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에 부는 아날로그 열풍
LP·필름카메라·잡지 인기 ‘진짜 경험’ 찾는 젊은 세대
인공지능(AI)이 예술 영역을 빠르게 잠식하면서 오히려 아날로그 매체가 다시 인기를 얻고 있다. 영국 이코노미스트는 최근 보도에서 “AI 예술의 부상이 아날로그 미디어의 부흥을 불러왔다”고 전했다.
대표적인 사례는 LP 음반이다. 미국음반산업협회에 따르면 LP과 EP의 판매량은 1980년대 후반 수준을 회복했다. 지난해 미국 내 LP 판매는 7% 증가해 14억달러, 약 4400만장에 달했다. 테일러 스위프트의 앨범 ‘고문받는 시인 부서’는 LP로만 220만장이 팔렸다. LP를 구매한다는 것은 단순한 소비가 아니라 ‘팬으로서의 헌신’을 증명하는 방식이 되고 있다.
사진과 영화에서도 비슷한 현상이 나타난다. 시카고의 벨로우스 필름 랩과 같은 필름 현상소가 문을 열고, 35mm 아날로그 영화를 상영하는 예술 영화관들도 성황이다. 시카고의 뮤직박스나 뉴욕의 메트로그래프에서는 몇 주 전에 매진되는 일이 다반사다. 코닥은 지난 5년간 필름 수요가 두 배로 증가했다고 밝혔다. 가격은 2019년 대비 50% 상승했지만 소비자들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출판 분야에서도 변화가 감지된다. 전통적인 종이 매체인 ‘라이프’와 ‘플레이보이’가 정기 간행물을 재출간하고 있으며, 음악 잡지 NME, 풍자 매체 오니언, 음식 전문지 세이버 등도 디지털 전용 발행을 중단하고 인쇄판을 부활시켰다.
이러한 ‘복고’ 바람의 원인은 무엇일까. 이코노미스트는 “향수는 분명 한몫하지만, 핵심은 알고리즘에 대한 반발”이라고 진단했다.
가수 잭 사보레티는 “스포티파이 알고리즘은 편하긴 하지만, LP를 고른다는 것은 의식적인 선택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아날로그 매체의 시장 점유율은 아직 작다. LP는 미국 음악 시장의 8%에 불과하고, 코닥은 과거 전성기에는 한참 못 미친다. 하지만 트렌드 세터들이 움직이면서 디지털 플랫폼도 변화하고 있다. 이코노미스트는 마지막으로 “식품에는 ‘인공 성분 없음’이라는 문구가 붙는 시대이며, 예술작품에도 곧 ‘AI 제작 아님’이라는 문구가 생길지 모른다”고 전망했다.
양현승 기자 hsyang@n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