우수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미국 식품의약국(FDA) 등에서 ‘신속 심사’ 등 혁신적 지위를 획득한 중국 신약의 수는 아직 미국산 신약과 큰 격차가 있다. 중국 제약사들이 리스크 회피 성향이 강해, 완전히 새로운 치료법보다는 기존 치료제의 개량이나 확장에 주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글로벌 제약사들은 중국산 신약을 사들이며 경쟁에 가세하고 있다. 아케소(Akeso Inc.)가 개발한 면역항암제 '이보네시맙'은 지난해 중국 임상에서 머크의 세계 베스트셀러 ‘키트루다’를 능가하는 효과를 보여 전 세계 주목을 받았다. 업계에서는 이를 ‘중국 바이오의 딥시크 순간(DeepSeek moment)’에 비유하고 있다. 아케소 신약의 미국·유럽 판권을 2022년 5억달러에 사들인 서밋테라퓨틱스(Summit Therapeutics)의 주가도 올들어 35% 급등했다.

이 밖에도 머크, 아스트라제네카, 로슈 등 글로벌 제약사들이 잇따라 중국 바이오기업과의 파트너십을 체결하고 있다. 지난 5월에는 화이자가 중국 3SBio와 손잡고 아케소 신약과 유사한 항암제를 공동 개발하기로 하고, 사상 최대 규모인 12억달러를 선급금으로 지불했다.

이에 따라, 중국 바이오주의 주가도 고공행진 중이다.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홍콩에 상장된 50개 주요 바이오기업으로 구성된 항셍 바이오테크 지수는 올 들어 61.8% 급등하며, 같은 기간 항셍 지수 상승률(20.6%)을 세 배 이상 앞질렀다. 혁신 항암신약의 수출 가능성이 현실화되고 있다는 기대가 투자심리를 자극하고 있다고 FT는 전했다.

이주영 기자 123@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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