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산업 정상화 : 인터뷰 |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
‘100원짜리를 50원으로 만드는 기적’ 죽거나 무너져야만 가능
불법 다단계 하도급과 단가 후려치기로 벼랑 끝에 몰려 … ‘임금 하한선’ 규제하는 ‘적정임금제’로 ‘모두의 제값 확보’부터
2021년 6월 광주학동 철거공사 붕괴사고, 2022년 1월 현대산업개발 신축아파트 붕괴사고 등은 우리사회에 커다란 충격을 줬다. 하지만 건설현장 위기 또는 비정상은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악화 중이다. 건설경기 침체로 2024년 취업자는 전년 대비 약 5만명 감소했으나, 임금체불액은 417억원 증가했고 건설업의 사고사망만인율(노동자 1만명당 산업재해 사망사고자 수)은 0.43명으로 전체 산업 평균의 4배다.
건설노동자의 아들로서 30여년 간 건설노동자 연구에 매진해 온 심규범 건설고용컨설팅 대표는 “감시자 역할을 했던 건설노조마저 약화되면서 불법 재하도급과 외국인 불법고용은 증가했고 도급질서도 혼탁해졌다”면서 “하도급 단계마다 반복적인 단가 후려치기를 거쳐 말단에서는 ‘50원으로 100원 짜리를 만드는 기적’이 벌어지고 있다”고 지난 4년을 진단했다.
심 대표는 “그 와중에 이윤을 남기려니 시방서와 안전수칙은 걸리지 않을 만큼만 시늉을 내고 말 잘 듣는 저임금 불법고용 외국인을 투입해 속도전을 벌이고 있다”며 “그 결과가 임금체불과 중간착취, 높은 사망재해율과 내국인 실업, 부실과 붕괴사고 등으로 표출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누군가 죽거나 어딘가 무너질 것이라는 불안감도 더 커졌다”고 강조했다.
11일 서울 서초구 한 카페에서 심 대표와 △건설산업 정상화를 위한 구조개혁 △청년층 진입과 숙련인력 육성 △건설안전보건 강화 △건설일용노동자 임금체불 방지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눴다.
●이재명정부는 건설현장의 체불 산재 불법하도급 불법고용 등에 대한 근본적 해법을 찾고 있다. 가장 중요하고 시급한 핵심 대책은 무엇인가.
모든 폐해의 근원에는 ‘비정상적인 돈 문제’가 있다. 먼저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철칙을 인정해야 한다. 100원 짜리를 50원으로 만들었다면, 나머지 비용은 목숨이나 붕괴 그리고 체불이나 실업 등으로 되돌아오고 지속 불가능하다. 건설현장 정상화의 핵심이자 출발점은 ‘제값’ 확보인데 약자인 노동자도 제 임금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임금 하한선을 규제하는 ‘적정임금제’다. 이는 미국 연방 차원에서의 ‘프리베일링 웨이지(Prevailing Wage)’ 제도를 벤치마킹한 것으로서 1931년에서 시행된 이래 90년 넘은 경험으로부터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다. 동일임금 지급에 따른 내국인 우선 고용, 기술력 우수업체의 적정공사비 확보, 임금체불 억제, 재하도급 억제, 재해건수 50%와 사망사고 15% 감소, 장기적 생애주기비용(LCC) 절감 등이다. 적정임금제는 임금 하한선 규제를 통해 아래로부터 모든 것을 정상화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사회적 실험’이기도 하다. 적정임금제 도입을 명시한 건설산업기본법 개정안(복기왕 더불어민주당 의원 대표발의)이 국회에 계류 중인데 이를 조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또한 서울시 서울주택도시공사(SH) 경기도 등처럼 지자체의 조례를 통한 도입도 병행해야 한다.
●국내에 적정임금제를 적용한 사례와 긍정적 성과가 있나.
