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화약세·고물가, 일본 정치 흔들다

2025-07-21 13:00:19 게재

실질임금 하락·외국 자본 유입에 불만…우경화 배경은 ‘내수 부진’

일본에서 급부상하고 있는 극우 정치세력의 배경에는 정치적 이념보다는 경제적 불만이 깊게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파이낸셜타임스(FT)의 레오 루이스(Leo Lewis)는 최근 기고문에서 “일본의 우경화는 엔화 약세에서 비롯된 생활고와 정체된 임금, 외국 자본 유입에 대한 반감이 결합된 결과”라고 진단했다.

▶관련기사 21면

FT는 특히 극우 정당인 참정당(Sanseito)의 부상에 주목했다. 참정당은 반이민, 반세계화 성향의 강경 메시지로 중산층 불만을 자극하며 존재감을 확대하고 있다. 기사에 따르면 “이번 선거는 통화 가치에 관한 것”이며, 엔/달러 환율이 149엔까지 떨어진 상황은 단순한 환율 문제가 아닌 “만성 질환과도 같은 경제적 병리 현상”이라는 것이다.

일본 경제의 구조적 문제는 엔화 약세로 더욱 부각된다. 원자재·에너지·식료품의 대외 의존도가 높은 일본 경제 특성상, 엔화 약세는 수입물가 상승을 불러오고, 이는 다시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러한 고물가 압력 속에서 실질임금은 5개월 연속 감소했고, 식료품 지출 비중을 나타내는 엥겔지수는 4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달러 기준 일본의 평균 소득은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고임금 노동자보다 낮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이터 통신에 따르면 이러한 구조적 취약성은 미국의 고율 관세라는 외부 충격 앞에서 더욱 선명하게 드러났다. 일본의 6월 수출은 전년 대비 0.5% 감소했고, 특히 미국향 수출은 11.4% 급감했다. 자동차 수출은 무려 26.7%나 감소해 주요 산업이 직격탄을 맞았다. 일본 수출기업들은 경쟁력을 유지하기 위해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관세 충격을 흡수하고 있지만, 이는 결국 기업 수익성과 고용 여력에 부담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이번 참의원 선거는 여당인 자민당과 공명당의 과반 확보 실패가 예측되며 정치적 불확실성을 더하고 있다. NHK 출구조사에 따르면 양당은 전체 248석 중 과반인 124석 확보에 실패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이시바 시게루 총리는 “관세 문제 해소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사임 가능성을 일축했다. FT는 이를 두고 “국정 운영에 대한 책임을 계속 지겠다”는 그의 발언이 자민당 내 사퇴 압박에도 불구하고 직을 유지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으로 해석된다고 전했다.

일본은 2022년부터 무역수지에서 지속적인 적자를 기록해왔으며, 상품·서비스 수지 기준으로는 만성적인 수입 초과 상태에 있다. 그럼에도 경상수지 흑자를 유지하고 있는 배경에는 해외 투자 수익이 있다. 일본 기업과 개인이 보유한 해외 자산에서 발생하는 이자·배당 수익이 경상수지의 버팀목이 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내수시장 기반이 취약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일본 내 소비는 고물가와 임금 정체로 위축된 상황이며, 엔화 약세로 인한 외국인 관광객 유입과 부동산·자산 매입이 경제를 지탱하는 구조가 고착화되고 있다. FT는 “외국인 관광객과 장기 체류 이민자의 구분이 정치적으로 혼재되어, 일종의 착취적 유입처럼 포장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일본은행은 기준금리를 0.5%로 유지하고 있지만, 물가 상승의 주요 원인이 수요 확대가 아닌 환율 효과라는 점에서 통화정책 정상화에는 제약이 따른다. FT는 이러한 정치·경제적 불균형이 지속될 경우, 정치적 극단주의가 일시적 유행에 그치지 않고 일본 정치의 주류로 진입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내다봤다.

경제의 균형이 외부 수요와 외국인 소비에 지나치게 기울어 있는 지금, 일본 사회는 환율이라는 기초 여건의 변화가 어떻게 정치와 국민 정서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로 주목받고 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

양현승 기자 기사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