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9평 의원실에서 무슨 일이 ② 어떤 대책도 통하지 않았다

전수조사·인권센터 설립·인권위 권고에도 여전히 ‘사각지대’

2025-07-21 13:00:14 게재

국회의원 직접 조사 어려워 근본적 한계 … “그만 둘 각오해야 신고나 고발”

“누가 국회의원 목에 방울을 달겠나” … 자정의지 없는 국회의원 문화 비판

‘국회의원실 갑질’은 매우 오래된 관행으로 굳어졌다. 갑질 수위는 낮아졌다고 하지만 민감도가 더 높아져 체감하는 심각성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의 갑질 논란은 잊힐 때 쯤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2018년 국회 윤리특위에서는 국회의원실 성폭력 상황을 전수조사했고 국회 사무처에서는 2023년에 인권 조사에 나섰다. 국회의원실 내의 심각한 갑질과 절대적인 상하관계가 확인됐다. 국회는 서둘러 인권센터를 만들고 면직예고제를 도입했다. 성인지 교육도 강화했다. 하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상하관계에서 가장 꼭짓점에 있는 국회의원에 대한 고발이나 조사, 징계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갑질 의혹 해명하는 강선우 여가부 장관 후보자 강선우 여성가족부 장관 후보자가 14일 국회 여성가족위원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갑질 의혹과 관련한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합뉴스 김주성 기자

◆갑과 을의 기울어진 운동장 = ‘을’의 입장에서는 ‘갑’의 갑질을 공개할 경우 감당해야 하는 부담의 크기가 너무 크다. 공정거래위원회 전직 고위관계자는 “을의 입장에서 갑의 갑질을 고발하기 위해서는 그 일을 그만두겠다는 작정을 한 이후에야 가능하다”면서 “을이 갑의 부당행위를 고발하거나 공개적으로 문제제기를 하게 되면 더 이상 을은 갑과의 거래를 하기 어렵게 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을이 갑의 불공정행위를 고발할 때는 견디다 못해 모든 것을 건다고 생각해야 할 수 있는데 문제는 그럴 경우에도 을이 갑을 상대로 이기기가 쉽지 않다”며 “많은 증거가 필요한데 갑질을 입증하기가 어려운 게 현실”이라고 했다.

민주당의 을지로위원회가 오랫동안 ‘을’의 편에 선 이유도 이 때문이었다. ‘을’은 정당이라는 지지대가 있어 겨우 ‘갑’과의 싸움을 펼칠 수 있었다.

◆두 번의 시도 그러나 = 최근 국회의원실의 갑을 문제를 놓고 두 번의 변곡점이 있었다. 사회 전방위로 ‘미투’가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018년 4월 국회 윤리특위 주도로 이뤄진 국회의원 사무실 안의 성폭력 전수조사는 엄청난 충격을 안겨줬다. 의원뿐만 아니라 선임 보좌진의 갑질도 만만치 않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국회의원과 보좌진들에게 배포한 1818부 중 958부(52.7%)를 회수해 분석한 결과 성희롱 338건, 가벼운 성추행 291건, 심한 성추행 146건에 달했다. 성희롱 피해를 직접 경험했다고 답한 응답자가 99명(여성 97명, 남성 2명)이었고 성희롱 피해를 입었을 당시 가해자의 직급을 묻는 질문에는 70명이 응답했는데 이 중 8명(11.4%)이 국회의원이 가해자였다고 답했다.

이후 논의된 국회 인권센터 설립은 2022년 1월에야 이뤄졌다. 당시 김상희 국회 부의장은 “국회의원실의 경우 국회의원이 보좌진의 생사여탈권을 갖고 있고 별도의 근로계약서도 없기 때문에, 상급자에 의한 갑질이나 성폭력, 갑작스런 해고 등을 당해도 제대로 권리를 주장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았다”며 변호사, 전문 상담사, 인권보호관이 피해자 보호, 진상조사 등 독립적인 대응에 나설 수 있는 인권센터 설립을 공식화했다.

하지만 인권센터의 전문가들도 국회의원을 조사하거나 압박할 수 없었다. ‘반쪽 인권센터’에 그칠 수 밖에 없었던 이유다.

국회의원의 보좌직원과 수당 등에 관한 법률을 바꿔 2022년 1월부터는 국회의원이 보좌직원을 직권면직하려고 할 땐 30일간의 예고기간을 두도록 했다. 국회의원이 국회사무총장에게 면직요청서를 제출하기만 하면 언제든 면직할 수 있었던 데서 한발 나아간 개선책이었지만 꼼수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의원은 면직하는 보좌진에 자진 사퇴토록 유도했다. ‘면직예고제’는 무력화됐다.

국가인권위원회가 2023년 1월 10일 “국회 내부 규정, 정당 당규 등에 국회의원 등의 인권교육 이수 의무화를 규정하고, 인권과 관련된 법정의무교육 이수율 제고 방안을 마련하라”며 ‘국회 인권교육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을 권고했지만 ‘형식적 교육’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었다.

국회 사무처는 2023년에 한국노동연구소를 통해 1000명에 가까운 국회 근무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와 심층면접을 진행했고 이 조사에서도 국회의원실 내부의 ‘갑질’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국회의원 조사가 어렵다 = 왜 이 갑질문제를 모두 알고 있는데도 손을 제대로 대지 못하는 것일까.

모 국회의원은 “갑질 논란이 일고 있는 강선우 장관후보자는 앞으로도 계속 볼 의원인데 입장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남은 임기동안 같이 얼굴을 맞대고 살아야 하는 입장에서 비판이나 부정적인 입장을 내기가 곤란하다는 얘기다.

정당에서도 국회의원 갑질 논란에 개입하지 않으려는 의지가 명확해 보인다. 지난 2022년 4월 보좌진 민주당 젠더폭력신고상담센터에 신고된 성추행 혐의로 고소당한 박완주 전 의원이 곧바로 제명된 것은 지방선거 때문이었다는 시각이 많다. 선거가 눈앞에 있지 않았다면 민주당이 속전속결로 처리했을지는 의문이다.

박숙미 국회인권센터 센터장은 국회 토론회에서 “센터가 보좌진까지는 상담 조사 가능한데 국회의원에 대한 조사는 법률적인 검토를 끝낸 결과 근거가 없다”며 “국회사무처 소속인 인권센터는 국회의원의 면책 특권을 넘어서서 조사할 수 없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인 보좌진은 가까운 곳에서 조력을 받기 어려운 상황이고 결국엔 당에 민원을 접수하거나 경찰에 고발하는 등 공개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국회의원실 안의 갑질들이 외부로 나오기 어려운 이유다.

국회의장실 관계자는 “보좌진 임명권을 틀어쥐고 있는 국회의원이 변하지 않는데 어떻게 의원실 갑질 문제를 해소할 수 있나”면서 “국회 윤리위도 운영되지 않을 정도로 국회의원들은 팔이 안으로 굽어 있고 자정능력을 확보할 생각이 없는 상태에서 국회의원실 갑질 해소는 요원하다”고 했다.

이어 “국회의원 목에 누가 방울을 달 수 있겠는가”라며 “국회의원이나 정당에서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 상황에서 개선 방법이 많지 않다”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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