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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는 ‘평화적 헌정교체’의 시간

2025-07-21 13:00:02 게재

이재명 대통령이 제헌절을 계기로 개헌 문제를 언급하면서 헌정체제 변화에 대한 기대가 조성되고 있다. 임기 초반의 대통령이 밝히기 어려운 개헌 의지를 취임 44일 만에 공론화하고 개헌 필요성에 정치권과 사회 전반이 호응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7년 민주화의 산물인 현행 헌법은 그 효용성을 다했다는 데는 대다수가 동의하고 있다. 대통령직선제를 골자로 한 1987년 헌법체제가 절차적 민주화에는 크게 기여한 점은 있지만 기본권 조항이나 대통령의 권한, 권력구조 등 여러 부분에서 단점과 한계를 보여와서다.

하지만 국가의 근간을 바꾸는 개헌이 간단할 수는 없다. ‘상처’와 ‘영광’으로 얼룩진 우리 헌정사가 그것을 말해준다. 헌정 수립 후 우리는 5번의 헌정교체와 5번의 정권교체를 겪었다. 헌정교체 5번 가운데 3번은 쿠데타(5.16, 유신, 12.12-5.17), 2번은 시민항쟁(4.19, 6.10)으로 실현됐다. 이 시기 헌정변화에 의한 권력교체가 있었을 뿐 실질적인 정권교체는 한 번도 없었다. 정권교체는 1987년체제에서야 김대중 이명박 문재인 윤석열 이재명 대통령에 의해 모두 평화적으로 이뤄졌다.

민주화운동사는 개헌 및 호헌 투쟁사

우리 헌정사에서 개헌 또는 호헌은 대부분 권력자의 권력유지나 강화 연장의 수단으로 행사됐다. 마찬가지로 민주화운동사 또한 개헌이나 호헌 등 헌정체제를 둘러싼 투쟁으로 점철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승만정권 때 4번의 개헌 시도가 있었다. 2번은 부결되고 2번은 실현됐다. 1950년 야권이 발의한 내각제 개헌안과 1951년 국무원이 발의한 대통령직선제 개헌안이 각각 부결됐다. 이승만정권은 1952년 대통령직선제(발췌개헌), 1954년 초대 대통령 중임제한 철폐(사사오입개헌)를 밀어붙여 재집권에 성공했다. 결국 4.19혁명으로 이승만 독재체제는 무너지고 헌정교체가 이루어졌다.

장면정권 시절 있었던 1번의 개헌은 격앙된 민심의 반영이자 민주화운동 최초의 개헌투쟁 성과였다. 1960년 10월 11일 4.19혁명 상이학생들이 민의원 본회의장을 점거했다. 반민주행위자 처단을 둘러싸고 여론이 악화한 가운데 일어난 이 사건은 반민자를 처벌할 소급입법의 근거를 규정한 4차 개헌을 가속화한 결정적 동력이 됐다.

5차 개헌은 5.16쿠데타 세력이 주도했다. 총칼로 헌정을 중단시키고 집권한 박정희정권은 이후에도 집권연장을 위해 2번 더 헌정을 유린하고 파괴했다. 3선개헌과 유신쿠데타다. 1969년 3선개헌 때는 학생과 야권을 중심으로 호헌투쟁이 거세게 일어났다. 1972년 수립된 유신체제는 처음부터 반대에 부딪쳐 개헌청원100만인서명운동 등 개헌 요구에 봉착했고, 이를 억압하기 위해 9차례나 긴급조치라는 강권을 발동했다.

이런 폭압하에서도 반유신운동이 확산되자 유신체제는 내부에서 균열을 일으켜 결국 10.26사건으로 스스로 무너졌다. 5.18민주화운동은 12.12군사반란과 5.17계엄확대조치 등 전두환 군부의 내란으로 헌정이 또다시 유린 파괴된 데 대한 항거였다.

전두환정권 시절 민주화운동이 대통령직선제 개헌투쟁으로 모아지면서 6월항쟁으로 폭발했고, 그 결과 탄생한 것이 지금의 헌정체제다. 현 체제도 여러차례 위기에 직면했다. 3당합당, DJP연합 등을 통한 내각제 개헌이 시도됐으나 내부 갈등과 국민 반감으로 좌절됐다.

박근혜정부 시절 촛불항쟁에는 사실상 헌정교체 수준의 개혁 요구가 담겨 있었다. 문재인 정부는 그 의미와 동력을 국가적으로 수용하지 못했다. 4년 중임제 개헌안을 발의했으나 야당 불참에 따른 투표불성립으로 무산됐다.

국민 원하는 개헌만이 평화적 헌정교체 이뤄

개헌을 둘러싼 정치권과 민주화운동의 파란만장한 과거사를 보면 헌정교체의 길이 그리 순탄할 것 같지는 않다. 12.3비상계엄을 통한 내란시도는 실패했다. ‘빛의 혁명’으로 나타난 시민의 민주역량과 5.18의 교훈을 상기한 계엄군의 행동 등을 보면 이제 권력의 강권에 의한 헌정교체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남는 것은 시민의 결집된 요구에 의한 개헌이다. 국민적 공감대만으로 부족하다. 정치권의 이해와 저항을 극복하려면 개헌 동력을 더 모을 필요가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국민 중심 개헌’을 말한다. 진정한 국민 중심, 국민이 간절히 원하는 개헌이어야 평화적 헌정교체를 이룰 수 있다.

신동호 현대사기록연구원 연구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