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특검, ‘채상병 수사 개입 의혹’ 수사 탄력
대통령실서 수사기록 회수 지시 진술 확보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 자택 압수수색
‘VIP 격노’ 키맨 김계환 재소환에도 부인
해병대원 순직사건 관련 의혹을 수사하는 순직해병특검팀(이명현 특별검사)이 대통령실 비서관이 ‘채상병 수사기록 회수 지시’했다는 진술을 확보해 수사개입 의혹 수사가 탄력을 받을 전망이다. 특검팀은 순직 채상병 지휘관이었던 임성근 전 해병대 1사단장의 자택을 압수수색하는 등 불법 구명로비 등 수사에도 속도를 낼 전망이다.
18일 법조계에 따르면 해병특검팀은 이날 오전 수사관들을 보내 불법 구명로비,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는 임 전 사단장 자택에 대해 압수수색을 진행했다. 이번 압수수색 대상에는 임 전 사단장 배우자도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검팀은 임 전 사단장 배우자가 대신해서 구명활동을 벌였을 가능성도 수사 중이다.
임 전 사단장은 2023년 7월 19일 경북 예천군 수해 현장에서 순직한 채상병의 부대장으로, 구명조끼 등 안전 장비를 지급하지 않고 무리한 수색 작전을 지시했다는 업무상 과실치사 등 혐의를 받고 있다.
그는 해병대 수사단 초동조사에서 혐의자로 적시됐다가 ‘VIP 격노’로 불거진 수사 외압 논란 이후 혐의자에서 제외됐는데, 윤석열 전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가 영향력을 행사한 것 아니냐는 구명로비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임 전 사단장은 올해 2월 예편했으며, 지난 2일 피의자 신분으로 특검에 출석해 조사를 받은 바 있다.
특검팀은 채상병 수사개입 의혹에 대한 수사에도 탄력을 받고 있다.
특검팀은 지난 16일 의혹이 제기된 당시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박 모 총경의 참고인 조사에서 “이시원 전 대통령실 공직기강비서관이 이첩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박 총경은 2023년 7월 31일 이른바 ‘VIP 격노설’ 이후 박정훈 해병대 수사단장(대령)이 경북경찰청에 이첩한 수사 기록을 국방부가 회수하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그는 대통령실과 경찰청 국가수사본부(국수본) 사이를 연결하는 역할을 한 것으로 지목된 인물이다.
박 총경은 2023년 8월 2일 이 모 전 국수본 강력범죄수사과장(경무관)에게 전화해 유재은 전 국방부 법무관리관의 연락처를 전달한 의혹을 받는다. 이 전 과장도 특검에 출석해 박 총경이 이 전 비서관 이름을 언급하며 기록 반환을 검토하라고 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 10일 이 전 비서관을 압수수색한 특검은 조만간 그를 불러 대통령실이 수사 기록 회수에 어떤 역할을 했는지, 이 과정에서 윤석열 전 대통령의 구체적인 지시가 있었는지 등을 조사할 예정이다.
특검팀은 17일 ‘VIP 격노설’의 실체를 규명할 ‘키맨’으로 꼽히는 김계환 전 해병대사령관을 다시 불러 조사했다. 지난 7일 처음 특검의 소환을 받고 12시간 조사를 받은 데 이어 이번이 두 번째 조사였다.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의 피의자 신분이다.
김 전 사령관은 2023년 7~8월 채상병 순직 사건 당시 초동 조사한 박정훈 대령에게 윗선의 외압이 가해지는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혹을 받는 인사다.
김 전 사령관은 그간 조사 및 법정 증언 등에서 ‘VIP 격노설’을 부인해왔지만, 격노설이 처음 제기된 대통령 주재 회의에 참석했던 이들이 잇따라 ‘윤 전 대통령이 화내는 것을 목격했다’는 진술을 내놓는 가운데 김 전 사령관이 이전과 달리 진술할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 나왔다.
그러나 김 전 사령관은 이날 조사에서도 ‘VIP 격노설’과 관련해서는 들은 바 없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특검은 이날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로부터 이첩받은 모해위증 등의 혐의도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특검이 김 전 사령관에 대해 구속영장 청구를 검토할 가능성도 거론된다.
특검은 지난 15일 처음 소환한 이충면 전 국가안보실 외교비서관도 이날 오전 10시쯤 참고인 신분으로 추가로 불러 조사했다.
이 전 비서관은 VIP 격노설이 나온 대통령 주재 외교안보 수석비서관회의에 참석한 인물 중 한 명으로, 첫 특검 조사에서 윤 전 대통령이 임기훈 당시 국방비서관의 보고를 받고 화를 내는 모습을 목격했다는 취지의 진술을 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회의에 참석한 참석자는 윤 전 대통령을 포함해 총 7명으로 알려졌는데, 현재까지 특검 조사를 받은 이 전 비서관과 김태효 전 국가안보실 1차장, 왕윤종 전 경제안보비서관 등 3명은 모두 윤 전 대통령이 화를 내는 모습을 목격했다고 특검에 진술했다.
그때 회의에서 윤 전 대통령이 사단장도 이첩 대상이라는 보고를 듣고 돌연 화를 냈으며, 임기훈 전 비서관 등 일부 인사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나가라고 했다는 진술도 특검은 최근 추가로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민영 특검보는 17일 브리핑에서 “2023년 7월 31일 회의가 특검 수사의 중요한 국면이고, 그때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있었는지 이번 주에 집중적으로 많이 조사했다”며 “당사자들에게서 진술이 새로 많이 나와 이 전 비서관에게 그 내용을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 특검팀은 18일 오전부터 ‘사단장 불법 구명로비’ 의혹과 관련해 이철규 국민의힘 의원에 대한 압수수색을 진행 중이다.
김선일 기자 sikim@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