2018~2019년 일자리위원회에서 20건의 시범사업을 실시했다. 서울시와 경기도 그리고 서울주택도시공사는 지자체의 조례에 반영해 발주공사에 적용하고 있다. 최초의 적용 사례는 올림픽대로-여의도 램프공사(2017년)인데 시중노임단가 이상을 지급하자 고숙련 내국인을 우선적으로 투입했고 포괄임금제가 금지돼 최초로 주휴수당이 지급됐다. 돈내기(물량단위 성과급)를 안했는데도 속도는 더 빨라져 적정임금제의 성공 가능성을 보여줬다. 2023년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발주한 적정임금제 공사와 일반공사를 2건씩 비교 분석했는데 내국인 투입비율 증가, 1억원 당 노동투입량의 감소, 1인당 노동생산성 증가 등의 성과를 보였다. 현재 진행 중인 SH 현장에서 물량단위 성과급제 대신 8시간 일급제가 정착되면서 노동강도가 완화되고 내국인 고용비율이 70%로 타 현장보다 현저히 높다. 시중노임단가 이상의 높은 임금과 주휴수당의 추가 지급으로 내국인 및 외국인 모두에게 선호도가 높다. 젊은 사람도 상대적으로 많다. 작업속도 저하에 대해 우려했으나 숙련인력의 확보, 기능수준별 작업팀 구성, 고용 연속성 제고를 통한 충성심 및 책임감 고취 등을 통해 품질, 안전, 작업속도, 내국인 일자리 등을 모두 확보해 건설현장 정상화의 가능성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공사비 삭감의 가장 큰 원인으로 ‘최저가낙찰제’를 지목한다.
최저가낙찰제는 국내·외를 막론하고 가장 일반적인 낙찰자 선정방식으로 유사한 물건이라면 가장 낮은 가격을 선택하는 것이다. 하지만 시장에 맡길 경우 과도하게 공사비를 삭감하는 단점이 있다. 선진국에서는 안전장치로 ‘임금 하한선 규제’를 둔다. 통상 건설원가로서 재료비 노무비 경비를 꼽는데 가장 취약하고 후려치기 쉬운 것이 노무비다. 노무비는 임금과 노동량의 곱으로 결정되는데 약점을 지닌 비합법 외국인의 임금을 삭감하면 저가수주가 가능하다. 불법 하도급단계가 길수록 비합법 외국인이 많을수록 임금과 공사비는 더욱 줄어든다. 하지만 임금 하한선을 규제하는 적정임금제를 적용하면 비합법 외국인이 많더라도 임금을 삭감해 입찰가를 낮추려는 가격경쟁이 불가능하다. 즉 적정임금제와 결합되면 최저가낙찰제의 단점을 치유할 수 있다.
●적정임금제로 공사비가 더 느는 것 아닌가.
그렇지 않다. 낙찰률이 100%를 넘을 수는 없기 때문이다. 건설생산물은 수명이 길어 초기 건축비가 20%, 유지관리비가 80%에 달한다. 적정임금제는 불합리한 입찰가 삭감을 막고 우수한 건설업체가 숙련인력을 투입해 견실시공을 하게 한다. 이에 유지관리비가 크게 줄어 전체적인 생애주기비용(LCC)가 절감되고 나아가 부실·붕괴 등을 막아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킬 수 있다. 이는 미국의 프리베이링 웨이지 운영경험에서도 입증된 바 있다.
●적정임금제를 도입하려면 어느 한 부처가 담당하기 어려워 보인다.
건설공사에 대한 적용 의무화와 감독은 국토교통부, 적정임금의 조사·산정은 고용노동부, 적정임금제를 반영한 입낙찰제도 개선은 기획재정부 행정안전부 등과 맞물려 있다. 따라서 원활한 정착을 위해서 범부처 차원의 논의기구가 필요하다. 예컨대 대통령 직속으로 가칭 ‘건설일자리특별위원회’를 설치해 운영하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건설산업의 미래가 고령화로 불투명하다. 청년층의 진입과 숙련인력 육성을 촉진할 수 있는 대책을 제시하면.
미래에도 지속가능하려면 ‘사람’의 확보가 필수인데 ‘직업전망’의 제시가 관건이다. 직업전망이란 경력이 쌓이면 이르게 되는 직위와 받게 될 소득을 의미한다. 비정규직인 건설노동자의 경우 기업 내 직무사다리와 무관하므로 국가의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2021년 5월에 ‘건설기능등급제’가 시행돼 건설기능인에게 등급은 부여됐지만 등급보유자에 대한 활용방안이 없어 ‘유명무실’한 상태다. 또한 독일의 마이스터에 비견되는 건설기능인의 ‘숙련’을 체계적으로 활용할 수 없어 품질과 안전 제고의 한계에 봉착해 있다. 조속히 ‘활용방안의 법제화’를 통해 직업전망을 제시하고 체계적으로 숙련을 활용해야 한다. △전문건설공사 현장대리인 배치기준과 건설업체 설립요건에 선택적 반영 △핵심 기능인을 필수인력으로서 보유 △건설업체의 시공능력평가요소에 반영 △향후 등급에 상응하는 임금 차등화 등을 제도화해야 한다.
