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 신재생보다 화석연료에 7배 더 투자…글로벌 흐름에 역행
석탄 금융, 한전에 집중 ‘고착화된 투자 구조’ 문제
이재명 정부 ‘에너지전환’ 목표 달성 걸림돌 우려
국내 금융기관들이 신·재생에너지보다 화석연료에 7배 더 많은 자금을 투자하거나 대출한 것으로 나타났다. 석탄 등 화석연료 금융의 상당액이 한국전력공사와 그 자회사에 집중된 투자 구조 고착화가 문제다. 이런 투자 흐름은 과거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며, 재생에너지 투자가 화석연료를 앞지르는 글로벌 흐름과 역행하는 모습이다. 또 이재명 정부가 내세운 에너지 전환 목표 달성에도 걸림돌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국내 금융기관 보유 화석연료 금융 173.7조원 =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과 김현정 더불어민주당(경기 평택시 병, 정무위원회) 국회의원실이 16일 공동 발간한 '2024 화석연료금융 백서'에 따르면, 작년 6월 말 기준 국내 112개 금융기관이 채권, 기업대출, 프로젝트파이낸싱(PF) 등을 통해 보유한 화석연료 금융의 규모는 173조7000억원(보험 규모 포함시 372조3000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상위 5위의 화석연료금융 규모를 기록했던 우정사업본부 등이 올해는 자료 제출을 거부한 것을 고려하면, 실제 화석연료금융은 이보다 더 클 것으로 추정된다. 국민연금과 한국수출입은행, 한국산업은행을 포함한 공적금융의 화석연료금융 잔액은 106조2000억원으로 61.2%를 차지한다. 은행과 보험 등 민간금융은 67조5000억원으로 38.8%의 비중이다.
연료별로 보면 석탄이 77조1000억원(44.4%), 천연가스 및 석유 96조6000억원(55.6%)으로 구성된다.
◆한전에 쏠린 석탄금융 = 화석연료금융의 잔액 중 3분의 1에 달하는 55조2000억원이 한전과 그 자회사에 집중됐다. ‘한전 쏠림’ 현상이 공적금융기관에 의해 주도되고 있어 책임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특히 국민연금과 한국산업은행 두 기관이 공적금융의 한전 투자 중 99%에 달하는 32조5000억원을 한전 및 자회사에 투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렇게 화석연료에 편중된 국내 금융의 에너지 전환이 지연될 경우 좌초자산으로 인한 재무 리스크 확대 가능성이 우려된다. 때문에 탈탄소 이행을 위한 구체적 자산관리 및 단계적 철수 전략 마련 시급하다.
양춘승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는 “국내 화석연료금융은 한전 중심의 석탄화력에 과도하게 투자하며 이 구조가 고착화돼 있는 것이 핵심 문제”라며 “국민연금이 국제 흐름에 부합하는 실효성 있는 탈석탄 전략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글로벌 흐름과도 정면으로 배치 = 지난해 국민연금을 제외한 국내 금융기관의 신규 실행액또한 화석연료 부문이 32조8000억원인데 반해 신·재생에너지 부문은 4조8000억원으로 약 7배의 격차를 보였다. 2025년부터 화석연료 발전 수요는 감소하고 재생에너지 수요는 본격 확대될 것이라는 한국에너지경제연구원의 전망과 달리, 실제 투자 흐름은 여전히 과거의 관성을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이는 글로벌 흐름과도 정면으로 배치된다. 미국, 중국, EU 등 주요국들은 신·재생에너지 투자를 앞다퉈 확대했으며, 그 결과 재생에너지 신규 투자 규모는 약 2조330억달러로, 화석연료 투자(1조198억달러)를 1.7배 웃돌고 있다. 누적 투자 규모에서도 격차는 두드러진다. 국내 화석연료금융 잔액은 121조8000억원으로, 신·재생에너지금융(24조5000억원)의 5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국내 신·재생에너지 금융이 성장세마저 잃어가고 있다는 점이다. 2023년 기준, 신규 실행액은 전년 대비 11% 감소했다. 전체 규모를 보면 민간금융이 17조7000억원(72.2%), 공적금융이 6조8000억원(27.8%)으로, 민간이 주도하고 있지만 에너지 전환을 이끌기엔 절대적인 자금 규모가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신·재생에너지 투자가 부진한 원인으로, 전 정부의 비우호적인 재생에너지 정책 기조가 금융시장 전반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며 “2050년 이후에도 석탄 금융 잔존이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2040년 석탄발전소 전면 폐쇄’ 가능할까 = 한편, 이재명 정부가 추진하는 ‘2040년 석탄발전소 전면 폐쇄’ 목표와 금융기관의 현재 투자 구조가 충돌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현재 대부분의 금융기관 탈석탄 선언이 신규 석탄 사업 중단에만 국한돼 있으며, 기존 금융 계약의 만기 연장에 대한 제한은 없다”며 “이로 인해 2040년 이후에도 약 11조원 규모의 석탄금융이 잔존할 것으로 예상되고, 이는 정부의 에너지 전환 목표 달성을 가로막는 구조적 리스크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러한 한계를 해소하기 위해, 금융 부문의 탈화석연료 이행력을 높일 수 있는 제도적 기반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현행 탈석탄 정책은 신규 투자 제한에만 그쳐 기존 자산의 리스크 대응 한계가 있다. 기존 약정의 인출 및 만기 연장으로 석탄금융 잔존 규모는 추정치보다 클 수 있어, 단계적 철수 로드맵 및 자산관리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은 우선 금융기관마다 제각기 적용하고 있는 ‘석탄기업’ 분류 기준을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으로 정비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현재처럼 기준이 상이하면 동일 기업에 대한 금융 지원 여부가 엇갈려, 시장에 일관된 탈석탄 신호를 주는 데 한계가 발생한다는 점에서 개선이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국민연금의 석탄산업에 대한 투자 제한 기준 개선 마련과 신·재생에너지 금융의 성장을 위해 에너지 전환 가속화를 위한 정책적 자금 유입 및 민간시장 활성화도 필요하다.
김영호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이사장은 발간사를 통해 “새 정부가 ‘기후정부’를 표방한 만큼, 과감한 기후금융 정책 설계가 시급하다”며 “공적금융기관에 대한 금융배출량 목표관리제를 시행하고, 금융감독원이 기후리스크를 금융기관의 자산건전성 평가에 의무적으로 반영하는 등 자본의 흐름을 바꾸는 구체적인 정책 수단을 적극 고민해야 할 때”라고 제언했다.
공동으로 백서를 발간한 김현정 국회의원은 “이번 백서에서 신·재생에너지금융의 성장세가 기대만큼 뒷받침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은, 에너지 전환을 위한 금융의 흐름이 여전히 본격적인 전환 국면에 진입하지 못했음을 시사한다”며 “국회에서도 ESG, 기후위기 대응이 구호에만 머무르지 않도록 입법과 예산 등 실질적인 정책 수단을 통해 끝까지 책임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
김영숙 기자 ky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