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에너지

탄소 1톤의 무게, 미래세대의 무게

2025-07-16 13:00:01 게재

2025년 여름 세계는 말 그대로 ‘불타는 지구’를 체감하고 있다. 서울은 관측 사상 가장 뜨거운 7월 초중순 기온을 기록했고 이천은 40.2℃까지 치솟았다. 유럽은 더욱 참혹하다. 최근 유럽 12개 도시에서 최소 2300명이 폭염으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기후위기는 더 이상 먼 미래의 경고가 아니다. 탄소 1톤의 배출은 생명과 건강, 생산성, 에너지 비용, 재난 위험 등 다양한 방식으로 피해를 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 피해를 숫자로 다루는데 매우 인색하다. 탄소는 분명한 사회적 비용을 초래하지만 여전히 이를 ‘0원’으로 회계처리하고 있다. 배출자가 피해에 대한 책임을 지지 않고, 그 부담을 국민 전체와 미래세대가 떠안고 있는 셈이다.

이 왜곡을 바로잡기 위해 제시된 개념이 ‘사회적 탄소 비용(Social Cost of Carbon, SCC)’과 ‘탄소의 그림자 가격(Shadow Carbon Price)’이다. SCC는 탄소 1톤 배출이 국민에게 미치는 피해를 돈으로 환산한 수치이며, 그림자 가격은 이를 반영해 정책과 투자 의사 결정에 내부 기준으로 적용되는 탄소가격이다.

이 두 지표가 실제로 효과를 발휘하는 대표 사례가 탄소 포집·저장(CCS) 기술이다. 미국과 유럽은 시장 논리만으로는 추진이 어려운 CCS와 같은 탄소중립 기술에 SCC와 그림자 가격 반영을 통해 사업화를 가속하고 있다.

미국은 45Q 세액공제와 연방 규제 심사에 그림자 가격 탄소 톤당 190달러 이상을 반영해2023년 기준 270개 이상의 CCS 프로젝트를 운영 또는 개발 중이다. 이 중 15개는 상업용으로 운영되며 연간 약 4900만 톤의 CO₂를 포집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유럽도 배출권거래제 기준 가격을 바탕으로 그림자 가격 125유로 이상을 적용하고 있으며, 네덜란드는 대표 CCS 프로젝트인 ‘포르토스’를 통해 총 3700만톤의 CO₂ 감축을 추진하고 있다.

CSS 기반 탄소감축 정책 인프라 취약

한국 역시 2030년까지 산업·발전 부문에서 약 4000만 톤 이상의 CO₂를 포집할 수 있는 기술적 잠재력을 보유하고 있다는 분석이 있지만 이를 실현하기 위한 제도적 기반은 매우 취약하다. ‘기술이 없는 게 아니라, 가격이 없는 것’이라는 말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셈이다.

공공투자나 기술개발에 대한 예비타당성조사에서 SCC는 여전히 과거 미국 글로벌 워킹 그룹(IWG) 기준에 기반한 4만4000원 수준이고, 그림자 가격은 2023년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가 제안한 10만원이 일부 시범 사업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반면 미국과 유럽은 이미 한화 기준으로 20만~30만원을 웃도는 그림자 가격을 적용하고 있다. 이 격차는 탄소감축 투자의 경제성 평가 자체를 다르게 만들며, 결국 민간의 참여와 기술의 확산 속도에서 큰 차이를 낳는다.

한국의 탄소배출 구조를 보면 철강 시멘트 석유화학 등 난감축 배출 산업이 전체 산업 배출의 70% 이상을 차지한다. 블룸버그는 한국 산업 부문의 감축 여력을 세계 최하위권으로 분석했고, 국제재생에너지기구는 한국의 2050년 그린수소 공급 단가가 세계 최하위가 될 것으로 전망했다. 이는 그린수소 전환이 쉽지 않으며 일정 기간 수소 생산 시 발생하는 CO₂를 CCS로 제거하는 ‘블루수소’ 중심의 현실적 접근이 불가피하다는 뜻이다.

이처럼 CCS 기반 탄소감축은 우리에게 더욱 절실하지만 이를 떠받쳐야 할 정책적 인프라는 여전히 구조적 결핍 상태에 머물러 있다. 부족한 것은 기술이 아니라 그것을 작동하게 할 올바른 가격 신호, 곧 ‘탄소의 진짜 값’을 정책에 반영하는 정부의 결단력이다.

다가오는 제3차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NDC) 제출을 앞두고 우리는 감축의 방향성과 실행 가능성을 냉정히 재점검해야 한다. 가정·수송 부문은 전기화 및 재생에너지 중심의 감축, 그리고 산업·발전·수소 부문은 CCS 기반(기술의 안정성과 저장소 확보에 대한 검증 병행)의 구조적 탄소제거 등 이원화 전략으로 자원의 낭비를 줄이고 실질적 탄소중립을 달성하는 현실적 해법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선진국 수준의 탄소 그림자 가격 책정 필요

이를 위해서는 정부의 투자 평가 체계가 먼저 개편되어야 한다. 예비타당성조사와 공공사업 심의 과정에 SCC를 전면 반영하고, 선진국 수준 또는 그 이상의 그림자 가격을 적용해야 한다. 그래야 탄소감축 편익이 수치로 인정되고, 진정한 ‘녹색투자’가 실현될 수 있다.

탄소 1톤의 무게를 계속 외면한다면 우리와 미래세대의 삶은 점점 더 치명적으로 위협받을 것이다. 탄소 피해를 정직하게 반영하고 그를 바탕으로 책임 있는 정책과 투자를 실행하는 것, 그것이 기후위기를 넘어 지속가능한 사회로 가는 첫걸음이자 미래세대를 향한 우리의 가장 기본적인 책무가 될 것이다.

이승국 한양대 대우교수 에너지자원공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