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문로
정유라의 중졸, 조 민의 고졸, 김건희의 대졸
정유라는 2015학년도 이화여대 체육특기자(승마) 수시 전형 서류평가에서 9등이었다. 합격권은 6위권이었다고 한다. 그런데 최종 면접에서 최고점을 받고 합격했다. 최순실의 권력 앞에 이화여대는 한껏 몸을 낮췄다. 정유라 부정입학 논란이 일자 교육부는 전광석화로 움직였다. 특별감사를 하고선 2016년 11월 24일 정유라를 고발했다. 이대 학생들도 들고일어났다. 결국 대학 법인은 같은 해 12월 2일 체육과학부 2학년 정유라의 퇴학·입학 취소를 결의했다.
당시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도 날렵했다. 2016년 12월 5일 특정감사를 통해 정유라의 청담고 졸업장을 취소했다. 서울교육청은 “출결 상황과 성적 등 생활기록부 기재사항을 수정하고, 수상 자격을 박탈하며, 수상 내용도 삭제한다”고 밝혔다. 그러고선 ‘교육 농단’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정유라는 사건 발생 석 달 만에 최종 학력이 중졸로 바뀌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소추 판결 직전, 전국적으로 ‘촛불집회’가 정점이던 시기였다.
정유라 '속전속결'…조 민 '눈치 보기'
조 민의 스펙은 화려했다. 고려대 환경생태공학부와 부산대 의학전문대학원 입학 과정의 의혹은 일곱 가지였다. ①서울대 공익인권법센터 인턴 확인서, ②동양대 표창장, ③동양대 어학원 교육원 보조연구원 활동, ④부산 아쿠아팰리스호텔 인턴 확인서, ⑤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인턴 확인서, ⑥공주대 생명공학연구소 인턴 확인서, ⑦단국대 의과학연구소 제1 저자 등재와 인턴 확인서다.
서울 강남에 살던 조 민은 축지법을 배운 듯하다. 전국을 날아다녔다. 입학원서 상 서울 고교생이 부산·공주·영주를 넘나들었다. 고려대 입학처와 부산대 의전원은 의심하지 않았다. 최소한의 확인과 검증을 했더라도 조 민은 망신만 당했을 것이다. 대학입시의 치명적인 결함이었다. 2022년 1월 27일, 대법원은 조 민의 운명을 갈랐다. 조 국 전 법무부 장관의 배우자이자 조 민의 모친인 정경심씨의 ‘자녀 비리 입시’에 대해 징역 4년의 원심을 확정했다.
고려대는 몸을 사렸다. 1심 때는 2심, 2심 때는 3심 결과에 따라 법과 원칙대로 처리하겠다고 하더니 문재인정부의 눈치를 봤다. 그러다가 윤석열정부로 정권이 바뀐 제20대 대선(2022년 3월 9일) 한달 후인 2022년 4월 7일에야 입장을 냈다. ‘조 민 입학 허가 취소’였다. 고려대는 같은 해 2월 25일 입학취소 처분을 결정하고도 대선 결과를 지켜봤다.
여기서 조 민과 정유라의 차이를 볼 수 있다. 정유라 사건 때는 촛불정국으로 박근혜정부가 끝자락이었다. 그러자 교육부와 서울시교육청은 시류에 올라탔고 이화여대생의 반발도 거셌다. 반면 조 민 사건 때는 코로나19 상황이어서 고려대생의 움직임이 약했다. 대선이 박빙이자 교육부는 양쪽 눈치를 봤고, 조희연 교육감은 진보 인사의 치부를 눈감았다. 그 차이가 정유라는 신속히 중졸이 됐고, 조민은 천천히 고졸이 된 결정적인 이유다.
김건희씨는 어떤가. 결국 대졸이 됐다. 석사학위 논문 취소에 4년이 걸렸다. 김씨의 표절 의혹은 윤석열 후보의 제20대 대통령 선거 출마 선언 직후 불거졌다. 2021년 9월 숙명여대 졸업생 모임인 민주동문회가 표절을 제보했다. 숙명여대는 2022년 2월 연구진실성위원회를 구성해 예비조사, 같은 해 12월 본조사에 착수했다. 규정상 본조사는 예비조사 승인 뒤 30일 안에 시작해 90일 안에 마쳐야 한다. 하지만 대학 측은 윤석열 대통령 임기 내내 침묵하다가 탄핵절차가 본격화한 2025년 2월에야 ‘표절’ 결론을 내렸다.
김건희 논문, 권력에 비굴한 지성의 자화상
국민대도 비겁했다. 그간 김씨의 국민대 박사학위 논문 표절논란이 끊이지 않았는데 이런저런 이유로 어물쩍 넘겼다. 20대 대선 당시 국민대에 자료 제출을 요구했던 교육부 관료는 윤석열정부 들어 밀려났다. 국민대는 숙명여대가 김씨의 석사학위를 취소한 최근에야 입장을 냈다. “자격 요건이 안되니 박사학위는 자동 취소된다.” 이게 대한민국 지성의 현주소다.
권력 눈치보기에 급급한 대학들은 처절하게 반성해야 한다. 정유라의 중졸, 조 민의 고졸, 김건희의 대졸 사건은 권력 앞에서 정도를 포기하는 대학과 교수사회에 묻는다. 대학의 규범은 무엇이고 지성의 규범은 무엇인가. 맹자는 “규범 없이는 네모나 원을 만들 수 없다(不以規矩 不能成方圓)”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