●독일은 직업학교에서 숙련인력을 육성한다. 우리의 특성화고를 활용할 수 없나.
청년층 진입 촉진과 숙련인력 육성 측면에서 가장 안타까운 것이 3년의 시간과 젊음을 확보한 특성화고를 놓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미국 Z세대가 대학에 진학하는 대신 건설현장의 기능인으로 진입하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월스트리트 저널의 기사가 있었다.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직업으로서 건설기능인의 고용안정도가 높아졌다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미국 청년층의 달라진 인식을 확인한 것인데 본질적으로 우리도 다르지 않다. 다만 명확한 직업전망의 제시가 전제다. 그래서 기능등급제 활용방안의 법제화가 중요하다. 직업전망을 제시해 건설업 진입 의지를 높이고 1학년부터 현장과 연계해 3년간 ‘학교의 이론교육+훈련센터의 실기교육+현장의 실습교육’ 등을 체계적으로 연계 실시해야 한다.
●건설노동자는 기업 밖의 비정규직인데 어떻게 숙련인력을 육성할 수 있나.
비정규직이므로 개별 기업에서는 관심이 없고 정부가 직접 나서기에는 역부족이다. 하지만 초기업단위의 건설노동자 전담조직을 활용한다면 가능하다. 고용부 산하기관인 건설근로자공제회는 1998년부터 퇴직공제제도를 운영하면서 550만명에 이르는 건설기능인의 정보를 축적하고 있다. 이를 활용해 건설기능인의 수급 전망, 교육훈련 기본계획 수립(특성화고 포함), 전국의 교육훈련기관에서 교육훈련 실시 등을 할 수 있다. 또한 건설분야 특성화고와 건설업체를 연계하는 플랫폼 역할도 수행할 수 있다. 필요한 재원은 고용보험기금을 활용하면 된다.
●산재 사고사망자의 절반 정도가 건설업에서 발생한다. ‘죽지 않고 다치지 않고 일할 수 있는 건설현장’을 만들 수 없나.
‘과도한 공사비 삭감’이 산재예방 노력을 무력화한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건설현장에서 안전은 시공과 따로 있지 않다. 100원 짜리를 50원에 수주한 전문건설업체 소장이 “우리 현장에서 안전은 사치”라고 했다. 핑계이기도 하지만 절박한 비명이기도 하다. 삭감된 돈에 맞추느라 빨리하다보면 안전은 거추장스러워진다. 100원을 모두 준다면 안전수칙을 지킬 수 있느냐고 물으니 “못할게 뭐가 있겠냐”고 했다. 우리가 그간 해왔던 대책 중에 100원 짜리 공사를 100원에 시공하도록 하는 노력은 없었다. 50원 밖에 못 받는 구조는 놔두고 다른 노력을 추가해봐야 모두 겉돌고 무력화된다. 그래서 적정임금제가 다시 한번 중요하다. ‘시공을 정상화’하면 ‘안전도 정상화’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위에 산재예방 노력을 기울이면 그만큼의 성과를 낼 수 있다.
●폭염이 심각해지고 있다. 작업중지권이 마련됐으나 매년 건설현장에서 온열질환으로 사망자가 발생한다.
폭염이 심각한 경우 안전을 지키려면 작업을 중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서 작업중지권이 마련됐으나 실제로 활용된 사례는 많지 않다. 사용자의 눈치를 보느라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겠지만 작업이 중단될 경우 일당을 받지 못할 것을 우려해 작업을 강행하기도 한다. 현장 노동자들은 “폭염도 무섭지만 빈손으로 집에 가는 건 더 싫다”고 말한다. 따라서 작업이 중단된 경우 임금의 전부 또는 일부를 지급하는 가칭 ‘작업중단수당’의 지급이 필요하다.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을 위협하는 요인을 폭염으로 시작하되 작업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악천후와 전염병 등으로 폭넓게 확대해야 한다. 서울시는 올해 2월부터 이상기후로 공사가 중단될 경우 하루 최대 4시간분의 임금을 보전하는 ‘극한기후 안심수당’ 제도를 도입했다. 당장은 공공발주기관이 작업중단수당을 지급하되, 민간공사에도 확대 적용할 수 있도록 고용보험의 고용안정사업을 신설하는 방안이 필요하다.
