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사법족쇄 벗은 이재용 회장
윤석열 중앙지검장으로 수사지휘
검찰 무리한 수사기소 비판 제기
‘위기의 삼성’ 해법 찾을지 관심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7일 대법원에서 최종 무죄 판결을 확정받으면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이후 이어진 10년의 사법족쇄를 벗었다.
대법원 3부(주심 오석준 대법관)는 이날 부당합병·회계부정 사건 상고심 선고기일을 열고 무죄를 확정했다. 이 회장의 안정적 경영권 승계를 위해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과정에서 각종 부정행위가 있었다는 의혹을 모두 인정하지 않았다.
이 회장은 2015년 이뤄진 제일모직·삼성물산 합병 과정에서 삼성물산 주가는 낮추고 제일모직 주가는 띄운 혐의로 2020년 9월 기소됐다.
검찰은 당시 제일모직 1주를 삼성물산 약 3주와 맞바꾸는 합병비율(1:0.35)로 합병이 이뤄진 것을 두고 이 회장이 삼성물산 소유의 삼성전자 지분을 확보해 그룹 지배력을 키우려 했다고 의심했다. 불법 합병을 은폐하기 위해 제일모직 자회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에 4조5000억원대 분식회계 혐의도 공소사실에 포함시켰다.
3년 2개월 만에 나온 1심 결론은 ‘19개 혐의 전부 무죄’였다. 이후 서울행정법원이 지난해 8월 삼성바이오의 회계처리에 문제가 있다는 판단을 내놔 분식회계 혐의 입증이 2심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그러나 올해 2월 2심도 이 회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특히 법원은 1심과 마찬가지로 검찰이 제출한 주요 증거에 대해 ‘기본’인 증거능력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다.
◆윤석열·한동훈 지휘, 이복현 주도 = 검찰이 이 회장 사건을 기소할 때부터 논란이 적지 않았다.
2016년 말 참여연대의 문제제기로 촉발된 이 회장 사건은 박근혜정부 때 박영수 국정농단 특별검사팀의 수사를 거치며 본격화됐다. 2018년 11월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 등의 고발로 핵심 수사 대상이 됐다.
이 건은 이복현 전 금융감독원장이 당시 서울중앙지검 경제범죄형사부 부장검사로 수사를 이끌었다. 한동훈 국민의힘 전 대표가 해당 부서를 관할하는 3차장검사, 윤석열 전 대통령이 총책임자인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수사를 지휘했다.
검찰은 수사 과정에서 2020년 6월 이 회장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법원에서 기각됐다. 이후 검찰은 2020년 9월 “사안의 중대성과 국민적 의혹 해소 필요성” 등을 이유로 이 회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1심에서 이 회장의 19개 혐의가 모두 무죄로 판단되자, 검찰은 공소장을 일부 변경해 혐의를 보강했지만 2심 역시 모두 무죄로 봤다. 항소심까지 무죄가 선고되자 이복현 전 원장은 “공소 제기를 담당했던 사람으로서 국민께 사과드린다”며 “기소 결정을 하고 그 논리와 근거를 작성한 입장에서 법원을 설득할 만큼 충분히 준비되지 못했다”고 말했다.
잇따른 무죄에 검찰 주변에선 대법원 상고를 포기해야 한다는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올해 2월 검찰은 끝내 상고했고, 다시 한번 체면을 구기게 됐다.
법조계에선 이날 선고를 계기로 검찰의 ‘기계적 상고’에 제동을 걸 장치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검찰청은 상고권의 적정한 행사를 위해 2018년부터 법학자와 변호사 등 외부위원으로 구성된 상고심의위를 운영하고 있지만 실효성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상고심의위 결정에 구속력이 없어 검사가 따를 필요도 없기 때문이다.
◆수사기관이 기업발목 잡는 일 없어야 = 이 회장 판결에 재계는 반기는 분위기인 반면, 시민단체에서는 자본시장 공정성을 훼손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삼성이 사법 리스크로 인한 경영상의 불확실성에서 벗어나 적극적인 투자 확대와 일자리 창출로 우리 경제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밝혔다.
반면 참여연대는 “삼성 불법 합병은 대기업 재벌 총수 일가의 경영권 승계를 위해 국민연금과 세금 등 전 국민의 수천억 원 피해를 제물로 삼은 악질적인 범죄행위”라며 “승계 목적에 대해 앞뒤가 다른 판례를 내놓으면서까지 사회정의를 훼손하는 수치스러운 결정을 내린 사법부를 강력히 규탄한다”라고 밝혔다.
이날 삼성전자 주가가 10개월 만에 6만6700원대에 거래를 마쳤다. 계열사 주가도 일제히 오르며 새로운 삼성에 대한 시장의 기대감을 반영했다.
이 회장 사건의 결론을 계기로 수사기관이 기업의 발목을 잡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재계의 한 인사는 “사회와 정치가 기업이 마음 놓고 사업을 펼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법원의 무죄 선고에 따라 등기이사 복귀, 컨트롤타워 재건, 반도체 부문에서 집중적인 투자와 거래처 확보 등 앞으로 이 회장의 경영 활동에 관심이 쏠린다.
이 회장은 그간 100여 차례 재판에 출석했고, 이에 앞서 2017년 2월에는 박근혜정부에 뇌물을 제공한 혐의로 구속 기소돼 징역 2년 6개월 실형을 선고받고, 560일에 달하는 수감생활을 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전자는 부침을 겪었다. 특히 반도체 사업부인 DS(디바이스솔루션)의 부진이 지속됐다. 증권가에 따르면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과 시스템설계(LSI)를 포함한 비메모리 부문에서 적자가 이어졌다. 고부가 제품인 고대역폭메모리(HBM)도 실적을 내지 못했다.
서원호 기자 os@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