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 의원 “한미통상협상서 농업 희생양 안돼”
국회 농해수위 위원들 성명 내놓으며 경고
패키지 협상카드 활용 가능성에 “우려”
“다른 산업 이익 위해 농업 양보 멈춰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 소속 더불어민주당 위원들이 16일 국회 소통관에서 “농업, 농촌, 농민이 한미통상협상에서 희생양이 되어서는 안된다”며 기자회견에 나섰다.
어기구 농해수위 위원장, 이원택 간사 등은 “정부가 또다시 농업을 한미통상협상 테이블에 올려놓고 있다”며 “엄중한 농업의 현실을 외면한 채, 매우 우려스러운 발언을 이어가고 있다”고 했다.
최근 여한구 통상교섭본부장의 한미통상협의 관련 브리핑을 언급한 것이다. 여 본부장은 지난 15일 기자들과 만나 “고통스럽지 않은 농산물 협상은 없었다”, “농산물도 전략적 판단해야 한다”, “후생적 측면에서도 유연하게 볼 부분은 분명히 있다”는 등의 발언을 내놓았다. 이를 두고 민주당 의원들은 “그간 통상협상 과정에서 매번 반복되어 온 농업 희생의 역사를 또다시 되풀이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며 “쇠고기 수입 요건 완화, 쌀 시장 추가 개방, 유전자변형 농산물의 수입 확대, 검역 기준 완화 등 식량주권과 국민 건강에 직결된 주요 사안에 대해 미국의 요구를 사실상 수용 가능하다는 태도로 접근하고 있다”고 했다.
“농업의 가치를 다시금 협상의 카드로 전락시키는 것이자, 우리 사회가 오랜 시간 쌓아온 식품안전 기준과 검역 주권을 근본적으로 흔드는 요구이고, 식량주권과 농민 생존권, 먹거리에 대한 국민 우려를 무시하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주장이다.
그동안 자유무역협정(FTA) 협상에서 농업부문은 협상카드로 취급돼 왔음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민주당 의원들은 “지난 30년간 대한민국 농업은 수많은 국제통상 협상 과정에서 고통을 강요받아 왔고, 그 피해는 우리의 농업 농촌 농민의 희생으로 이어져왔다”며 “WTO체제 이후 농업은 하나의 ‘협상 카드’로 전락했고, 한미 FTA, 한중 FTA, 한EU FTA 등 주요 협정에서 농촌과 농민은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그 결과 곡물 자급률은 20% 이하로 떨어졌고, 농가소득은 여전히 20년 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며 “농가부채는 사상 최고치를 경신하고 농촌의 고령화와 공동화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고 강조했다.
의원들은 “정부는 당당히 맞서 국민적 이익을 옹호하고 향후 통상협상 과정에서 우리의 농업을 지키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혀야 한다”며 “다른 산업 분야에서의 이익을 위해 일방적으로 농업을 양보하는 방식은 이제 멈춰야 한다”고 했다. “정부가 먼저 지켜야 할 것은 수출 성과가 아니라 국민의 건강과 생존 기반이며, 식량주권을 지키는 분명한 원칙의 수립”이라며 “우리의 식량주권과 국민의 생존권은 협상의 유연성만으로 접근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도 했다.
민주당 농해수위 위원들이 반발하고 나선 것은 최근 트럼프 행정부에서 다른 무역 협상국에게 농산물 수입을 강요하며 실제 성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30개월 이상 소고기 수입허용, 쌀 구입 확대, 감자 등 유전자변형작물 수입 허용 등을 요구하고 있다. 일본에도 쌀 개방 압박을, EU와 인도에도 농산물 규제 완화를 협상 테이블에 올려놨다. 베트남은 이미 미국 농산물을 무관세로 개방했고 인도네시아는 45억 달러의 미국산 농산물을 구매하기로 했다.
대통령실이 관세 협상에서 비관세분야까지 패키지로 협상하기로 방향을 잡은 만큼 ‘농업의 희생양’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위성락 대통령실 국가안보실장은 지난 9일 미국 워싱턴 DC를 방문하고 돌어와서는 미국과의 관세 협상과 관련해 “통상이나 투자, 구매, 안보 관련 전반에 걸친 패키지로 종합적으로 협의를 진전시키자고 했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