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산물 관세 철폐하면 국내 생산기반 붕괴
소고기 쌀 과일 관세·비관세 장벽 협상 카드로 … 추가 개방시 FTA처럼 피해지원 예산 필요
미국과 관세 협상에서 농산물 개방 조치가 이뤄질 경우 일부 품목에서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될 것으로 우려된다. 농민들과 농업단체, 국회에서도 반발하고 있지만 정부의 협상카드가 농축산물 비관세 장벽 해소 밖에 없다는 점에서 시장 개방 수순이 불가피해 보인다. 이는 정부 협상단에 농림축산식품부가 포함되면서 현실화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17일 정부와 농업계에 따르면 정부는 미국과 소고기 시장 비관세 장벽(30개월령 이상 수입 금지 조치)에 대한 수정 협상을 벌일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미국 무역대표부는 줄곧 30개월령 이상 소고기 수입 요구가 있어왔다는 점에서 수입 개방 절차에 대한 협상이 예상된다.
정부가 소고기 이외에도 사과 등 일부 과일 수입안도 협상 테이블에 가져갈 것으로 전망된다. 2~3년전부터 사과 배 가격 폭등으로 수급조절에 실패한 정부는 이들 과일의 수입 절차를 검토해왔다. 검역 조건 등이 까다로운 사과는 이미 미국 등 10여개국과 검역 협상을 진행 중이다.
미국 측의 쌀 시장 개방 압력도 거세지고 있다. 현재 한국은 쌀에 513%의 관세를 부과하면서 40만8700톤을 저율관세할당물량(TRQ)으로 정해 5% 관세로 수입하고 있다. 이밖에 미국은 11개주에서 생산한 감자와 미니 당근, 딸기, 냉동 라즈베리 등의 수입을 요구해온 만큼 우리 정부가 이에 대한 논의를 구체적으로 진행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정부가 미국과 협상에 따라 일부 품목의 장벽을 철거할 경우 국내 산업 보호조치가 중요한 과제로 떠올른다. 소고기 월령 제한 폐지에 따른 국내 축산업의 피해와 쌀 저율관세에 따른 쌀 농가 경영 악화, 과수농가의 피해까지 당분간 지원 예산을 확보해야 한다. 구체적인 피해규모가 산정되지 않았지만 매년 수천억원의 예산이 필요할 것으로 예측된다.
자유무역협정(FTA)의 경우 국내 농산업이 경쟁력을 잃게 될 것에 대비해 피해보전직불금을 운영하고 있는데 지난해 FTA 피해보전직불금 예산은 약 700억원이었다. FTA피해보전직불금 제도는 올해 종료된다.
정부는 예산 확보 문제와 농민단체 반발에도 대응해야 한다. 농민단체는 소고기 쌀 일부 과일의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로 국내 생산기반이 붕괴할 수도 있다며 반발하고 있다.
전국한우협회는 현재 미국산 소고기 최대 수입국이 한국이고 내년에는 미국산 소고기를 무관세로 수입하게 된다는 점을 지적하며 30개월령 이상 수입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냈다.
한우협회는 “한미 통상의 농업 분야에서 최대 이익을 얻고 있는 미국이 상호 관세를 명분 삼아 농축산물 비관세장벽 철폐를 요구하고 있는 것은 아이러니”라며 “오히려 우리 정부가 상호 관세 원칙을 이유로 미국산 소고기에 25% 관세 부과를 요구하는 것이 더 논리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산 소고기 수입 월령 제한이 없어지면 광우병 우려가 커져 전체 소고기 소비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점도 강조했다.
한국후계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한농연)도 16일 용산 대통령실 앞에서 ‘한미 상호관세 협상 농축산물 관세·비관세 장벽 철폐 반대’ 기자회견을 개최했다.
한농연은 “우리나라는 미국산 농축산물의 5위 수입국으로 한미 FTA 발효 후 사실상 농축산물 관세를 대부분 철폐했으며 그 결과 지난 15년간 대미 수입은 56.6% 증가했다”면서 “관세·비관세 장벽의 추가 해소는 사실상 완전 개방에 가까워 국내 농업 생산 기반의 붕괴마저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와 함께 “동식물 위생·검역 및 유전자변형생물체(LMO) 등 비관세 장벽 규제 완화는 소비자의 먹거리 안전을 심각하게 위협할 수 있는 사안으로 단순히 농업인만의 문제라 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집권여당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농촌지역에서 불리한 국면에 처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15일 “한-미 통상협상 과정에서 농업은 결코 교환 수단이 될 수 없다“며 “정부는 (미국의 통상 압박에) 당당히 맞서 국민적 이익을 옹호하고 향후 통상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농업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공동성명을 냈다.
김성배 기자 sb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