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상 회계기준원장 “삼성생명은 회계 블랙홀”

2025-07-18 13:00:29 게재

지분법·유배당 논란

수면 위로 떠오르나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이 국내에서 가장 규모가 큰 생명보험사인 삼성생명을 겨냥해 ‘회계 블랙홀’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삼성생명은) 회계의 블랙홀”이라며 “블랙홀은 주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심지어 빛조차 휘게 만든다”고 말했다.

이한상 한국회계기준원장이 ‘생명보험사의 관계사 주식 회계처리’ 포럼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 한국회계기준원 제공

이 원장은 지난 16일 대한상공회의소 의원회의실에서 열린 회계기준원 개최 ‘생명보험사의 관계사 주식 회계처리’ 포럼 현장에서 참석자들에게 이같이 주장했다. 회계기준원이 특정 기업 회계를 놓고 학술행사를 열거나 수장이 강도 높은 비판을 한 것은 이례적이다. 회계기준원은 기업의 회계처리 기준 및 지속가능성 기준을 제정하는 독립된 민간기구(사단법인)이다. 상장기업이나 금융회사의 국제회계기준은 물론 비상장 일반기업, 중소기업, 비영리법인 회계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이 원장은 “이 회사(삼성생명) 근처에 가면 멀쩡한 회계 기준도 휘고 감사인이나 전문가들도 헛소리를 하기 시작한다”며 “이 회사 회계를 더 이상 회사에만 맡겨 놓을 수 없다는 강한 확신이 생겼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회계 제도를 훼손하는 것은 자본주의의 적”이라며 “투자자와 공익을 위해 더 이상 용인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삼성생명을 비롯한 국내 생명보험사들은 1990년대 초·중반까지 유배당보험상품을 판매했다. 유배당상품은 계약자가 납부한 보험료를 보험사가 운용해 수익이 나면 보험금 외에 추가 배당을 하는 상품이다. 삼성생명은 이렇게 거둬들인 보험료로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주식을 사들였고, 현재의 지배구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삼성생명과 같이 상장된 생명보험사들은 주주 외에 계약자들 지분까지 갖고 있는 셈이다. 회계상 ‘계약자지분’으로 분류된 이 항목은 ‘보험 가입자들의 숨겨진 돈’으로 불린다.

계약자가 낸 보험료로 회사가 성장했지만 정작 계약자들은 배당금도 못 받고 주주 대우도 받지 못하고 있다. 경제개혁연구소는 삼성생명의 계약자몫 배당금이 7조원을 넘어서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과거 일부 계약자가 배당금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삼성생명 손을 들어줬다. 이후 생명보험사 수익이 늘어날 때마다 이익 일부를 계약자에게 배당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다시금 논쟁이 뜨거워진 것은 삼성생명 구조의 변화 때문이다. 삼성생명은 지난 3월 금융위원회 승인을 받아 삼성화재를 자회사로 편입했다. 애초 삼성생명은 삼성화재 지분 14.98%를 보유했는데, 삼성화재가 주주환원을 위해 자사주를 소각하면 지분이 15.43%로 늘어난다.

현재 회계제도상 자회사 지분율이 20%를 넘기거나 미달하더라도 ‘유의적 영향력’을 행사한다면 지분법 적용대상이 된다. 이럴 경우 유배당상품 계약자들에게 지급될 배당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 원장은 “유배당계약자 보험료로 취득한 삼성전자 주식을 계약자지분조정으로 너무 오래 보유하고 있었다”면서 “삼성생명이 삼성전자 주식을 매각하면 (삼성생명) 주가는 곧바로 2~3배가 될 것이고 그것이 밸류업”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유배당보험상품 계약자들의 보험료로 산 삼성전자와 삼성화재 주식에 대해 계약자지분조정을 유지하는 공수표를 날리고 있다”며 “기괴한 회계를 주장할 경우, 정상적인 국가의 금융당국이라면 철퇴를 내릴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성생명은 구체적 대응을 하지 않고 있다. 삼성생명은 현재 2분기 보고서를 작성중이다. 금융당국은 삼성생명 2분기 보고서를 본 뒤 입장을 정리하겠다는 계획이다.

이날 토론회에 참석한 진봉재 삼일회계법인 부대표는 “근본적인 변화가 없었다면 (기존대로) 회계처리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회계기준원은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11일까지 회계분야 교수 695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였다. 이중 108명이 응답한 결과를 보면 삼성생명이 삼성화재 지분을 지분법으로 처리하는 게 적절하다는 의견이 다수(65명)였다. 현행방식을 유지해야 한다는 의견은 17명, 상황에 따라 필요한 방식이 달라질 수 있다는 답은 23명이었다.

현재와 같은 논란에 대해 공론화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55명이었다. 금융당국이 기준을 제시할 필요가 있다에는 33명이, 간섭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견에는 17명이 각각 답했다.

한편 스위스 국제경영개발대학원(IMD)는 매년 60여개국의 회계투명성 순위를 조사하고 있다. 한국은 2024년 41위를 기록했지만 올해는 69개국 중 60위로 추락했다.

오승완 기자 osw@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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