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사주 소각 의무화’ 법안 발의 잇달아…9월 국회 통과 목표

2025-07-15 13:00:08 게재

기업 자사주 매입·소각 급증 … 작년 한 해 물량 육박

미국·일본 사례처럼 자사주는 주식 수에서 제외해야

‘자사주 소각 의무화’ 논의가 급물살을 타면서 9월 정기국회 통과를 목표로 한 법안 발의가 잇달았다. 기업 자사주 매입과 소각도 급증하며 이미 작년 한 해 물량에 육박했다. 이런 가운데 학계와 시장전문가들은 미국과 일본의 사례처럼 주식 수 제외가 먼저라는 주장이 나왔다. 자본 증가 아닌 자본 차감인데 투자자들의 혼란만 초래한다는 지적이다. ▶관련기사 21면

◆‘자사주 소각’ 핵심 쟁점으로 부각 = 15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새 정부 출범 이후 증시 부양책이 잇따르는 가운데 자사주 소각 이슈가 핵심 쟁점으로 부각했다.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코스피 5000 특별위원회 소속 김남근 의원이 자사주를 취득하면 1년 이내에 원칙적으로 소각하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가운데 14일 차규근 조국혁신당 의원은 기업이 자사주를 취득일로부터 6개월 내 소각하는 것을 의무화하는 것을 골자로 상법 개정안을 내놨다. 또 회사를 분할하거나 분할합병하는 경우 분할되는 회사가 보유한 자사주에 대한 신주배정을 금지했다. ‘자사주 마법’을 막겠다는 취지다.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는 자사주 소각 의무화 입법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지난해부터 국내 주요 상장사들을 중심으로 자사주 매입·소각 움직임도 잇따르고 있다. 이에 따라 코스피 지수가 추가 상승할 수 있다는 기대가 커지고 있다.

하나증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기업 자사주 매입 금액은 17조원으로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다. 올해도 10조원을 매입했다. 2022년 자사주 소각 금액 비율은 36%에서 2024년에는 68%까지 상승했고, 2025년 들어서는 자사주 매입보다 소각 금액이 더 많다.

금융감독원 전자공시시스템에 따르면 13일까지 자사주 매입 관련 공시(자기주식 취득결정 및 신탁계약 체결)는 총 347건으로 집계됐다. 지난 6~7월에만 55건의 자사주 매입 공시가 이어졌다. 같은 기간 자사주 소각 결정은 총 169건으로 지난해 연간 공시 건수(184건)의 90%를 상반기 만에 넘어섰다.

삼성전자는 3조9000억원 규모의 자사주를 매입하고 이 중 2조8000억원 규모를 소각하기로 했다. 셀트리온과 유한양행도 각각 1000억원, 200억원 규모 자사주 매입·소각 계획을 밝혔다.

◆미국·일본, 자사주 소각을 통한 밸류업 = 최근 몇 년 사이 글로벌 증시 상승을 이끌고 있는 미국과 일본의 경우 자사주 소각을 통한 밸류업의 긍정적 영향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올해 S&P500지수 수익률은 6.4%인데 바이백(자사주 매입 기업)과 성장주는 각각 8.7%와 9.0%의 높은 수익률을 기록했다. S&P500 시가총액 대비 분기 배당수익률은 2008년 이후 1.9%(올해 1분기 1.3%)지만, 자사주 매입 수익률은 2.8%(2.0%)로 꾸준히 상대적으로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1분기 S&P500기업의 자사주 매입 규모는 2935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고, 연간 추정치도 1조 달러를 넘어서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S&P500지수는 자사주 매입으로 인해 장기적으로 주식 수에 큰 변화가 없다.

동일한 순이익에도 자사주 매입과 소각으로 인해 주식 수가 감소하면 주당순이익은 상승하고, 추가 주주친화정책 강화로 주가수익비율(PER)을 상승시킬 수 있다. 이재만 하나증권 연구원은 “2010년 1월 대비 현재 S&P500지수의 시가총액은 460%나 상승했지만, 주식 수는 오히려 ‘–4%’로 감소했다”며 “시가총액보다 지수가 485% 더 높게 상승할 수 있었던 이유”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보다 앞서 밸류업을 시행한 일본도 자사주 매입과 소각이 이어지면서 지수가 급등했다. 일본은 2022년 도쿄증권거래소에서 기업들에게 자본효율성 제고와 주주환원정책 강화, 특히 주가순자산비율(PBR) 1배 미만 기업들에게 개선 계획을 요구한 바 있다. 이에 따라 일본 기업들의 자사주 매입은 2021년 7조7500억엔에서 2023년 10조엔을 돌파했고, 올해는 22조엔까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토픽스(TOPIX) 지수는 2022년 1월 대비 현재 42% 상승했다. 그런데 자사주 소각이 같이 진행되면서 이전까지 증가했던 주식 수는 2022년 1월 대비 현재 ‘–6%’로 줄었다. 2016~19년 토픽스지수의 ROE는 평균 8.2%에서 2022~24년 8.6%로, 2025년에는 9%까지 상승했다. 평균 PBR은 1.28배에서 현재 1.46배까지 높아졌다.

◆자사주는 자산 아냐…주식 수 제외해야 = 학계와 시장 전문가들은 자사주를 자산으로 인식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지난 11일 한국거버넌스포럼 주최로 열린 ‘이재명 정부 상법개정안의 핵심 쟁점, 자사주 소각’ 세미나에서 김우진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는 자사주를 자산으로 인식하면서 국내 주식시장에 왜곡을 부른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전통적으로 국내외 회계기준상 취득 자사주는 차변에 기재하지만 자산이 아니라 자본의 차감항목으로 인식해 자산성을 부인하고 있다”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세법은 자사주 매각 이익 과세를 위해 자사주 거래를 자본거래가 아닌 손익거래로 인식해 자산설의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현재 자산설에 입각한 자사주 취급이 자본시장에서 많은 부작용을 야기한다는 점이다.

김 교수는 “주당순이익(EPS), 주가수익비율(PER) 지표 모두 과대평가 되고 코스피 종합지수에도 왜곡을 준다”며 “경영권 방어를 위한 자사주 처분시 주주평등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등의 문제가 있다”고 꼬집었다. 실제 2010년 1월 대비 현재 코스피의 시가총액은 207%나 상승했지만, 지수는 98% 상승하는 데 그쳤다. 같은 기간 동안 주식 수는 증자와 분할 등으로 인해 106%나 증가했다.

김형균 차파트너스자산운용 본부장 또한 “자사주 매입의 정확한 표현은 자사주 환매(Share(stock) Repurchase buyback)로 실제 주식을 거래하는 게 아니라 출자 자본을 원하는 주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 본질”이라며 “매입하는 순간 사라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이기에 시총 산정 시 주식 수에서 제외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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