●소규모 현장에 산재가 집중되고 있다.
70% 이상의 산재가 소규모 현장에서 발생하는데 지금과 같은 ‘현장단위 접근’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현장 수는 많고 공사기간은 짧으며 안전관리자는 없다. 산업안전보건관리비도 적아 안전대 안전화 등은 비싸 공급되지 않는데 추락사고는 많다. 배치 전 건강검진도 없어 유해위험요소를 피하지 못한다. 따라서 건설노동자들의 이동성을 고려해 ‘초기업단위 접근’을 병행해야 한다. 예컨대 기초안전보건교육과 유사하게 기초공통보호구(안전모 안전화 안전대)의 주기적 공급. 배치 전 건강검진(일반검진 결합)의 연 1회 실시, 재해예방기술지도와 산업안전보건 컨설팅 지원 등의 초기업단위 초기업단위 공급 등이다. 필요한 재원은 개별 공사비에 포함된 산업안전보건관리비 중 일부를 갹출해 가칭 ‘건설안전보건기금’을 조성하면 된다.
●현장에서는 과도한 노동강도를 유발하는 중량의 거푸집 ‘알폼’(알루미늄합금으로 만든 거푸집)에 대한 불만이 많다.
대규모 알폼 거푸집은 40kg에 달하지만 작업이 단순하고 표면이 매끈하며 속도가 빠르다는 이유로 대부분의 아파트공사 지상층에서 쓰이고 있다. 하지만 노동강도가 강해 “알폼을 2년 하면 골병이 든다”고 한다. 고령자가 많은 내국인이 아파트 지상층 공사에서 못 버티는 이유이기도 하다. K-문화선진국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에서 꼭 이걸 써야 하는지 재고해야 한다. 작업속도가 중요하지만 일하는 사람의 안전과 내국인의 일자리보다 중요할 수는 없다. 기존의 알폼을 반으로 쪼개거나 보다 가벼운 유로폼 등으로 거푸집을 경량화해야 한다. 민간공사에서 사용하길 바랄 수는 없다. 하지만 노동자의 안전, 내국인 일자리 확보, 청년층 진입 여건 조성 등의 가치를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공공공사의 특수계약조건에 명시해 시행할 수 있을 것이다.
●공공공사 현장에서 임금체불을 막으려는 노력이 역설적으로 건설일용노동자의 취업과 당일 임금 수령을 어렵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공공공사에서 월 1회 공사대금을 지급하는 전자시스템을 통해 건설사업자가 임금을 직접 지급하도록 규정한 국토부 고시의 시행으로 자생적인 임금 대위변제를 금지되면서 벌어진 일이다. 임금 대위변제란 직업소개소가 당일 임금을 선 지급하고 건설업체로부터 후 수령하는 관행이다. 임금체불을 막겠다는 취지는 타당하나 건설노동자 중에는 월 1회 임금 지급이 부적합한 일용노동자도 존재한다는 사실을 놓친 듯하다. 일용노동자의 임금은 고용부 지침대로 고용관계가 종료되는 당일 지급해야 한다. 많은 일용노동자들은 신용도가 낮고 여윳돈이 없어 당일 임금수령을 절박하게 요구한다. 하지만 건설업체가 당일 임금을 직접 지급하려면 행정적 부담이 너무 커서 대부분은 금지된 임금 대위변제를 편법적으로 활용하고 있다. 결국 위법이 만연됐으나 묵인하고 있는 상태다. 사실상 임금 대위변제를 통해 일용노동자의 임금을 직업소개소가 선 지급함으로써 체불 위험이 건설업체에서 직업소개소로 이전된 것이다. 국가가 돌봐야 할 건설일용노동자의 원활한 취업과 당일 임금수령을 위해서는 자생적 임금 대위변제를 제도화하는 게 좋다. 건설업체는 건설일용노동자의 동의를 전제로 직업소개소와 근로자 당일 임금 위탁지급 계약을 체결하고, 선불노무비 지급보험증권을 신설해 제출하며, 정부는 보증보험료를 공사원가에 반영하도록 한다. 이때 건설업체와 직업소개소에 대한 관리와 책임을 강화해야 한다.
한남진 기자 njhan@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