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실 인권보장 전반적 낙제점
인권실태조사 보고서 … 5점 중 2.55점 그쳐
권리·자유·평등·근무여건 모두 ‘보통’ 밑돌아
66.5% “인권침해에 아무 대응 하지 않았다”
국회가 연구용역을 통해 실시한 인권실태조사에서 국회의원을 최정점으로 펼쳐지는 국회의원실내 갑질은 보좌진 내부에서도 팽배하게 확산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21일 국회 사무처에 따르면 2023년 6월에 내놓은 제1차 국회 인권실태조사 연구용역보고서는 보좌진이 생각하는 인권보장 수준이 5점 척도 중 2.55점에 그쳤다고 밝혔다. 국회 인권 보장 변화 방향에 대해서도 2.88점으로 2점(나빠지고 있는 편)과 3점(별다른 변화 없음) 사이에 있었다.
국회사무처가 한국노동사회연구소에 의뢰해 작성한 이 보고서는 의원보좌직 33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과 심층면접을 중심으로 구성됐다.
대부분의 조사에서 1점(전혀 보장받지 못함)이나 2점(보장받지 못하는 편임)보다는 높지만 3점(보통)에는 미치지 못했다. ‘일터에서 권리와 자유 보장 수준’에 대한 인식조사에서는 의견 표현의 자유(2.82), 대변단체 결성·가입 권리(2.54), 고충해결 절차 적용 권리(2.24), 의사결정 참여 권리(2.27), 사생활·개인정보 보호 권리(2.54), 평등한 근무조건 권리(2.42), 안전권(2.77)에서 중간 평가 점수(3점)를 밑돌았다.
‘업무상 위계관계 합당성’을 묻는 임면과 해임의 규칙성(2.26), 직장내 괴롭힘·성희롱·차별 등의 불이익(2.35), 상급자의 부당한 업무지시(2.69), 상명하복의 권위적인 문화(2.18) 등에서도 모두 낙제점이 나왔다.
‘일과 생활의 균형 및 사생활 자유 보장’ 범주에 속하는 △휴가나 유연근무제를 자유롭게 신청하고 사용할 수 있는지(1.81점) △육아와 간병 등을 하며 일하는 것이 가능한지(1.97점) △퇴근 후나 주말이 아닌 근무시간에 주로 업무 지시가 이뤄지는지(1.85점) 등에 대한 질문엔 더욱 낮은 평가가 내려졌다.
인권침해를 당한 206명의 보좌진 중에서 66.5%인 137명은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지난 1년간 인권침해를 경험했지만 알리거나 신고하지 않고 참고 넘어갔다는 얘기다.
또 인권침해를 당한 후 상급자나 관계 기관에 공식적으로 알리거나 신고한 69명 중 33.3%인 23명은 이후 ‘아무런 조치가 없었다’고 응답했다.
심층면접에서 보좌진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A씨는 “국회 보좌진의 어려움 중에 하나는 주말과 퇴근시간 이후를 포함해서 온오프가 잘 없다라는 것이고 그게 당연시 되는 조직문화로 남아있다”며 “채용 예정 업무와 무관한 업무 등 업무 분장과 관계없는 업무 수행, 절대적인 업무량에 비해 적은 보좌진 수의 문제로 인한 어려움이 있다”고 했다.
B씨는 “(의원)자녀 라면 끓여주라고 하는 업무 지시를 받은 분을 봤다”며 “우리 애 지금 학교에서 좀 데리고 와 달라, 우리 집 분리수거를 좀 해 달라, 아들 휴가 나가는데 ○○○ 티켓을 끊으라고 했다”고 했다. C씨는 “(갑질에) 불만을 토로하거나 시정을 요청하면 그날로부터 그만 나오는 날이 된다. 절대 권력”이라고 했고 D씨는 “마음에 안 든다, 그러면 하루아침에 잘릴 수 있는 게 현실”이라고 했다.
E씨는 “국회 전체로 보면 300개 의원실이지만 우리 사무실 안에는 9명밖에 없기 때문에 누가 누구를 신고했는지가 너무 쉽게 드러난다”고 했다.
보고서는 “국회의원으로부터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갑질·괴롭힘 행위로는 의원의 집안일이나 가족 관련 일을 시키는 등의 사적 용무 지시, 감정 표출, 폭언, 문서 집어던지기, 막말, 불필요한 지시, 인신공격, 일방적인 즉시 해고 등이 있었다”며 “다른 의원실로의 이직 시에도 직전 의원실에서의 평판이 결정적이므로 근무하면서 겪는 부당한 상황 등에 대하여 문제제기를 하는 것이 쉽지 않은 조직구조와 문화”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러한 행위 발생의 원인은 일차적으로는 국회 내 특권적 지위를 남용하는 일부 의원 개인의 문제이지만 보좌진들이 그러한 행위 발생을 견제하는 역할을 제대로 수행하지 않고 있다는 점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그 배경에는 국회의원의 지위와 특권 남용을 무조건적으로 수용하는 조직문화 및 구성원들의 인식이 자리함과 동시에, 의원의 갑질·괴롭힘 행위에 대해 보좌진이 의원의 심기를 거스르는 발언을 함에 따라 불이익을 감수해야 할 수도 있는 고용 구조상의 어려움도 있을 것”이라고 했다.
박준규 기자 jkpark@naeil.com